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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지루하지 않게 관람하는 법
박물관 지루하지 않게 관람하는 법
  • 정민기
  • 승인 2021.02.19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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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읽는 세계사
김문환 지음 | 김문환 사진 | 홀리데이북스 | 294쪽

평범해 보이는 박물관 유적들
흥미로운 이야기 한가득 품은 보따리

박물관에 갔다가 ‘볼 게 별로 없네’라며 휙 둘러보고 나온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의 저자 김문환은 박물관에서 막 나온 여러분의 팔목을 붙잡고 도로 박물관 안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유물들에 얽힌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이를테면 경주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한 기와 앞에 서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조금 전 지나친 이 기와가 언제 적 기와인지 아십니까? 세종대왕의 친형 효령대군이 거처하던 절에 사용됐던 기와입니다. 그런데 여기 새겨진 글자는 어떤 문자일까요? 한자처럼 보이지만 기원과 성격이 전혀 다른 산스크리트어입니다. 몇 해 전에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신미대사가 세종의 한글 창제를 주도하는 장면을 두고 역사 왜곡 논쟁이 많았지요? 정확한 사료가 없어서 영화 속 이야기는 어느 정도 상상력이 동원된 것이지만, 산스크리트어가 한글 창제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일리 있는 말입니다. 여기 이 기와에 새겨진 문자를 세종이 몰랐을 리가 없기 때문이죠.”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평범한 기와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표의문자인 한자와 달리 산스크리트어는 표음문자다. 한글 역시 우리말의 뜻이 아니라 소리를 담는 표음문자라는 점을 미루어볼 때, 산스크리트어의 작동원리가 한글 창제에 참고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이 흥미롭다. 기와에 좀 더 가까이 가서 찬찬히 살펴보려고 하는데, 저자는 또 어디론가 서둘러 걸어간다. 

종종걸음으로 그를 따라가니 이번엔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목항아리 앞에 다다른다. 아기자기한 점토 인형들이 항아리 목 주위에 붙어있는 이 항아리는 신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심히 살펴보면 뱀, 토끼, 개구리, 거북이 등의 다양한 동물이 있다. 그런데 깜찍한 동물들 사이에 관람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토우가 있으니 바로 남녀의 적나라한 정사 장면이 묘사된 성애조각이다. 저자는 국보 195호로 등록된 이 목항아리는 국내에서 가장 선정적인 유물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중국 산둥성 박물관부터 인도 카주라호 사원까지, 전 세계를 둘러보면서 직접 보고 촬영한 성애조각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나간다.

특히 호기심을 자아내는 부분은 폼페이에서 출토된 유적들이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매몰된 폼페이는 2천 년 전 로마 문명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 로마인의 생활상은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이었다. 나폴리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인 유적을 살펴보면 폼페이 호화 저택 벽을 장식하던 프레스코 그림부터 바닥을 장식한 모자이크, 조각상 등등. 고대 로마인들이 성생활에 얼마나 개방적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저자는 성애조각의 역사가 신석기시대까지 올라간다고 설명한다. 터키에서 출토된 한 성애조각은 지금으로부터 약 7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비너스 조각 문화가 시작된 시대로, 고대인들은 이 조각상에 ‘다산과 풍요’의 주술적인 의미를 담았다.

파리에 루브르, 런던 대영박물관뿐 아니라, 중국 변방의 유적지, 중앙아시아 초원 한가운데, 흑해 바닷가, 서아시아나 북아프리카의 사막 지대 구석진 박물관까지. 저자는 전 세계 유적을 돌아보며 세계사를 훑는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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