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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3개월의 기록 ‘쇄미록’, 보물이 되다
9년 3개월의 기록 ‘쇄미록’, 보물이 되다
  • 김재호
  • 승인 2021.02.11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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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오희문이 후방에서 본 임진왜란
16세기 조선의 생활과 풍속 엿보여

쇄미록은 『시경』에서 따온 말로서 ‘보잘것잆이 떠도는 자의 기록’을 뜻한다. 16세기 오희문이라는 조선 시대의 양반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쓴 일기가 바로 쇄미록이다. 『쇄미록』은 1991년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 받았다. 오희문의 일기를 읽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 당시로 소환되는 느낌이다. 그 삶은 처절했다.

오희문이 일기를 쓴 기간은 1591년(선조 24) 11월 27일부터 1601년(선조 34) 2월 27일까지 9년 3개월(3,368일)간이다. 오희문의 나이 53세부터 63세까지 기간이다. 총 51만9,973자로 이루어진 『쇄미록』 필사본은 총 7책, 1천670쪽이다. 2019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발간한 한글 번역서는 6권, 한문 표점본은 2권이다.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은 이 방대한 사료에서 읽기 쉽게 구성하고, 해설을 덧붙였다. 『쇄미록』은 이순신의 『난중일기』, 류성룡의 『징비록』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기록물로 불린다. 『쇄미록』은 『난중일기』처럼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최전방의 장면들을 담아내고 있지 않다. 또한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의 시각에서 본 『징비록』과 같이 관료의 시선이 들어가 있지 않다.

하지만 16세기 조선에서 과연 무엇을 먹고, 양반과 종의 관계는 어떠했으며, 생활과 풍속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예를 들어, 책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건어나 포가 꽤 유용했다. 전란의 시기에 먹을거리가 귀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건어나 포 등을 준비 잘 해서 유용하게 활용했다. 먹는 건 언제나 중요하다.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엔, 고추, 호박,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에 대한 기록이 없다. 왜 그럴까? 16세기 조선 시대에 이 작물들은 없었다. 나중에 아메리카 대륙을 통해 들어왔다.

생활사와 풍속사 관찰 가능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에서 가장 슬픈 일기는 죽은 막내딸 단아에 대한 회상이다. “지난해 단오에 임천군에 있었을 때 죽은 딸이 울타리 안의 복숭아나무 가지에 그네를 매고 아우 언명의 두 아이들과 함께 놀던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슬퍼져 눈물이 옷깃을 적신다.”(306쪽) 자식을 잃는 슬픔을 무엇에 비하랴. “집사람이 지난밤에 꿈에서 죽은 딸을 보았다며 아침에 끊임없이 애통한 눈물을 흘렸다.”(308쪽) 

이 책에는 서윤희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쓴 「오희문의 난중일기, 『쇄미록』의 여정」이 부록으로 들어가 있다. 『쇄미록』의 첫 두 장이 찢기고 교체된 일, 조선이 망할 위험에 처해 간행이 못된 일, 필사하여 후손들에게 전해진 일들이 참 힘들었다. 

오희문 저자는 양반으로서 나중에 영희정으로까지 추대된다. 그만큼 일기를 기록하기에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노비들에 비해서 말이다. 물론, 임진왜란 속에서도 그렇게 오랫동안 일기를 쓸 수 있었던 건 개인적 의지와 노력 때문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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