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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의 독서열
에도의 독서열
  • 교수신문
  • 승인 2021.01.2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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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도시유키 지음 | 노경희 옮김 | 소명출판 | 269쪽

이 책은 ‘에도의 독서열-스스로 공부하는 독자와 서적유통’이라는 책 이름처럼 ‘에도 시대의 독자와 서적 유통’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18세기 이후 에도 후기에 사서(四書)를 비롯한 유학 경전에 히라가나 해설을 붙인 ‘경전여사(經典余師)’라는 시리즈의 책들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그것은 스승에게 전통적인 한문 읽기 방법인 ‘소독(素讀)’을 배우지 못한 서민들도 이제 책을 통해 독학으로 유학을 배울 길이 열렸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식자층의 증가와 배움에 대한 욕망, 시간과 물질적 여유 증가, 그리고 대중을 상대로 한 출판업의 발달 등이 어우러져 엘리트 계층에 국한되었던 고급 지식(유학 경전)의 대중화가 펼쳐진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전통시대에 스승에게 나아가지 않고 ‘책’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 세상이 그 이전과 얼마나 다른지는, 오늘날 SNS와 1인 미디어의 송출 등으로 집단 지성이 형성되고 새로운 문화가 펼쳐지는 것에 비교한다면 보다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경전여사』와 같은 책이 ‘생각하는 힘’을 민중에게 부여하였고, 그러한 근세적 지식의 형태가 바로 근대 지식의 기반이다”라고 한 점은, 단순히 서적의 보급에 끝나지 않고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는 힘’을 ‘스스로 기를 수 있게’ 하였다는 점이 곧 ‘근대’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

에도시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착실히 획득하였던 지식은, 그들에게 독서 생활과 문자를 이용한 자기표현의 즐거움을 열었다. 소설을 비롯한 오락적 독서물은 그들을 시장으로 삼았고, 그들 또한 문예 세계의 창작자로 참가하면서 일상에 윤택함을 더했다. 거기에 책을 통해 정보를 정리하고 상황을 파악할 능력을 얻었다. 메이지 근대에 이르러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관에 적응할 수 있던 것도 에도 후기에 넓은 범위로 배양된 지식의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제도로 확립된 ‘교육’이 비교적 빨리 실현될 수 있던 것을 오로지 근대의 힘, 메이지 정부의 수완에 따른 것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배우는 일을 당연히 여기게 된 대중의 의식, 교재와 참고서를 신속하게 제작하고 유통할 수 있던 출판 업계의 능력이 지방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높은 수준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

한 권의 책이 그 시대에 어떠한 역할을 담당했는지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누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즉 ‘독자’를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독서의 실제 모습, 독자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서적 향유의 실태는 서적의 종류와 독자에 따라 제각각인 매우 개별적인 행위이다. 대상이 어느 시대의 누구든지,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차지해 가는지 실증적으로 그 자취를 따라가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에도시대의 서적 향유와 관련한 일기나 장서 목록, 혹은 서적 구입에 관한 사료 등 그간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하였지만 개인의 독서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미시적인 자료들을 바탕으로 에도시대에 역사의 큰 흐름을 만들어 낸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독서 활동을 살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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