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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 교수신문
  • 승인 2021.01.2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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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아 외 9명 지음 | 창비 | 280쪽

재난의 한국적 돌파는 어떻게 가능한가

팬데믹의 한해를 돌아보며 한국사회에 묻는다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위기가 전세계를 덮친 지난 1년 동안 수많은 코로나19 관련 논의와 전망이 쏟아졌다. 세계가 끊임없이 바이러스와 분투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K-방역’을 둘러싼 상반되는 평가와 백신 접종에 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고, 장기적인 전망은 물론 단기적 대책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오로지 당면한 재난의 종식에만 초점을 맞춘 채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내다보는 목소리가 팽배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 존재했던 각종 문제와 취약점이 위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작금의 현실은 감염병 유행이 끝난다고 해서 저절로 종식될 리 없다.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팬데믹 1년을 돌아보며 한국사회가 떠안은 다양한 고민과 과제를 풀어낸 책이다. 우리가 당면한 이 미증유의 사태 속에서 드러난 공공영역의 부실한 체질과 새로운 가능성을 동시에 살피며 개선을 모색할 때 우리 식의 코로나19 해법도 나올 수 있다는 취지로 사회·정치·경제·생태·의료·교육·돌봄·노동·농촌·인권 등 여러 분야 연구자들의 글을 모았다. 다양한 팬데믹의 현장에서 위기가 드러낸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코로나19 이후 발본적인 전환으로 나아가는 구상까지 포괄한 이 책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국이라는 장소의 감각에 충실하게 기반해 이를 대전환으로 돌파할 계기, 곧 ‘한국의 길’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코로나19 위기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황정아의 「팬데믹 시대의 민주주의와 ‘한국모델’」은 민주주의라는 관점을 통해 한국의 팬데믹 대응을 재점검하고 민주적 시민성을 바탕으로 한 ‘한국모델’을 제시한다. 한국의 방역이 최고라는 ‘국뽕’적 해석이나 첨단기술로 개인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기술 디스토피아적 해석, 권위에 순응하는 유교문화적 산물이라는 시각 등 K-방역을 둘러싼 국내외 해석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나가는 이 글은 한국의 경험을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이분법으로 재단하지 않고 그 성과를 온당하게 평가하고자 한다. 특히 팬데믹의 위기가 공동체와 집단 주체성을 새롭게 사유하여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심화할 것을 요청하는데, 서구의 팬데믹 담론들이 이런 요청에 응답하지 못한 채 국가 공동체를 개인과 대립하는 통제기구로 보거나 포함과 배제의 프레임에 가두고 있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을 촉구하는 동시에 그런 개입 자체에 정치적으로 개입하는 시민들의 주체적 역량과 민주화, 즉 민주주의 자체가 팬데믹 대응의 핵심임을 힘주어 말한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정치적 ‘우애’를 새로운 공동체의 이념으로 재발굴하는데, 정치적 우애를 통해 공동체를 새롭게 이해하고 집단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할 것을 팬데믹 시대 민주주의의 과제로 제시한다. 우애가 서로를 향한 배려와 책임, 그리고 돌봄이라는 형식으로 실현된 것이 K-방역의 성과임을 밝히며 민주주의적 우애를 실천한 결과물이 꾸준히 쌓이면서 실현될 한국모델을 제안하는 것이다.

 

일상이 이미 재난이었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민낯

 

