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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과 해석 통권 86호
문헌과 해석 통권 86호
  • 교수신문
  • 승인 2021.02.0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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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과 해석 모임 지음 | 문헌과해석사 | 312쪽

1997년 가을 통권 1호 발행을 시작으로 한국학 연구자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아 온 『문헌과 해석』이 통권 86호를 맞아 새 단장한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전공, 소속, 분야를 불문하고 다양한 연구자들이 한국학 관련 주제로 매달 한 차례 강독 및 발표 모임을 갖고, 모여진 성과를 『문헌과 해석』을 통해 발표하는 ‘문헌과 해석’ 모임은 1996년 겨울 첫 모임을 가진 이래 최근에는 뉴노멀 시대 비대면 모임으로 이어 가면서 25주년을 맞고 있다. 사반세기 동안 모임을 통해 발표된 편수는 약 2,000편, 86회 발행된 『문헌과 해석』에 수록된 편수는 1300여 편이나 되며, 주요 성과들이 단행본으로 묶여 독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문헌과 해석』의 특기할 만한 성과는 그동안 발굴된 다양한 문헌들에 있다. 소나무 식목 정책에 관한 정약전의 책 『송정사의(松政私議)』(안대회, 20호), 조선시대 담배 재배법과 흡연문화 등을 소개한 백과사전인 『연경(烟經)』(안대회, 24호), 유득공의 고대 동국(東國) 시가집인 『삼한시기(三韓詩紀)』(김윤조, 29호), 한국 최초의 차 전문서 『동다기(東茶記)』(정민, 36호), 19세기 규방 여인들의 놀이문화를 보여주는 게임북 『규방미담(閨房美談)』(이종묵, 37호), 울산 반구대(盤龜臺)를 소재로 한 그림이 수록된 겸재 정선의 화첩 『공회첩(孔懷帖)』(윤진영, 43호) 등이 발굴 소개되었다. 또한 정병설 교수는 조선시대 화첩 『중국역사 회모본(中國歷史繪模本)』 서문이 사도세자의 죽기 전 마지막 친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박철상 선생이 유홍준 교수가 쓴 『완당평전』의 오류를 처음으로 지적한 것도 『문헌과 해석』을 통해서였다.

본문과 표지 디자인이 새롭게 바뀐 『문헌과 해석』에는 ‘옛 글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붙였는데, 새로운(혹은 기존의) 문헌에 대한 끊임없는 ‘발굴’과 ‘해석’이 이 책의 본령임을 내세우기 위함이다.

86호의 첫 꼭지는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갑산(甲山)과 명승’으로 향하는 시선이다. 안대회는 고위직이나 측근이 국왕을 알현한 일을 소개한다. 이수인과 유규(유성룡의 후손)가 18세기 후반에 정조를 알현하고 남긴 기록은 공적인 기록물에는 보이지 않아 사료적 가치가 높으며, 알현 과정과 문답 내용이 자세하여 흥미를 돋운다. 박동욱은 병든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인 효자 하진태의 일화를 그의 자식인 하익범의 일기로 소개한다. 옛 자료에 또렷이 새겨진 각별한 효성은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김세호는 지금은 갈 수 없는 곳, 개마고원 위에 자리한 갑산의 조선시대 이미지를 상기시 킨다. 유배지와 유람지라는 두 얼굴을 지닌 갑산에서 특별한 문화공간을 손수 찾아내어 들려준다.

이번 호에서는 ‘책의 여정’이라는 주제를 특집으로 마련하여, 17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선에서 전래된, 혹은 조선 밖으로 반출된 서적들의 발자취를 찾는다. 먼저 노경희는 타국에서 조우한 조선 서적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낸다. 19세기 이후, 서적 또한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해외로 흩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중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쿄, 버클리에 있는 조선 서적의 현황을 전한다. 송강호는 병자호란 이후 연행(燕行)을 수행한 사신들의 기록과 저술, 그리고 실물 자료 등으로 조선에 전래된 만주어 문헌을 조명한다. 만주어 문헌은 그동안 한문 문헌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향후 연구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유리는 17세기 일본에서 양명학 비판서 『학부통변(學?通辨)』의 한?중?일 삼국의 판본이 모두 유통되고 있었다는 점을 밝히면서 당시 활발했던 동아시아 서적 교류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이번 호에 소개되는 발굴 자료는 세 편이다. 이종묵은 미국 버클리대 동아시아도서관에 소장된 『학림보결(鶴林補缺)』을 파헤친다. 송나라 나대경이 쓴 『학림옥로(鶴林玉露)』의 시화(詩話)를 뒤이은 책으로, 19세기 중반 한국의 시문 비평집이 담은 이색적 일화를 맛볼 수 있다. 작자를 추적할 단서를 덧붙여 지적 호기심도 자극했다. 이창숙은 경기도박물관이 입수한 풍양조씨 문중의 문서 가운데 조완구의 『노정신화(老汀新話)』를 공개한다. 조선시대 한문 희곡의 새 발굴이다. 자료의 번역과 더불어 이와 연관 깊은 중국 고전 희곡에 관한 지식도 곁들였다. 정민은 정인보가 석주명에게 써 준 두 편의 장편 한시를 들려준다. 문집에 보이는 작품은 ‘나비학자’ 석주명의 박식함을 가늠케 하고, 현재 후손가에 소장된 「일호호접도행(一濠胡蝶圖行)」은 ‘남나비’ 남계우의 화가적 위상을 돋보이게 한다.

‘옛 그림 읽기’에는 두 편의 글을 실었다. 그동안 국내 여러 사찰에 살아 숨 쉬는 불교 미술의 아름다움을 소개해 온 권중서는 이번 호에서 독자들을 제천 신륵사로 인도하여 극락전 외부 벽화의 내용과 의미를 들려주고, 이경화는 겸재 정선이 1712년 금강산 여행에서 세 곳의 폭포를 화폭에 옮겼는데, 이 중 소재지가 불분명한 사인암을 그림과 두 편의 시라는 단서를 통해 추적한다.

‘고전 강독’에는 두 편의 글을 실었다. 송준호는 박제가의 시를 강독한다. 13수의 시에 담긴 박제가의 현실과 자아 인식, 벗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계절의 풍경은 오랜 기간 제한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 김영진은 이번 호부터 서화 사료를 강독한다. 서적 혹은 그림에 남겨진 또 다른 글은 독자들을 작자와 작품의 정면으로 이끌어 주는 창구라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로 『도서보(圖書譜)』의 지(識)를 통해 정육(鄭堉)과 신위(申緯)를 만나 본다. 비록 서화에서 부수적인 존재이나, 그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날인됨으로써 혼을 불어넣어 주는 전각의 매력에 빠진 그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 후기 문인들의 전각 애호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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