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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派 꿈꾸는 문학사 '거스르기'
學派 꿈꾸는 문학사 '거스르기'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6.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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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모임을 찾아서18 : 문학과사상연구회

학문에서 '다시 보기'는 불온하다.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기존 논의를 넘어서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이런 포지션은 때론 '새것 콤플렉스'로 비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바람직하다. 불연속의 의지가 학문에 무늬와 굽이를 만들어 흘러가게 만들기 때문이리라.

'문학과사상연구회'라는 연구모임이 있다. 겉 이름은 평범한 편이다. 그러나 내용은 아주 옹골지다. 1998년부터 본격활동한 이 모임이 펴낸 6권의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염상섭 문학의 재인식', '한설야 문학의 재인식', '임화 문학의 재인식' 등 한국 근대문학의 대표적 작가들을 '맨눈'으로 보려는 투지가 느껴진다. '20세기 한국문학의 반성과 쟁점' 같은 이론동향서도 집필했는데, '쟁점'이라는 단어에서도 모임의 정체성을 짐작할 수 있다.

모임의 탄생은 그러나 매우 가족적인 측면이 있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서 리얼리즘적, 민족문학적 두 축을 통합해 一家를 이룬 이선영 연세대 명예교수(국문학)와 그 제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김재용·하정일 원광대 교수, 김영민 연세대 교수, 양문규 강릉대 교수, 유성호 한국교원대 교수, 한수영 동아대 교수 등 총 11명의 회원들 소속은 다양하지만 이선영 교수에게 학부나 대학원 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자 서로간에는 선후배 관계다.

여기까지 알고나니 두 가지 감정의 갈림길이 생긴다. 첫째, 한국 학계의 풍토가 그렇듯 너무 가부장적인 분위기이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고 둘째, 학파의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이다. 모임의 창립멤버이자 주로 이끌고 있는 김재용 교수가 인터뷰에서 강조하는 점도 "한 학파로서의 성장가능성"이다. 즉 "한국 근대문학을 '진보적'인 관점에서 읽고, 과잉 칭송된 작가나 주목받지 못한 작가를 다시 본다는 점에서 동일성의 축적이 가능하다"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가령 '삼대'의 작가 '염상섭'을 다룬 책에서는 "그간 염상섭을 민족주의 작가로 읽어온 게 주류였는데, 우리는 그가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식민지성을 읽어낸 작가로 다시 봤고 그게 온당하다"라고 말하며, 남북 모두에서 비주류 작가 취급을 당한 한설야를 당당히 근대문학의 중심줄기로 편입시키려고 노력했다. 임화도 마찬가지다. 연구원들은 임화의 유명한 '이식문학론'에 대해 기존 연구가 민족주의적 비판 내지는 일방적인 긍정의 양 극단에 치우친 것을 반성하면서, 이 둘을 통합하는 비평적 관점을 취하려고 했으며 시인, 문학사가, 문학비평가로서 다양하게 형성된 임화의 정체성을 책 한권에 총체적으로 구축하려고 했다.

문학을 바라보는 이런 시각을 이선영 교수에게서 사사했다는 점이 이 모임이 학파로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물론 이를 위해선 내부에서의 치열한 의견조율이 담보돼야 할 것이다. 그동안 '섹트'를 형성한 한국의 연구자집단이 부족한 것은 서로간의 '토론문화'였다. 안으로 똘똘 뭉쳐서 밖을 대항하는 이런 식의 방법을 지양하고, 내부의 토론을 늘린다는 것이 '문학과사상연구회'의 가장 큰 방침이기도 하다. 1달에 한번 모여 발표는 20분에 짧게 마치고, 토론을 2시간 넘게 진행하는 시간배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유성호 교수에 따르면 "발제자는 엄청나게 깨질 각오를 해야한다". 그리고 모임 날 써온 '초고'와 나중에 논문형태로 발표하는 글은 전혀 다른 글이 된다.

그동안 1년에서 1년6개월 동안 한 작가를 다루고 그 결과를 책으로 펴내왔다. 물론 '연세대' 출신끼리 문학사 전체를 재인식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래서 내부에서 카바할 수 없는 빈틈은 관련주제를 전공한 외부의 학자들에게 집필을 의뢰한다. 아직까지 협동연구까지는 아니고 논문으로 협찬해주는 단계다.

앞으로는 작가론에서 벗어나 한국 근대문학을 특징짓는 '주제론'으로 영역을 넓혀나갈 예정이다. 지금 마무리 단계에 있는 '이태준 다시보기'는 그의 월북 이후의 생애와 문학을 집중 조명했는데, 이것을 올 여름에 책으로 펴낸 후에는, 친일문학을 붙잡으려고 한다. 김재용 교수가 제안한 "친일문학의 내적논리를 밝혀보자"라는 데 회원들이 의견일치를 본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 내부의 기대가 크다. 청산론만 가득한 친일문학론에 이들의 연구가 어떤 신선한 주장들을 던질 지 주목된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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