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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 작가 큐레이션 6] 몸에서 시작되는 사유, 모성에 대하여
[신진 작가 큐레이션 6] 몸에서 시작되는 사유, 모성에 대하여
  • 하혜린
  • 승인 2021.02.01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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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린, 「내 피부 같은 담요 DOS-2018」, 2018, 복합매체, 12X47X22cm.

작가의 개인적 경험들은 사유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이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모든 인류의 문제로 확장된다. 나아가 신체에 각인된 기억은 삶의 진정성을 부여하며, 원초적이고 직접적이며 생생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김하린은 모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자서전적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있는 그를 지난 26일 인터뷰했다. 

 

[신진 작가 큐레이션 6] 김하린 인터뷰

김하린, 「수천년을 살아 온 자아에 대한 이야기」, 2010, 캔버스에 혼합매체, 142X187cm

 

김하린이 모성이라는 주제를 탐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제 작업은 자아탐구에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자아탐구 자체는 불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아는 항상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저는 ‘자아’의 본질을 하나의 작품으로 응결하는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계기로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인간성에 대해 폭넓게 탐색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성에 대한 탐구 역시 불현듯 시작된 것이 아닌, 특정 ‘인간성’이 집중된 한 항목이었습니다.”

개인적 경험이 작품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을 경험했습니다. 여성으로서 겪는 ‘몸’의 변화들은 ‘여성의 삶으로써 무언가를 수행함’을 불러일으키며 일상을 점유했습니다. 임신, 출산, 양육은 이전의 삶과 결별하고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이자, 신체 그리고 문화적 코드를 지닌 존재가 ‘여성성’에 대해 자각을 할 수 있는 매우 강렬한 사건입니다. 모성에 대한 관심은 제 개인적 경험에 의해 촉발됐지만 ‘여성’, ‘여성성’에 대한 사유는 인간적 조건이나 상태에 대한 전 인류적 문제입니다. 제 예술이 사적인 생활의 발로일지라도, 생리적, 문화적 경험이 각인된 몸이 행하는 예술을 통해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하린, 「내 피부 같은 담요 DOS-2018」, 2018, 복합매체, 12X47X22cm.

「내 피부 같은 담요 Blanket Like My Skin」 는 이어 붙이는 작업이다. 그는 버려진 포장지나 이면지 등을 활용했다. “이 작품은 버려진 다양한 종류의 폐지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 위에 생명 원형의 이미지를 닮은 작은 단위의 패턴을 드로잉하고 그 조각을 붙이고 꿰매는 과정을 거칩니다. 타자에 대한 애정으로 이불을 꿰매는 마음과 공감하고,
 버려진 조각들을 다독이고 연결해 새 생명을 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됐습니다. 
서로 다른 역사를 지녔던 작은 단위의 것들이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채 연결되어
 하나의 울림을 향해 
나아가는데, 이 울림은 
전시공간에서 공중에 매달린 
나무들에 덮여 나무의
 영혼을 따뜻하게 위로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살갗과 같은 생물 원형의 것이 타자에 덮여져 그녀의 온기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찢어지기 쉬운 재질의 폐지들은 촉각 층이 살아있는
 피부의 은유이며, 그 위의 드로잉은 유전자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생명의 흔적, 타투와 같습니다. 또한, 살아 숨 쉬던 생명의 역사를 그대로 표출하는 뿌리를 바깥에 그대로 드러내 모성의 육체에 담긴 인간 시초의 모습과 같이 중력을 벗어난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줄기와 뿌리가 섬세하게 드러난 죽은 나무들의 모습이 위, 아래 중력의 구분 없이 공중에 부유하는 듯 설치되어, 그들이 살아있던 삶을 공기 중에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작가의 작품에서는 ‘분절된 것들을 새롭게 잇는’ 과정이 나타난다. “이 방식은 매우 오랜 세월 동안 주로 여성이 행해왔던 자급 노동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는 상품 가치 생산과는 거리가 멀고, 삶을 창조, 유지, 재창조하는 것 외에 다른 이익에 관여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행위와 함께 하는 밤은 하루하루 엇비슷했지만, 행위 속에 마음이 담겨있어 시간을 영원으로 늘리기도, 순간으로 응축시키기도 합니다. 제 행위 역시 유사합니다. 저는 기획 단계에서 구체적인 작품의 크기를 정하지 않은 채, 작품에 열의를 쏟는 시간과 함께 점진적으로 자라나는 방법을 취합니다. 이들은 거부감 없이 어느 방향으로든 다른 개별적인 요소들과 접합될 수 있으며, 다시 조각조각 해체될 수도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변형되고,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만날 준비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김하린, 「황금젖길」, 복합매체, 137x78x67(cm), 2018
김하린, 「모성의 공간」, 복합매체, 137x78x67(cm), 2018

 

「모성의 공간」 작업과정.

작가가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는 시각보다는 촉각적 경험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촉각을 시각화하기위해 어떤 실험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모성의 공간」과 「내 피부 같은 담요 DOS-2018」은 민감한 감각 수용체인 피부 그 자체와, 표면에서 생성되는 촉감과 감싸 안음의 정서를 자아내며 자연스럽게 타자와 나 사이의 경계심이 해체되는 상황을 추구합니다. 촉감의 감각은 맞닿은 두 매체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상호 열린 상태일 때만 온전히 작용할 수 있는 감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촉각적 작품의 이념은 타자를 존중하며, 그들을 내 안에 들여 포용하는 길로 인도하게 하는 것이지요.”

작가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어떠한 사유 또는 경험을 하기를 원할까. “저는 관람객을 항상 염두하고 작업합니다. 작품의 물질성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감각 덩어리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개념보다 감각적 경험이 더 중요하고 관람객들이 제 작업에 흥미롭게 다가가길 원합니다. 또한 감각적 체험을 통해 더불어 느끼기를 원합니다. 모성에 관한 작업을 하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근래에 산출된 작품들이 ‘타자포용성’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타자 포용성’을 지금 언급하는 이유는 관람객의 존재와 그들의 정서 자체도 제 작품에 포용하고 싶다는 의욕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관람객을 포용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요.” 

앞으로의 작업계획에 대해 물었다. “사소함이 모여 거대해지는 작업 몇 개를 구상했고, 작업 중입니다. 약하거나 버려진, 혹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소중히 다뤄 보고자 합니다.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에 과도하게 정성을 다하는 예술이 발산할 수 있는 아우라에 관심이 있습니다. ‘모성’적 정서의 단편이 예술가의 행위와 맞닿은 지점이지요.”  

 

김하린(44세)=홍익대 회화과 졸업, 뉴욕 프렛인스티튜트 회화과 석사, 홍익대 미술학 박사수료, 개인전 6회, 그룹전 다수.

하혜린 기자 hhr210@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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