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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수교 30년, 기대와 좌절의 역사
한∙러 수교 30년, 기대와 좌절의 역사
  • 박영은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부교수
  • 승인 2021.01.28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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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한국어로 세방화(世方化)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로 ‘세계적 경제 시스템의 통합과 지역별 정치문화의 분화가 동시에 벌어지는 경향성’을 가리킨다. 영국의 사회학자 롤랜드 로버트슨이 만든 말이다. 금융과 무역으로 촘촘히 연결될수록 문화적, 국가적 반목은 심화되는 오늘날의 역설적 현실이 이 표현에 담겨 있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1일 크렘린 궁 너머로 찍힌 새해맞이 불꽃놀이 사진=로이터/연합
지난 1일 크렘린 궁 너머로 찍힌 새해맞이 불꽃놀이
사진=로이터/연합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러시아는 85년간의 단절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20년, 양국은 ‘한·러 상호교류의 해’를 선포하고 다양한 기념행사를 추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러시아 정부가 외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하는 봉쇄조치를 감행하면서, 수교 행사는 줄줄이 연기·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치러졌다. 양국의 인적교류 확대를 가시화하기 위한 행사는 김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양국은 다음 해까지 상호교류의 해를 연장키로 했지만, 올해에도 큰 기대는 힘든 상황이다.


대륙으로 가는 힘겨운 관문, 러시아


비단 팬데믹 상황이 아니더라도,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외부 변수에 의해 부침을 겪는 경우가 잦았다. 남·북·러 철도연결, 시베리아 가스개발, 연해주 농업개발, 북한통과 가스관사업 등 한·러 수교 이후 수많은 협력 이슈들이 정상회담에서 반복적으로 약속되었으나 실행되진 못했다. ‘유라시아 공동번영과 평화공존’이라는 근사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의욕에 차서 시작한 일들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이런 좌절은 불가피한 것이기도 했다. 북한의 안보위협에 대응해 한·미 동맹 최우선주의를 견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2014년 3~4월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세계의 대러 제재 역시 한·러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북핵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깨지곤 했다. 양국 협력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나진-하산 프로젝트 역시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중단되었다.

 

양국의 대표 건축문화양식인 경복궁, 크렘린 궁전을 활용해 제작한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로고
양국의 대표 건축문화양식인 경복궁, 크렘린 궁전을 활용해 제작한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한반도 비핵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공감하고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중단된 나진-하산 프로젝트 복구 등의 이슈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기본 입장은 동일하다. 주변 강대국 가운데 한반도 통일에 유일하게 긍정적인 국가 역시 러시아다. 남북한의 평화공존에 기초한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안정적 개발뿐 아니라 철도·전력·가스망 연결과 같은 남·북·러 삼각 협력 사업의 최대 수혜자가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도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는 외교적 딜레마를 해소하는 출구가 될 수 있다. 한국과 러시아는 각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전략적 친구’가 되어야 하는 운명공동체인 셈이다.


러시아에서 국민브랜드가 된 한국기업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러시아는 미래 한국의 성장 동력에 대한 잠재력을 지닌 국가이다. 수교 이후 양국의 교역량은 꾸준히 상승해왔고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 한국 상품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관심 역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러한 한국기업의 위상은 손쉽게 얻어진 결과가 아니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1998년 러시아 정부의 모라토리움으로 양국의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았던 1998년 8월, 러시아에 자사 확장전략을 수립했던 LG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라토리움의 폭탄을 맞아야 했다. 하지만 사업 규모 축소나 본국 철수 없이 LG전자는 해오던 그대로 러시아 바이어들과의 거래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삼성전자 역시 90년대 초 러시아 경제 침체기에 볼쇼이 발레단과 톨스토이 문학상을 지원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정도(定都) 30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도시 보수공사에도 가장 큰 후원을 했다. 2010년에는 현대차가 페테르부르크 근교에 외국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자동차 생산라인 전 공정을 갖춘 공장을 건설해, 현재 러시아 내 자동차 판매 1-2위를 다투고 있다.


한국기업이 보여준 대의적 선택은 러시아인들의 가슴 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오래지 않아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러시아인들에게 확산시킬 수 있었다. 물론 한국 제품의 우수성이 기반에 깔린 것이긴 해도 이러한 ‘정중동(靜中動) 속의 신뢰 쌓기’는 정적인 성향의 러시아 소비자들에 어필하는 마케팅 전략이자, ‘국민브랜드’가 되는 원천이 되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현대모비스, KT 등이 AI, 자율주행차, 원격의료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활용되는 분야로 그 협력의 폭을 넓히고 있다. 기초과학이 탄탄한 러시아의 잠재력에 한국기업들이 주목하며,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박영은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부교수


한국외대 대학원 노어과에서 러시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노어노문학회 편집이사로 활동 중이며,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에서 러시아 및 유라시아 지역의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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