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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학문의 근본을 다시 생각할 때
[원로칼럼] 학문의 근본을 다시 생각할 때
  • 교수신문
  • 승인 2001.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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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30 17:57:44
인간에 대한 신뢰성과 존엄성 그리고 질서의식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로서 뿐만 아니라
그가 현실적으로 살아가는데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이들은 겉보기에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통일성 속에 있다. 이중 하나라도 결핍되면 다른 것에 결손이 나타난다. 먼저 정신 파괴가 오고 다음으로 육체의 결함이 오기 마련이다. 무원칙과 무질서, 불신과 인간 경시, ‘삼풍’, ‘성수대교’, ‘공기업의 부도’ 등은 단순히 현행 정치, 교육형태에 대한 불만이나 경제여건의 악화만을 지적하는 말이 아니며 자연과학적 지식을 빌려서 설명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이들은 이보다 깊숙한 곳에 오랜 세월에 걸쳐 뿌리내리고 있는 인간성 황폐화와 이와 유착관계에 있는 인생관 등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근본을 보지 못한 모든 처방은 무위로 끝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근본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안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이다. 인간과 사물을 보는 이 시대의 ‘원리’는 현대과학을 이끌어낸 ‘합리적 사고’와 이것의 대상인 실재론적 자연관 등이었고 더러는 선인들의 단편적 교훈, 인맥, 정치권력 등에 얽혀 뿌리내리고 있는 편중된 주의 주장에 끌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어떤 일관성 있는 중심과 방향을 제시한 적이 없다. 이것이 어떻게 서술되던 그 근본관계는 ‘지식과 인간’, ‘이론과 현실’ 등으로 요약되며 이것을 다시 압축해서 ‘이성과 정서’라고 한다면 인간성 황폐화는 이 두 기능의 통일성이 깨진 상태를 말하며 이들 모두 손상을 입은 것이다. 합리적 사고와 실재론적 자연관은 신뢰성과 인간존엄성의 원천을 제시할 수 없었고 본능적인 욕구와 약육강식의 매커니즘이 결합되어 나타난 이기주의를 자제할 근거도 제시할 수 없었다. 분명한 하나의 답이 아니라 오히려 혼돈과 무질서로, 그래서 합리적 사고는 표면적 성공으로 정서를 지배하는 주인으로 생각됐지만 내면에는 정서의 바탕에서 나온 주의 주장에 시녀 역할을 한 것이다. 좀더 깊은 고찰과 설명이 뒤따라야 하지만 요컨대 사고의 주인은 사고 자신이 아니라 정서 밑에서 이와 통일성을 가진 사고이다. 정서가 파괴되면 사고는 통제력을 잃어버린다. 건전한 정서로부터 참된 사고가, 정교하고 안정된 정서에서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이 나온다는 말이다. 철학, 미학, 예술 등 인문과학은 이 사실을 밝혀나가고 교육은 질서의식, 존엄성 등 정서를 깨우치고 길러야할 가장 근원적인 분야인데도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 채 소외되고 있다. 우리가 정말 어리석지 않다면 결코 시장 원리에만 우리의 운명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학문과 교육의 근본을 다시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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