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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베트남의 1986년에 비춰본 북한의 2021년
[글로컬 오디세이] 베트남의 1986년에 비춰본 북한의 2021년
  • 이한우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 승인 2021.01.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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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서강대 동아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한국어로 세방화(世方化)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로 ‘세계적 경제 시스템의 통합과 지역별 정치문화의 분화가 동시에 벌어지는 경향성’을 가리킨다. 영국의 사회학자 롤랜드 로버트슨이 만든 말이다. 금융과 무역으로 촘촘히 연결될수록 문화적, 국가적 반목은 심화되는 오늘날의 역설적 현실이 이 표현에 담겨 있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는 25일 13차 베트남 공산당 전당대회가 개막할 예정이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오는 25일 13차 베트남 공산당 전당대회가 개막할 예정이다.
사진=로이터/연합

 


2021년 벽두에 열린 북한의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 경제 발전전략의 실패를 솔직히 인정했다. 북한에선 기본적으로 드문 일이지만 의미가 있다. 새로운 변화를 기대해볼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실토는 베트남이 본격적으로 개혁에 착수하는 계기가 된 1986년 12월 제6차 공산당대회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베트남 지도자들은 이 당대회에서 과거 자신들의 성급한 사회주의화 정책의 과오를 통렬히 비판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난 후, 베트남 모델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게 됐으나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루어 온 국가이기에, 북한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로 여전히 유효하다.


생산력을 해방하라


베트남의 제6차 당대회에서 발표된 「정치보고」는 부문별 성과와 과오를 평가한 후 다음과 같이 총평한다. “우리는 당의 이념적, 조직적 행위가 혁명의 요구에 부합할 수 없었던 것을 솔직히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사회주의의 여러 목표들을 조급히 성취하려는 욕구로 인해 주관적이고 단순했다” 따라서, “인민의 주인으로서의 역할과 열망을 완전히 실현할 수 있도록 경제, 사회 정책을 쇄신(도이머이)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라고 했다. 


베트남은 이렇게 ‘도이머이’를 선포하고 경제체제의 근본 틀을 바꾸는 정책들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 농가경영제, 기업관리책임제, 새로운 외국인투자법 등이다. 농가가 장기간 분배받은 토지를 자기 뜻대로 경영할 수 있도록 했고, 기업에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했으며,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기업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다. 개혁은 일반적으로 경제 주체들에게 자율권을 주어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과거 중국에서는 이를 “생산력의 해방”이라고 했다. 이후 베트남은 개혁정책을 확대해 갔다. 1989년에는 일부 품목만을 제외하고 대부분 상품 가격을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했다.


‘자력갱생’은 ‘자력개혁’으로


당시 베트남은 1978년 말 캄보디아를 침공한 대가로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블록 국가들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었다. 미국은 1994년에 가서야 경제제재를 풀었고, 1995년에 베트남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걸림돌이었던 캄보디아 주둔군을 1989년에 철수했지만, 수교까지는 6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베트남 ‘도이머이’의 열쇠를 미국이 쥐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베트남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국제경제에 편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 이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베트남은 경제제재 하에서도 이미 국내 체제 개혁을 진전시키고 있었다. 이 기반에 경제제재 해제, 관계 정상화, 세계무역기구 가입이 연이어 얹히면서 베트남은 성장의 날개를 달았다.


물론 북한은 1994년까지 베트남에 가해졌던 경제제재보다 더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의 관건인 핵 문제는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문제보다 더 풀기 어렵다. 북한의 상황이 더 힘든 것은 사실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향후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기본 종자, 주제는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이라고 말하며 어려운 현실이 지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제8차 당대회에서 나온 김정은 위원장의 ‘반성’이 체제 자체에 대한 ‘자아비판’까지는 아닌 듯하다. 베트남의 개혁이 제재 아래서도 경제체제의 근본 틀을 바꾸는 개혁이었듯이, 북한의 ‘자력갱생’ 역시 ‘자력개혁’이 되어야 한다. 

 

 

 

 

이한우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베트남 개혁정책을 연구하여 서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정치경제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최근 발간한 논문으로 「2013년 베트남 헌법 개정의 정치」(2019), 「한국-베트남 관계 정상화로의 길: 요인과 정책결정과정」(2020), 저서로 『베트남 경제개혁의 정치경제』(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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