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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반공의 공모 '속뜻' 규명...규범적 접근 부적절
친일과 반공의 공모 '속뜻' 규명...규범적 접근 부적절
  • 전재호 서강대
  • 승인 2004.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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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배반당한 한국민족주의』(서중석 지음, 성균관대출판부 刊, 2004, 336쪽)

▲ © libro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민족주의, 반공주의, 분단체제, 통일, 친일파 등과 같은 주제들을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그 동안 이 주제들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개념 정의로부터 현실 해석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시원스런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데 반갑게도 이러한 논쟁적인 주제들을 다룬 신간이 출간됐다. 특히 책의 저자가 이미 해방 이후 '한국사 4부작'('현대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1·2', '조봉암과 1950년대 상·하')을 발표한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학자인 서중석 선생이라는 점은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충분하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제1장은 분단시대의 역사 인식과 통일시대의 역사 인식의 대조, 제2장은 한국에서 민족문제와 국가, 제3장은 분단체제론, 제4장은 친일파의 존재양태와 구조적 성격, 제5장은 해방 후 남한의 우익민족주의와 민족통일전선, 제6장은 이승만과 북진통일, 제7장은 남과 북의 체제 위기와 한국 민족주의의 진로, 그리고 보론은 민족통합을 위한 한국현대사 교육을 다룬다.

각 장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집필된 단행본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서 핵심적인 여러 주제들에 대해 필자가 기존에 발표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다양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일관된 문제의식은 '배반당한 한국 민족주의'라는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해방 후 남한에서 "민족의식이 박약하거나 민족주의가 활기를 지니지 못했던" 이유다. 필자는 그 이유를 "분단과 친일파 처단의 좌절, 극단적 냉전체제, 극우반공체제가 기본요인을 이루고 있고, 그것은 가치관의 부재나 전도현상과 표리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281쪽)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필자는 극우반공주의의 정체와 그것과 친일파 및 반공주의와의 관계를 밝히는 데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책은 주로 극우반공정권 담당세력에 대한 비판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필자는 지속적으로 이 주제에 천착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여러번 번득이는 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반공주의를 친일파 처단의 민족주의 논리에 맞서는 친일파의 생존 이데올로기로 규정한 것은 냉전이 격화되던 해방 8년간의 공간에서 반공주의가 지닌 정치적 함의를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필자는 반공주의가 공산주의 침략에 대한 대응이라는 미국의 필요성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좌파의 제거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필요했던 친일파의 정치적 이해가 접목되는 지점에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또한 필자는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운동이 지닌 성격과 기능을 명확히 밝혔다. 이승만 정권에게 북진통일론은 "통일운동을 막기 위한 통일운동"(250쪽)이고 "통일운동이라기보다는 정치운동이었고, 대북용이나 대외용이라기보다는 대내용"(251쪽)이었으며 "1950년대 반공이데올로기 강화의 주된 수단"(251쪽)이었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듯이, 이 책에서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발견된다. 우선 필자는 해방 후 "친일파의 득세는 민족정기·국가기강을 무너뜨리고, 사회정의 등 가치관, 윤리관을 극도로 혼란에 빠뜨렸고 이기주의와 부정부패를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기본으로 삼게 했다"(141쪽)라고 주장한다. 이는 친일파의 미청산이 한국 사회를 왜곡시킨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읽혀진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갖고 있지만, 지나친 논리의 비약으로 읽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서 왜곡된 개별 부문과 친일파 미청산이 어떤 인과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좀더 정치한 해명이 필요하다.

또한 필자도 지적하고 있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규정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필자는 한국 민족주의의 가장 중요한 목표/과제를 남북통일로 상정하고 이를 위한 노력, 곧 분단 상황에서 통일을 지향한 세력과 운동만을 민족주의로 규정한다. 물론 필자는 자신을 "주류적인 감각에서 뒤떨어진 사람"(6쪽)이라고 지칭하지만 이러한 규정은 민족주의에 대한 한국 학계의 일반적인 정의와는 다르다. 필자는 서론에서 "친일파민족주의, 이승만민족주의, 박정희민족주의, 반민족적 민족주의도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주장할 필요가 있을까"(8쪽)라고 지적했지만, 반대의 논리로 다양한 종류의 민족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필요 역시 없다고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시각이 민족주의로 지칭될 수 있는 현실을 잘 설명할 수 있는가다. 필자는 특정 내용을 지향하는 세력·운동만이 민족주의이고, 그렇지 않으면 민족주의가 아니다 라는 식의 규범적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규범적 접근은 다양한 현실을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민족주의에 대한 보다 적절한 접근은 다양한 세력들의 '다수'의 민족주의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그것이 어떤 내용을 갖고 있고 어떤 목적에서 그런 내용을 내걸었는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물론 민족주의에 대한 접근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계에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 통일, 친일파와 같은 한국 현대사의 논쟁적인 주제들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일독을 권한다.

필자는 서강대에서 '박정희 체제의 민족주의 연구: 담론과 정책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학과 자유주의: 서구 사사의 영향에 대한 시론적 고찰', '세계화시대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 지속성과 변화' 등의 논문이,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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