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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 교수신문
  • 승인 2021.01.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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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태 지음 | 푸른역사 | 344쪽

학적부·교지·동창회 명부에 졸업생 구술까지

숫자로 확인하는 일제하 민족차별의 실상

 

일제강점기 한국사회에서는 신분차별, 성차별, 빈부차별, 학력차별, 민족차별 등 각종 차별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 중 일제강점기의 차별을 표상한 것은 민족차별이었다. 그럼에도 법제나 구조에 주목한 민족차별 연구들은 있으나 이를 전면적·체계적으로 해부한 연구는 의외로 빈약하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민족차별의 양상, 구조와 특성 등을 체계적·실증적으로 해부하려 시도한 연구서란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특히 식민지사 연구에 천착해온 지은이는 명시적인 법규범이나 제도를 통한 법적 민족차별이나 정치경제적 불평등 구조와 위계관계에 의해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민족차별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편견이나 혐오에 의해 일상적·무의식적으로 자행되는 관행적 민족차별의 문제를 특별히 주목해 구명했다.

 

중등교육과 취업의 전 과정의 민족차별을 체계적으로 입증

 

이 책은 식민지 민족차별의 실상을 밝히기 위해 먼저 미시적 사례 연구를 전개했다. 사례연구의 대상으로 강경상업학교를 최종 선택했다. 충남 소재의 강경상업학교는 1920년 전국 7번째로 설립된 데다가 당시 재학생의 한·일 민족 간 비율이 비슷해, 민족차별의 문제를 살펴보기에 적합한 실업학교였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중등학교는 전체 한국인 가운데 1퍼센트 미만만이 졸업장을 가졌을 만큼 우수 인재가 모였던 교육공간이었다.

이 책은 강경상업학교에서 교육 당국·학교·교사의 학생 선발과정, 지도·교육과정, 평가과정, 학사징계·중퇴 과정, 그리고 학생의 취업과정, 취업 후 직종 배치와 직위 변화 등 한국인 학생이 학교 입학부터 졸업 이후까지 거의 모든 과정, 국면에서 민족차별이 일상적으로 자행됐음을 체계적·객관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이 책에서 제시한 60개가 넘는 통계표는 민족차별의 실상을 구체적 데이터에 입각해 입증하고자 한 노력의 일 단면이라 하겠다.

 

방대한 자료에 학생일기, 졸업생 면담까지 더해 심층 분석

 

해방 이전 25년간 강경상업학교 한·일 졸업생 977명, 중퇴생 512명 등, 총 1,489명의 학적부를 데이터베이스화해 분석했다. 학적부를 활용한 기존 연구에서는 거의 시도되지 않았을 정도로 장기간에 걸친 방대한 규모의 학적부를 분석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중퇴생 학적부에 대한 분석은 이 책에서 최초로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 근대사 연구에서는 최초로 교지校誌 첨부 〈동창회 회원명부〉들, 해방 전후 동창회 발행의 〈동창회 명부〉들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해 미시적 분석에 활용했다. 이외에도 교지, 학생일기, 해방 후 한국인이나 일본인 졸업생의 동창회보 등을 수집해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해방 이전 강상 출신 한국인 졸업생들과 면담하거나 일본 동경에까지 건너가 일본인 졸업생과 면담해 구술 자료를 확보함으로써 문헌자료의 한계를 보충했다.

 

동맹휴학 일반에 대한 분석으로 교사사회의 관행적 민족차별 논리 구명

 

이 책은 특히 민족차별 관련 동맹휴학의 실태를 정리해, 배척 대상 교사들의 관행적 민족차별 언행과, 이를 관통하는 관행적 민족차별의 논리를 구체적·체계적으로 추적해갔다. 이를 위해 각종 신문에서 동맹휴학 관련 기사(1920~38년)를 모두 찾아내 분류, 분석했고, 각종 교사校史, 조선총독부측 자료 등을 보조 자료로 활용했다. 이를 통해 관행적 민족차별에는 교사의 전제와 독선과 억압과 폭력이 수반되는 경향을 보였다는 사실도 구명했다. 나아가 교사들의 언행에는 ① 문명 대 야만의 이분법에 기초한 야만인(종)론, ② 한국인의 결함과 부정성을 드러내기 위한 민족성론, ③ 망국의 현실을 인정하고 자책케 하는 망국민론亡國民論이란 민족차별 논리가 깔려 있음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일본인 교사사회에 퍼져있던 일본의 한국 멸시·차별관을 주목

 

이 책은 특히 일본인 교사를 포함한 재한 일본인들의 내면의식을 지배하던 민족차별의식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 체계화, 확산됐고,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를 검토했다. 그중에서도 ① 일본의 한국 멸시·차별관은 신화와 날조된 역사에 기반한 한반도 조공국사관朝貢國史觀에서 출발해, 청일·러일전쟁 이후 일본판 오리엔탈리즘인 인종론적 문명론, 마찬가지로 인종론적 성격을 띤 국민성론,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결합하거나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했다는 사실, ② 이런 발전 과정을 통해 ‘문명 일본 대 야만 한국’ ‘일본인의 우수한 민족성 대 한국인의 열등한 민족성’이란 민족 서열화 구도의 한국 멸시·차별관이 체계화·심화돼, 일본사회와 재한 일본인사회에 확산됐다는 점, ③ 일본인 교사들도 이러한 한국 멸시·차별관을 내면화해, 민족차별 언행을 일상적으로 표출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를 통해 민족차별은 근대 이후 일본판 오리엔탈리즘과 결합해 심화, 확산된 한국 멸시·차별관이라는 역사의식의 문제임을 확인했다.

지은이는 이 책의 독자들이 한국사회가 과거 일제강점기에 당했던 민족차별의 쓰라린 경험을 기억하고 타자를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오히려 그런 경험과 기억 속에서 조선족, 탈북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오늘날 한국사회의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성찰하고 극복하는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데, 그리고 한국사회가 사회적 민주화와 일상의 민주화를 성취해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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