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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마술과 공부
문화비평_마술과 공부
  • 장석만 한국종교문화
  • 승인 2004.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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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텔레비전에서 마술에 관한 프로그램을 많이 볼 수 있다. 마술의 묘기를 보여주는 것이 코미디의 한 부분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온통 하나의 프로그램이 마술에 관한 것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다. 사실 마술처럼 순식간에 많은 사람의 시선을 붙잡아둘 수 있는 테크닉도 별로 없다. 마술은 탄성이 절로 나오는 기발한 마무리를 보여주며, 우리의 시선 집중에 충분한 보상을 마련해준다. 마술의 인기는 이처럼 우리를 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 탈출시켜준다는 점에 있다. 마술은 일상의 논리로 무장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통쾌한 일탈을 맛보게 한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황량한 카페를 매혹적인 장소로 바꾸어 놓는 것도 마술 쇼였다. 소박맞은 쟈스민이 펼치는 마술 쇼는 캘리포니아 사막을 떠도는 트럭 운전사들에게 그동안 잊고 있었던 천진스런 놀라움의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사막에 단비가 내려 온갖 생명이 활기를 되찾은 듯한 풍경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마술이 주는 매혹을 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마술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가 부정적이라는 점을 없애지는 못한다. 그래서 마술 쇼는 단지 교묘한 눈속임일 뿐이며, 잠시 동안의 여흥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사실 이러한 주장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 이후 서구의 유명한 학자들이 어떻게 마술과 과학의 구분이 이루어지는지에 관해서 몰두해 온 것도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마술이 과학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동일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마술과 과학이 어떤 측면에서 다른가에 관해서 그들의 차이가 나타날 뿐이다. 마술과 과학을 구분하려는 이 끈질긴 노력을 살펴보고 있으면, 도대체 마술의 무엇이 그들에게 구별의 욕망을 불러일으켰는지 알고 싶어진다.

마술의 특징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일상의 경계를 모조리 허물어버린다는 것이다. 사실과 허구, 실재와 비실재의 구분이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심하게 동요하다가 결국은 없어져 버린다. 아무 것도 없던 것에서 갑자기 휘황한 것이 생겨나고, 또한 멀쩡하게 있다가 돌연히 사라져버린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마술에서는 벌어지는 것이다. 마술은 익숙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낯선 他者性을 끌어들인다. 마술의 공간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것”이 판치는 영역이다.

이처럼 마술이 혼란과 모순의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마술 자체의 논리가 정연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점에 마술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마술은 일상의 질서를 송두리째 부인하며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논리와 개념을 인정하면서 그와 더불어 攪亂의 놀이를 행한다. 마술에는 마술 자체의 일관된 논리가 있다. 물론 사물의 연관 관계를 나름대로 상정하는 이 은밀한 논리는 과학적 논리와는 다르다. 

마술이 한편으로는 과학의 他者로서 경계의 대상이 되고,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매혹의 원천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술이 과학과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점은 사물의 연관관계 설정에 관한 공적 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술의 연관 논리는 숨겨져 있으며, 그 타당성에 대한 개방적 검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 마술이 언제나 모색하는 것은 기존의 관점과는 다른 사물의 새로운 연관관계이다. 마술의 매혹은 너무나 견고해서 서로 분리시킬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을 떨어뜨려 놓으며, 전혀 상관없이 보였던 것을 결합시키고, 전혀 새로운 조합의 배열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공부하는 것은 연구자의 문제의식이라는 틀을 배경으로 자료를 선택적으로 포함하거나 배제시킨다. 전략적 선택의 틀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공부에는 체계(system)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반면 그 선택된 자료를 나름대로 分節하고, 비교하는 상상력 역시 필수적이다. 학자의 창조력은 대부분 이 부분에서 나타난다. 공부하는 이는 자신의 체계가 지닌 타당성을 공적인 논의에 붙여야 하며, 새로운 연관성을 추구하는 창조적 상상력을 연마해야 한다. 과학의 공공성과 마술의 상상력은 학자가 모두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장석만 / 한국종교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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