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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
한국사에서의 전쟁과 평화
  • 교수신문
  • 승인 2021.02.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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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지음 | 선인 | 785쪽

 

이 책에서 내가 의도하는 바는 전쟁의 전개 과정을 소상하게 서술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학계나 전쟁사가들이 할 일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하여 저마다의 전쟁들이 왜 일어났으며, 그 전쟁은 끝내 한국의 역사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그 전쟁의 밑바탕에 깔린 시대정신(Zeitgeist)이나 시대 조류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가장 처절한 극한 상황에서 본능은 무엇이고 인간의 본래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전쟁 앞에서 도덕이니 철학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이었던가를 기록하고 싶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그 전쟁은 조선 또는 한국의 망국(亡國)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에 나는 주목하였다. 망국은 나의 교수 시기 후반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우리는 자신의 망국을 설명하면서 그 원인을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설명했고, 중국 또는 일본과 미국이나 소련과 같은 이웃 적대 국가에 책임을 묻는 “탓의 역사학”에 몰두해 있었다. 이런 식의 역사학은 정직하지도 않고 공의롭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비루한 변명이어서 우리에게 줄 교훈이 없다.

우리는 한국의 전쟁사나 망국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좀 더 정직해야 하고 뼈아픈 회오(悔悟)가 필요하다. 적군은 늘 잔인했고, 불법적이었고, 이기적인 악마였다. 우리는 그것을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자비로운 적, 우리에게 도덕적이었고, 은혜를 베푸는 제국주의나 강대국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그러한 비인도주의적 처사를 원망만 해서는 망국의 원인을 규명할 길이 없다.

결국, 망국이나 패전이나, 또는 그 반대로 우리의 역사에 있었던 승전의 영광은 모두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업보이다. 패전의 역사와 치욕스러운 역사, “어두운 역사”(dark history)도 우리의 것이다. 그것을 진솔하게 돌아보고 고백하려는 것이 이 글의 집필 의도이다. 누구는 이런 글을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수치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영광도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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