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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점을 학생 ‘스스로’ 하는 강의 … 생각하는 철학수업
채점을 학생 ‘스스로’ 하는 강의 … 생각하는 철학수업
  • 송수연 신라대 4학년
  • 승인 2004.06.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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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 명강의: 김치완 신라대 강사의 ‘동양사상의 이해’

‘동양사상의 이해’. 정말 고리타분할 것 같은 과목 명이다. 대학가에 불어 닥친 취업열풍으로 기초학문이 죽어나고 있다는 현실의 논리라면 이런 류(?)의 과목들은 ‘죽기 십상’이다.

하지만 신라대 김치완 교수의 강의는 이런 예상을 뒤엎고 만다. 대부분 학생들의 입 소문을 통해 수강생이 무려 2백여 명에 달하는 강의의 인기비결은 바로 ‘수업에 깃 든 철학’.

단정한 바지에 넉넉해 보이는 셔츠, 거북스럽지 않은 머리색의 교수는 “수업시간에 자도 좋고, 나가도 좋습니다. 출석은 개인의 자유에 맡기겠습니다. 또 말이 지나치게 빠르기 때문에 두 시간 분량을 한 시간으로 줄여 수업하겠습니다”라며 시원스레 강의 진행의 설명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자유분방한 수업?
언뜻 보면 ‘열심히 하지 않아도 점수 따기 쉬운 과목’ 정도로 여길 수 있겠지만, 수업이 중반을 흐를 때쯤이면 이러한 오해는 자연스레 사라진다. 수업의 참가부터 학생들 자신의 결정에 의해 진행되고, 이후 결과에 따른 책임 역시 스스로 져야 하는 수업이기에 학습부담은 가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담이 있음에도 아이러니하게 학습 욕구는 치솟는다. 이는 뛰어 놀아도 될 정도의 넓은 강의실에 빼곡히 들어찬 학생들과의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학들의 교양강좌는 많은 인원수에 비해 강의실이 좁거나 교육환경이 열악하지만 그 속의 교수들에게는 학생과의 의사소통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 실현 불가능 한 상황에서 소통되는 교육이 가능한 방법은 교수의 신적 능력이다. 그러나 보통 교수들은 인간이기에 신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 듯 하다.

이러한 교육 현실을 눈치 챘는지 김치완 교수의 강의는 단시간으로 이루어져 학생들에게서 고도의 집중력을 이끌어낸다. 원론적인 이야기를 즐비하게 늘어놓는 이론 설명과 달리 사회?문화 등을 통한 예시를 들어 더욱 흥미진진한 수업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론 설명이 끝난 정규수업은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마치게 되지만 소통을 위한 온라인 상(http://cafe.daum.net/zgie)의 토론은 수업의 연장선이다.

온라인 상에서는 강의 내용 뿐 아니라 다양한 문제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한창이다. 학생들의 질문이 없어 머뭇대는 대부분의 강의 풍경과 사뭇 다른 것이 사실. 그도 그럴 것이 교수가 수업하는 신라대 외 부산대, 부산카톨릭대, 경남대 학생 중 과제물 채점단을 공개 모집해 채점이 이루어질 정도로 학생의 주체성이 실현되는 강의기에 그런가 싶기도 하다. 채점단 구성을 통한 채점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까 우려도 되지만, 채점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 두는 채점단의 활동으로 불쾌감은 곧 무색해 진다.

무엇보다 채점단 구성이 가능한 이유는 교수의 ‘사람은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를 바탕에 둔 특별한 과제에 있다. 이번 강의 과제는 부산지역의 공원, 절 등을 직접 가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라고 규정하게끔 하는 조건이 되는 것인가’와 관련한 생각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대개 수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종교의 기원은 무엇인가, 현대인의 삶에서 종교가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등의 과제를 요구하기 마련인데. 참, 특이하다.

특이한 과제 제출을 위해서는 그와 관련한 내용을 한번이라도 생각하게 된다. 레포트 짜깁기가 가능한 내용이 아니거니와 자신이 인간이라는 점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기 때문. 그 많던 수강생 대부분이 과제를 제출했으니, 흥미로운 과제이기도 하면서 책에서 알려주는 직접적인 내용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과제임은 틀림없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점수에 대해 연연하기보다 스스로 과제에 충실했다는 만족을 느끼고, 사고를 인정하는 방법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몸으로 느낀 배움은 쉽게 잊혀지기 어려울뿐더러 이에 따른 구체적 실천이 가능하기에.

점수 잘 안나와도 수업 만족
또한 학기 뿐 아니라 방학 중 틈틈이 이어지는 ‘학술 세미나 활동’은 지적 욕구를 자극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대개 학기 중에만 공부를 한다는 대학생들의 얕은 생각을 고쳐주는 ‘약손’인 셈이다. 

교육은 스스로의 삶을 다양한 사고로 변화, 발전시켜 ‘자기 철학’을 통한 자아의 성숙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류’의 수업이 인기 있는 까닭은 돈 버는 기계가 아닌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내용을 다루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듯 김치완 교수의 강의가 학생들로 하여금 철학의 필요성을 본능적으로 갈구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학생이 수업의 주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송수연(신라대 4학년, 환경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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