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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단: 경쟁의 허와 실
교수논단: 경쟁의 허와 실
  • 전성인 홍익대
  • 승인 2004.06.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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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우리 경제가 지향해야 할 체제로 시장경제 체제를 거론한다. 많은 사람들이 원론적으로 이에 공감을 표시한다. 그러나 이것이 확신의 결과인지 아니면 세뇌의 결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필자 역시 오랫동안 이 점을 고민해 왔다. 왜냐 하면 우리 사회에는 “사이비 시장주의”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경쟁과 관련한 필자의 고민의 일단을 털어 놓기로 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영화산업은 미운 오리새끼였다. 허리우드의 자본에 기반한 외국영화가 직배라는 타이틀로 극장가를 휩쓸 때 영화인들이 선택한 즉각적인 대응은 삭발과 저항이었다. 때로는 외국영화가 상영되는 극장가에 뱀을 풀어 놓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영화 개방이후 몇 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 영화산업은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리우드 영화와 동시개봉해도 조금도 밀리지 않고 관객동원에 성공하고 있고, 내노라하는 외국 영화제에서도 심심치 않게 수상소식을 전하곤 한다.

이것이 경쟁의 위력이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부대끼며 어렵지만 마땅한 방법으로 출구를 찾기만 하면 축복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대중가요 역시 이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최근 팝송을 제치고 젊은이들의 압도적 지지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입시는 중고생에 있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절대적인 명제다. 시험을 앞둔 학생에는 그 어떤 다른 행동도 용납되기 어렵고, 반대로 공부를 위한다는 명분 앞에서는 어떤 다른 행동도 면제되기 일쑤였다. 그들은 죽도록 서로간에 경쟁했고, 오늘밤에도 그들은 학원가를 헤매며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이해찬 세대”라는 자조적 표현이 웅변하듯이 대학입시 제도가 수없이 변화했어도 학생들의 학력은 신장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왜 그럴까. 경쟁이 부족해서일까. “이 놈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딴 짓만 해서 그럴까?”

그렇지 않다. 경쟁 그 자체는 부족하지 않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죽도록 경쟁하고 있다. 옆에서 보면 애처롭기 그지없을 정도다. 문제는 경쟁의 양태인 것이다. 틀리지 않기 위한 경쟁, 창의적인 사고보다는 모범답안을 무비판적으로 달달 외는 경쟁, 이런 것들이 그들이 벌이는 경쟁이라는 게임의 규칙이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규칙이 잘못된 곳에서는 아무리 경쟁이 극심해도 그 성과는 보잘 것 없을 수밖에 없다.

결국 훌륭한 경제성과를 위해서는 충분한 강도의 경쟁이 올바른 양태로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가장 기본은 각 경제주체가 가격을 가지고 경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대한민국 성인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 것이 휴대폰이다. 그런데 한 때 휴대폰을 제값주고 사면 바보인 때가 있었다. 특정 통신회사를 선택하고 이를 충분히 오랜 기간동안 이용하기로 약정만 하면 거의 공짜와 다름없는 가격으로 최첨단 휴대폰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단말기에 대한 보조금 지급정책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동통신 3사가 죽도록 경쟁을 하기는 하는데 가격, 즉 통신요금으로 경쟁을 하지 않고 보조금 지급을 가지고 경쟁을 하는 점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공정위는 보조금 지급에 대해 줄기차게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예는 도처에 널려 있다. 구독료 대신 선풍기와 자전거를 가지고 경쟁하는 신문, 회원가입비나 수수료 대신에 회원 수를 가지고 경쟁하는 신용카드 회사들, 수익률 대신에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경쟁했던 재벌계열사들 모두가 그런 예에 속한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로 변모하고 있다. 때로는 돈만 집어넣으면 경제가 성장했던 박정희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시절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제대로 된 경쟁을 장려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개혁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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