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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진 색 경험에 균열 일으키기
길들여진 색 경험에 균열 일으키기
  • 하혜린
  • 승인 2021.01.29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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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온 컬러』
데이비드 스콧 카스탄, 스티븐 파딩 지음 | 홍한별 옮김 | 갈마바람 | 326쪽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색에 대하여
색이 언어를 뛰어넘을 수밖에 없는 이유 

 

이 책은 엄밀한 구분을 통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색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과 교차하는 10가지 색채들을 탐독한 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켜켜이 쌓여있는 상징과 언어들. 그것들이 우리의 눈에 프리즘을 덧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림에 관심이 있는 작가와 글에 관심이 있는 화가가 만나 ‘색’의 지평을 열어젖혔다. 『온 컬러』는 우리가 색이라고 부르는 현상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각 카테고리별로 색들을 구분했다. 그럼에도 각 장을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색의 세계를 다뤘다는 점이다. 노란색에는 인종의 문제가, 초록색의 기저에는 정치가 있다. 우리가 남색이라고 부르는 인디고에는 흑인 노역과 노예제 정당화의 문제가 깔려있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사피어(Edward Sapir)는 언어란 “닦여있는 파인 길”에 가깝다고 했다. 언어가 우리의 시각에 초점을 부여하고, 시야를 정의한다는 의미이다. 

색도 “파인 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색이 언어를 뛰어넘는다고 주장한다.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색이 많기 때문이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색들이 동일한 언어로 묶인다는 사실을 우리는 쉬이 망각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언어가 말해주는 색만을 보는 셈이다. 

하지만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색은 세상에 대한 경험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색으로 정서를 표현하고, 정치·사회적 존재들은 색깔로 자신을 내세운다. 색이 없다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물리적 공간 역시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색은 공간을 구분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정치는 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정치는 어쩌다가 색으로 나뉘게 됐을까. 저자는 빤하다고 말한다. 색이 알아보기가 쉽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니까. 하지만 한편으로 색깔이 정치를 대표할 때, 보이지 않는 위험이 늘 수반된다.    

정치는 어쩌다 색으로 나뉘게 됐나

정치에 활용되는 색들은 저마다 역사와 유래가 있다. 문화 혹은 시기에 따라 그 의미가 휙휙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생태적 목적에 헌신하는 녹색당의 ‘녹색’이 이란에서는 이상주의적 정치를 표명하는 추동의 논리로 기능한다. 프랑스 역사 속에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공산당과 연결돼 오던 붉은색은 미국의 공화당을 대표한다. 

양분화된 색깔은 구분을 더욱 용이하게 하지만 상징으로 굳어짐에 따라 우리의 시야를 가릴 수 있다. 임의적이었던 색이 정치 담론과 만나 본질적, 영속적 특징으로 우리의 뇌리에 굳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10개의 색들을 경유해 색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권유한다. 보이지 않는 색의 세계를 스펙트럼의 형상으로 펼쳐냄으로써 색이란 고정된 채 죽어있는 대상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클로드 모네, 채링 크로스 다리, 탬스강, 1903, 뮈제 데 보자르 드 리옹. 사진=아트 인스티튜트 시카고
클로드 모네, 「채링 크로스 다리, 탬스강」, 1903, 뮈제 데 보자르 드 리옹. 사진=아트 인스티튜트 시카고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색의 세계 속에서 저자는 예술을 처방한다. 예술가들은 색에 대한 과학적 본질보다 색과 대상 사이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주어진 색들을 활용해 한계를 실험하며, 색이 이루는 굴레에서 나아가고자 시도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상과 나 ‘사이에 있는 것’을 재현하는 일”이다. 

색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이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색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색이라고 쉬이 규정했던 것들. 그것이 색을 포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될 것이다. 책을 읽고 주위를 둘러보자. 세상을 이루는 색들이 더욱 선명히 보일 것이다. 

하혜린 기자 hhr210@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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