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제는 왜 완전한 평등성을 구현하지 못하나
대의제는 왜 완전한 평등성을 구현하지 못하나
  • 강원택 숭실대
  • 승인 200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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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리뷰: 『선거는 민주적인가』| 버나드 마넹 지음| 곽준혁 옮김| 후마니타스 刊| 2004| 302쪽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절차적 수준에서 볼 때 꾸준히 발전해왔다. 공정한 선거 경쟁을 통한 집권이라는 대의 민주주의 원칙이 이제 확고히 자리 잡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넹의 책은 이와 같은 절차적 수준을 넘어서 선거의 의미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마넹이 제기한 질문의 핵심은 선거를 근간으로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과연 충분히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 마넹은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추첨 방식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당시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원하는 모든 시민이 추첨이라는 방식을 통해 공직을 맡을 수 있었는데, 이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전문성으로 인한 과도한 권력 향유를 어렵게 만듦으로써 민주적 원칙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봤다. 마넹은 고대 아테네에서 시도된 이러한 추첨 방식이 갖는 정치적 평등성의 추구를 강조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선거를 통한 대의제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마넹이 볼 때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대의제 방식은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완전한 평등성을 구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누가 대표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도입된 초기에 특히 강조되었던 탁월성의 원칙을 언급한다. 다시 말해 고대 아테네에서 일반 시민들 가운데 ‘아무나’ 추첨을 통해 공직을 맡을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대의제 민주주의 초기에는 재산이나 신분 등의 공직 담당을 위한 자격요건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 이후에도 우월한 자질을 갖는 사람, 즉 탁월성을 기초로 한 선택이 계속돼오고 있으며 이는 선거라는 제도에 내재된 특성이라고 마넹은 주장한다.  

 
이러한 마넹의 논의는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표자의 권한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는 오래된 논쟁의 주제로 확대된다. 대표자의 권한은 그가 대표하는 사람의 견해를 그대로 반영해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봉사할 것인지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하는 두 가지 상이한 시각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후자의 입장인 수탁론의 시각에서 볼 때 정치적 평등이라는 원칙은 어느 정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마넹의 시각이다.그러나 마넹의 논의는 기존에 사용되는 선거라는 제도적 장치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수준을 넘어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 왔던 대의제, 정치적 평등이라고 하는 민주주의 근본 원리와의 관련 하에서 선거가 갖는 문제점을 매우 흥미롭게 지적해 내고 있다. 이제 겨우 선거를 통한 공정한 경쟁의 확립에 대해 흡족해 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볼 때, 한 단계 보다 성숙한 대의제 민주주의로의 진전을 위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강원택 / 숭실대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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