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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한국사이야기』(전22권)| 이이화 지음| 한길사 刊| 2004
본격서평:『한국사이야기』(전22권)| 이이화 지음| 한길사 刊| 2004
  • 하원호 성균관대
  • 승인 2004.07.0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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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사'의 매력이 넘쳐나는 기념비적 저술

“티비에 나오는 사극처럼 흥미진진한 것이 없고, 옛날 역사이야기도 무진 좋아하는데 역사책만 펴면 졸려요.” 필자에게서 대중 강의를 듣던 어느 중년 여성이 한 말이다. 사실 필자도 역사로 먹고 사느라 역사서적을 일상적으로 읽기는 하지만, 당장 쓸 글에 참고되는 것이나 강의 준비하느라 읽는 글 말고는 졸리긴 마찬가지다. 그동안 잘 팔린 역사책은 역사학자가 쓴 것이 별로 없다. 물론 요즘 들어 역사학자도 대중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끔 괜찮게 나가는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저널리스트나 아마추어 역사학자들이 쓴 책이 서점에서도 더 많이 나간다. 딱딱한 역사학자의 글보다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하루이틀 된 얘기가 아니다. 왜 위기냐고 인문학자들에게 물으면, 돈 좋아하는 세상에 정부가 지원을 안 해줘서 그렇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돈이 말하는 세상에서 돈 안 되는 인문학이 위기를 맞는 것은 당연하고, 돈 되고 때깔 나는 데만 투자하는 정부의 속성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인 인문학에 돈 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데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인문학자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수자리 차지하고 나면 고고한 상아탑에서 제자들의 극진한 떠받듦만 받으면서 세상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인문학자들이 대중 속에 뛰어 들어 인문학을 살리자고 나서길 기대하는 것은 緣木求魚보다 더 멀다. 그 고고한 학문의 세계를 어찌 대중들이 알겠는가, 어리석은 대중 때문에 인문학은 위기일 뿐인 것이다.

인문학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을 다루는 학문이다. 어느 학문보다 세상살이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지나온 삶을 다루는 역사학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그동안의 역사책은 어떠했던가. 필자야 책 펴면 졸리는 타입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느 역사학자, 아니 책에 빠진 어떤 書癡라도 한국사 개설서를 첫 장에서 마지막까지 단숨에 읽어 본 적이 있을까.

그런데 이 책을 보라. 역사도 이렇게 책을 재미있고 쉽게 쓸 수 있을까 할 정도다. 1998년에 나온 우리 민족의 기원을 다룬 첫 권도 그날로 다 읽게 만들더니, 올해 나온 마지막 식민지시대 생활사 22권까지 단숨에 읽게 한다.

그동안 한국사 개설서는 수없이 많았다. 한 권으로 된 책은 너무 많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지만 어느 하나도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없었다. 책의 체제야 쓴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어도, 내용은 제도의 나열이나 어려운 정치 경제를 더 어려운 용어나 개념으로 정리해 놓은 것뿐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대학교재나 고시준비서처럼 안 읽으면 안 되는 쪽의 책이 돼버렸고,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대중은 “책만 펴면 졸려요”가 돼버렸다.

거질의 역사편찬은 미국 록펠러재단의 지원을 받아 1955년에 시작해 1965년에 완간된 진단학회 ‘한국사’ 7권, 1973년~1981년에 나온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25권, 그리고 1994년에 나온 한길사의 ‘한국사’ 24권, 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다시 펴낸 ‘신편한국사’‘ 53권(1993~2003)이 있다. 그밖에도 북한에서도 ’조선전사‘ 34권이 나왔다. 그런데 이 책들은 모두 여러 필자가 자신의 전공을 맡아 나눠 쓴 것이다. 따라서 글마다 학문적 입장에서 차이가 날 뿐 아니라 글쓰기도 각기 달라 처음부터 열심히 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학문적 엄숙주의나 출판을 주관한 쪽의 이데올로기까지 보태져서 딱딱하기로는 한 권으로 된 개설서 보다 더하다.

이이화의 ‘한국사이야기’는 이 같은 그동안 역사책하고는 다르다. 우선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역사인식으로 일관되게 22권의 통사를 만든 예는 국내에선 처음이다.

또 일제 때부터 거의 달라지지 않은 한국사 연구자들의 갑갑한 글쓰기와는 질적으로 틀리다. 아무리 글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도 요즘은 일본에서도 안하는 일제 때 식 논문쓰기에 몇 십 년을 물들고 나면 대중적 글쓰기는 불가능한 것이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이다. 필자를 비롯해 낫살이나 먹은 역사학자 치고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이이화는 그 낡아빠진 글쓰기를 넘어선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아서 그렇다는 비판은 말이 안된다. 출세작인 척사론 비판 논문이나 동학관계 글은 어느 역사학자의 논문보다 정치한 역사논문이다. 

‘한국사이야기’의 최대 장점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제도의 무게에 눌려 사람 이야기가 없어진 것이 그동안 한국사 책이 대중하고 멀어진 첫째 이유다. 이이화는 이야기하듯이 우리 역사를 쓴다. 정치고 경제고 간에 그의 글쓰기에 걸리면 읽을 만한 이야기 거리가 되고 만다. 조선후기 당쟁을 다룬 장의 제목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끝까지 가보자’다. 당쟁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의 권력다툼이나 제도의 변화를 서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민중의 삶 속으로 그는 들어간다. 엄숙한 지배계급의 초상화는 이 책에는 없다. 민중이 즐기던 내기 장기나 투전판의 풍경, 아이스케키 맛까지 그려대는 그의 글은 살아 숨쉬는 역사를 맛보게 한다. 역사가 거대담론이라는 것이 도전받고 있는 포스트 모던한 세상이지만, 조각난 역사의 조각만으로 역사전체를 그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거대담론을 이야기꺼리로 풀어내고 지나온 사람의 삶을 조각내서 다시 조립해 거대 담론을 떠받든다. 한국역사를 이해하려면 안 읽으면 손해 보는 책이다.

그래서 한국사 책만 들면 졸리는 교수 제위께 반드시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특히 역사로 밥 빌어먹고 사는 학자한테는 무조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인문학의 위기가 인문학자에게 문제가 있어서라면 어떻게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를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하원호 / 성균관대 한국근대사

필자는 고려대에서 ‘개항기 곡물의 유통과 가격변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근현대사와 친일파문제’, ‘한국근대경제사연구’, ‘친일파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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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eas 2004-07-04 20:05:54
재미있고 유익한,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입니다.
중학교 다니는 딸에게 전질을 선물했는데, 아주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