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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위한 ‘공산주의’ 국가는 없다
시인을 위한 ‘공산주의’ 국가는 없다
  • 정민기
  • 승인 2021.02.1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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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그대의 빛나는 마음』 | 이상숙 지음 | 삼인 | 255쪽

월북 시인 백석의 공산주의 찬양 시
‘변절’로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작가 이응준은 그의 시집 『애인』(민음사 2012)에서 작가의 조건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비극은 작가의 품위”다. 작가는 “비극을 관리할 줄” 알아야 하며, 진실한 비극이 사라진 작가는 “느끼한 속물로 전락”한다.

그의 주장에 일견 동의하지만, 문장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예외의 인물 하나가 눈에 밟힌다. 바로 시인 백석이다. 그의 삶은 작가의 품위를 지킬 수 없게 하는 특수한 비극이 있음을 보여준다. 

분단 이후 북한에 남은 백석은 사회주의 사상을 담은 노골적인 선전 문학을 비판하다가 정치적으로 숙청됐다. 그는 북한 최북단으로 파견됐고, 이후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노골적인 시를 몇 편 발표하다가 문단에서 자취를 감췄다. 공산주의라는 비극이 한 시인을 시인이 될 수 없게끔 만든 것이다. "비극을 관리할 줄 아는 것이 작가"라는 기준은 그러므로 백석에게 적용되기 어렵다. 그는 '비극을 관리할 수조차 없는 비극'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백석의 가족 사진
1980년대 중반, 백석의 가족 사진

이상숙 가천대 교수(국어국문학)의 신간 『가난한 그대의 빛나는 마음』은 백석의 생애와 작품을 독특한 시각으로 살핀다. 이 교수는 백석의 시를 “북한 문학의 맥락 안에서, 당시의 북한 시인들과의 비교 안에서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백석 연구자들은 백석의 작품을 “부정하거나 외면하거나, 또는 정반대로 적극적으로 그 안에 숨겨진 백석의 시심을 변호”했다. 저자는 이러한 접근이 명확한 근거 없는 추측이라고 꼬집는다. 

사회주의 문학 속에서 바라본 백석

저자는 분단 후 백석의 작품에서 “과거 백석 시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 속에서, 사회주의 문학 속에서 백석의 시와 번역이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백석이 ‘사회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살펴본다. 1958년 『조선문학』에 발표한 백석의 글로 미루어보았을 때 백석은 사회주의를 계급 투쟁이나 정치적 혁명으로 이해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회주의를 조금은 순박하게 이해하고 있다. 백석에게 사회주의는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예의와 인정, 친절을 잃지 않는” 사회를 뜻한다.

영생고보 교사 재직 시절의 백석
영생고보 교사 재직 시절의 백석. 사진=위키피디아

이런 관점에서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문제의 구절, “한없이 아름다운 공산주의의 노을이 비낀다”는 새롭게 해석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위 구절은 체제 적응을 위한 훼절의 징표가 아니라 백석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동경의 발로이다. 생존을 위해 선택한 아첨이 아니라 “북한 시인 백석이 시로써 시대와 현실, 정치와 인간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대목”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현재로서 백석이 생존을 위해 훼절의 창작을 했다는 판단은 유보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의뭉스러운 부분은 남아있다. “영탄조의 종결어미와 감탄 부호는 이전의 백석 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인데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교수는 이 문제 역시 “개인의 불행과 현실적으로 타협한 결과로 볼 것이 아니라 북한 시 전체의 맥락에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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