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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가치 위에 지속 가능한 출판 생태계 만들어야”
“연대의 가치 위에 지속 가능한 출판 생태계 만들어야”
  • 박강수
  • 승인 2021.02.01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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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가 말하는 2021년_출판계 과제
사진=연합
사진=연합

 

현재 한국 출판계의 현실을 진단한 30개 출판사의 답변은 서로 포개지고 확장되면서 업계 전반의 밑그림을 그려냈다.

첫 번째는 컨텐츠에 대한 고민이다. 출판의 위기 밑바닥에는 ‘책을 읽지 않는 현실’이 있다. 종이책 독서율(1년간 1권 이상 읽은 사람 비율)은 꾸준히 줄어 2019년 기준 52%를 기록했다(문화체육관광부 ‘2019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그러나 독자 탓을 할 수는 없다. 민음사는 “만들고 싶은 책과 독자들이 찾는 책 사이 거리를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를 화두로 꼽았다. 크레파스북 역시 “인스턴트 식품처럼 한 번 보고 나면 그만인 책이 인기를 끄는 실정”이라며 “책의 본래 기능과 상업상 사이 밸런스를 맞춰 나가는 일”을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기획도 언급됐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새로운 가치관과 행동양식의 변화를 제안할 수 있는 도서가 다양한 분야에서 출간되어야 한다”(김영사), “인간 삶의 양태의 정신적, 물질적 균열을 파헤치고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문학과지성사) 등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AK커뮤니케이션즈는 “코로나19에 따른 트렌드 변화에 맞춘 도서”, 부키는 “독자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기획력”, 한겨레출판은 “시의성 맞는 대중교양물과 페미니즘 관련 도서”, 윌북은 “팬데믹 이후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경제, IT, 과학 분야에서 수요”에 방점을 찍었다.

 

‘코로나 특수’의 그림자 주목해야

 

일상화된 비대면 환경에 주목하는 출판사도 다수였다. 실제 지난해 대형 온라인서점과 전자책에 대한 도서 수요는 전년 대비 증가 추세를 보였다. 문학동네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상황에서 사람들을 얼마나 책과 가깝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저자가 오프라인이 아닌 다양한 채널을 통해 독자와 만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푸른역사는 “대면 접촉이 줄어들어 사적인 시간이 늘어난 시민들을 독서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현실문화는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책과 관련한 담론의 장”을 강조했다.

출판계의 ‘코로나 특수’는 그러나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소식은 아니다. 지난해 5월 대한출판문화협회는 「2019년 출판시장 통계」 보고서에서 위 현상을 이렇게 요약했다. “팬데믹이 국내 출판 유통시장에서 온라인 쏠림 현상을 가속화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 기울어진 출판 시장의 기울기가 더 가팔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서점∙출판사와 지역서점, 영세출판사 사이, 학술서와 실용서 사이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출판 시장의 다양성도 요원해진다.

바다출판사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다양성의 확보로 군소 출판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후마니타스도 “중소 출판사들, 동네∙지역 서점들이 생존할 수 있는 출판 생태계 만들기”를 첫 손에 꼽았다. 돌베개는 “대형 서점이 아닌 독립서점들이 저자와 출판사, 독자 사이 가교 역할을 하면서 지역 문화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혜택과 지원이 필요하다”라는 답을 내놨다. 사계절 출판사는 “작가, 번역가, 외주 디자이너, 외주 편집자 등 출판업 종사자들이 마땅한 대우를 받고 권익이 향상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도서정가제 확립과 도서관 지원 시급

 

진단은 구체적 제도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입장은 출판사 사이에서도 다소 갈리는 모양새였다. 갈무리가 “도서정가제 안착”, 삼인이 “도서정가제를 굳건히 지키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뽑은 반면 청송재는 “도서정가제가 가격책정권을 제약해 영세출판사들의 경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학사상은 “독자와 출판사, 유통사의 상생을 위해 도서정가제에 대한 명확한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박이정 출판사는 “안정적인 출판 유통 구조를 위해 일본이나 유럽처럼 도서관의 의무적인 구매를 시스템화해 학술서든 인문 서적이든 작은 분야 도서도 꾸준히 출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철수와영희 출판사는 “더불어 사는 삶을 중요시하는 연대의 가치”를 말했다. 교육공동체벗은 “소비 측면에서 공공 독서 문화와 비평 문화 활성화, 생산 측면에서 문제 있는 책을 게이트키핑하는 출판 직업 윤리 확립”을 꼽았고, 갈라파고스는 “어느 때보다 작은 목소리들에 주목하는 일이 중요한 때”라면서 “2021년 세상에 나올 책들이 ‘위기에는 늘 희생이 뒤따른다’는 구호 아래 소리도 없이 스러지는 삶과 존재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견고한 창이 되기를 소망한다”라고 적었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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