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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들, 동남아를 말하다
인류학자들, 동남아를 말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21.01.2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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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석 외 7명 지음 | 눌민 | 428쪽

 

한국 인류학자들이 생생하게 전하는

인류학 동남아 연구의 현주소

 

사람마다 관심사에 따라 동남아를 바라보는 눈이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세계 경제 체제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동남아의 경제력(2017년 현재 동남아국가연합(ASEAN)은 인구 3위, 경상GDP 6위, 상품 수출 4위, 상품 수입 3위를 자랑한다)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또 누군가는 동남아의 빼어난 자연과 문화 유산, 다채롭고 풍부한 먹을것과 쉴곳에 매료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아직까진 구미나 중국, 일본만큼 많지는 않지만) 동남아의 역사, 문학과 예술, 정치 사회 현상과 같이 좀더 복잡한 영역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에 관심을 분명한 것은 동남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추세에 맞추어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고 다양한 차원의 책이 출간되고 있으며, 점점 더 고급한 정보와 분석, 학술 자료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에서 밝히듯이, 한국에서 동남아 지역연구의 첫 세대를 주도한 학자들은 비교정치학의 학풍을 지닌 정치학자들이었다. 그들에 이어 동남아 연구를 견인한 집단은 문화인류학자들이다. 한국의 문화인류학자들은 그 학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기간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동남아 연구에 활발히 참여하였고, 경제, 종족, 종교와 같은 전통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관광, 보건, 개발과 같은 새로운 분야로 관심을 넓혀나감으로써 정치학과 더불어 동남아 지역연구의 “양대 축”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동남아가 한국 문화인류학의 관심 지역이 된 시기는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이니 빠른 시기는 아니라 할 수 있다. 한국 문화인류학계에서 동남아 연구의 물꼬를 튼 학자는 오명석이다. 그는 말레이반도 남부의 조호르 지역의 소규모 농민을 대상으로 한국인에 의한 첫 현지조사를 수행한 것을 시작으로 2020년에 은퇴하기까지 수많은 인류학자들과 교류하고, 제자들을 배출하고, 뚜렷한 학문적 성과를 냄으로써 인류학적 동남아 지역연구의 영역을 풍유롭게 만들었다. 동남아 연구에 대한 그의 역할은 그만큼 지대하다. 이 책은 오명석과 그의 동료/제자 인류학자들이 참여하여 동남아 지역연구에 대한 한국 인류학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깊이 보고 꼼꼼하게 읽고 두텁게 쓰는 동남아 사회문화 여덟 가지 이야기

 

동남아는 지리적, 종족적, 종교적, 언어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인도와 중국의 영향, 아랍과 서구와의 지속적인 교류, 화인들의 이민, 제국주의 세력의 식민화, 태평양전쟁 등을 공유하며 복잡다단한 지역적 특수성을 형성해왔다. 동남아는 각 지역과 국가마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한편 유사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홍석준의 제안과 같이 “이 지역을 개별적으로 보는 동시에 전체적으로도 파악”해야 한다(29쪽 참조).

따라서 동남아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는 동남아의 복잡하고 다채로운 사회, 문화, 정치, 역사만큼이나 스펙트럼이 넓다. 종족, 종교, 교환, 언어와 같은 인류학의 전통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 정치, 경제 현상 또한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 또한 종족성, 마르셀 모스의 교환 이론, 언어를 통해 보는 사람됨 등과 같은 인류학적 개념을 탐구하면서도, 지역과 국가, 자본과 노동, 경계와 국경, 국제 협력과 공동 대응, 이민과 난민, 공공 의료와 같은 현재의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파고들고 있다.

 

1장에서 홍석준은 동남아의 역사, 식민 지배, 음식, 종교, 소수민족과 국가, 언어적 통일성과 다양성, 종족 간 갈등 등을 개괄하며 이 지역의 특수성과 고유성을 논한다. 인류학적 흐름의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2장에서 오명석은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결혼, 공덕 쌓기, 일방적인 자선, 결혼과 장례를 통한 교환의 구체적 사례를 들며 증여와 호혜성의 개념을 논한다. 인류학의 고전 개념들이 어떻게 적용되고 더 나아가 어떻게 새로운 개념으로 탄생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3장에서 채수홍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개혁을 통해 시장경제로의 급속한 이행을 겪은 베트남의 노동자들을 조사함으로써 그들이 급격히 변하는 정치, 경제 현상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고정 관념을 버리고 부단히 변화하는 정치 경제적 현실 속에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4장에서 강윤희는 인도네시아의 고립 부족인 쁘딸랑안 사람들의 언어 습관을 분석함으로써 그들의 코스몰로지, 관계 속에서 사람됨, 가치 체계를 드러내는 흥미진진한 글을 선사한다.

5장에서 이상국은 일국 중심의 연구에서 벗어나 변방을 주목하며 동남아를 거꾸로 보고 거꾸로 쓰기를 제안한다. 무주권 지역이 근대 국가로 포섭되어가는 과정과 현재 틈새사회체제로서의 변방을 소개함으로써 휴전선에 가로막힌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6장에서 서보경은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의 의료 체계와 한국을 비교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사회에서의 공공 의료에 대해 고민한다. 동남아를 한국 의료의 수출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결코 인수공통감염병이나 조류독감과 같은 전 세계적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의 묵시록적 통찰은 읽는 이를 서늘하게 만든다.

7장에서 정법모는 필리핀에서의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현주소를 짚는다. 그는 필리핀 빈민의 처지를 함께하다 한국 기업 측으로부터 “국익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 에피소드는 인류학이 연대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는, 인류학자가 진실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8장에서 김형준은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교가 어떻게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토착 종교과 결합하고,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들어가고, 또 국가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설명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한국의 인류학자들은 동남아 지역연구에서 인류학적 개념의 반성과 정교화를 시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사회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또한 인류학자로서의 학문적 성취뿐만 아니라 연대와 실천이라는 동시대적 요청에 예민하게 대응한다. 이 책은, 동남아에 대한 좀더 섬세한 이해를 얻고자 하는 독자와 동남아를 접하는 한국인으로서 가져야 할 국제적인 감각을 키우고자 하는 독자들, 그리고 인류학을 통해 동남아를 다가가고자 하는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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