팬데믹 이전부터 균열의 조짐이 보이던 우리 사회 곳곳의 취약성은 재난을 계기로 전면에 드러났고, 코로나19 ‘이후’를 고민하기 이전에 ‘이미 와 있던’ 재난적 상황을 성찰하게 만들었다. 팬데믹을 극복하는 것이 비정상이었던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정상성의 회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팬데믹 현장의 풍경을 면밀히 살피며 이미 산적해 있던 문제들에 주목해야 한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도대체 학교를 왜 가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고 진단하는 이하나의 「코로나19 이후의 학교생태계는 어디로 가야 하나」는 학생, 학부모, 교사, 급식노동자, 외부강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라는 관점에서 팬데믹이 야기한 변화를 전한다. 돌봄서비스가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일자리 터전이며 그 자체로 공동체인 학교를 마냥 폐쇄하는 것이 답일 수 없음을 설득하는 이 글은 학교교육과 마을교육공동체가 점차 유명무실해져온 맥락을 추적하며 교육 생태계가 앞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은정의 「저밀도와 소멸위험, 농촌에 코로나19 ‘이후’란 없다」에서는 팬데믹과 마주한 농촌의 독특한 아이러니가 가시화된다. 이 글은 농촌이 팬데믹의 대응책으로 권장된 ‘거리두기’를 일찌감치 실천한 저밀도 비대면 사회이지만 건강한 생활과는 거리가 멀고, 팬데믹 상황에서 늘 후순위로 밀리는 처지임을 실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한국 농업에서 학교급식과 친환경농업이 갖는 중요성, 비대면 경제가 농촌사회에 미칠 영향, 농촌 노동력을 크게 부담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문제 등을 분석하며 현장의 사정을 고려한 대안을 논한다. 김관욱의 「바이러스는 넘고 인권은 못 넘는 경계, 콜센터」는 코로나19 집단확진의 온상으로 주목받은 콜센터의 노동현실을 생생히 전한다. 의료인류학적 접근으로 콜센터 상담사들의 목소리를 풍부하게 담아낸 이 글은 극심한 콜의 압박과 감정노동, 무엇보다 모멸적 직장문화가 취약한 노동환경을 만들었음을 증언한다.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온 콜센터 상담사들의 열악한 현실은 코로나19 사태로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이 관심이 감염병 확산에 대한 공포에 머무르지 않고 상담사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위기가 보여준 전환의 기회

‘코로나19 이후’를 말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백영경의 「탈성장 전환의 요구와 돌봄이라는 화두」는 팬데믹으로 그 어느 때보다 돌봄의 필요성이 강조된 상황에서 돌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그 책임을 민주주의적으로 분배하는 ‘돌봄의 민주화’를 준비하자고 제안한다. 이때 ‘돌봄의 민주화’는 성장주의에서 탈피하는 새로운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데, 뒤집어 말하면 돌봄이야말로 현재의 자본주의체제와 성장주의의 한계를 돌파해낼 유력한 가치이며 팬데믹 이후를 대전환으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지점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돌봄의 민주화가 대전환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가사노동이나 사람 돌봄노동뿐 아니라 생산설비를 보수하고 정비하는 노동, 자연생태계를 보듬는 노동까지도 포괄할 수 있도록 돌봄노동 개념을 확장하고 다양한 돌봄노동 간의 연대를 이룩해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코로나19 위기와 기후위기를 다각도로 비교분석한 김현우의 「코로나19 위기, 재난 자본주의로의 퇴행인가, 생태사회 전환의 기회인가?」 역시 팬데믹이 반자본주의적 대안들을 본격적으로 논할 기회임에 주목한다. 무엇보다 팬데믹 위기와 생태위기가 긴밀히 관련되어 있으니 두 위기에 대한 대응 역시 상호 연결되어야 함을 역설하는데 여기서도 탈성장의 지향이 주요하게 제시된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과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린뉴딜’을 소개하면서 그럴싸한 ‘새로운’(new) 사업도 없고 과감한 사회 ‘계약’(deal)도 없는 한국판 그린뉴딜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경제와 사회의 재조직화를 실현하는 거대하고 정의로운 전환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최은경의 「팬데믹 시기는 새로운 의료를 예비하는가」는 의료가 겪어온 팬데믹의 시간을 꼼꼼하게 돌아보며 건강하고 안전한 의료를 위해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들을 짚는다. 의료자원의 분배나 개인의 자유 제한, 치료 의무와 의료인 돌봄 등 보건의료 분야에서 제기되는 중대하고도 민감한 사안들을 결정하는 데 무엇보다 민주주의적 숙의가 요청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팬데믹 시기 격변하는 노동세계를 탐사하며 ‘일의 미래’를 전망한 전병유의 「코로나19 이후의 노동세계」는 특수고용노동자와 비정규직 등 취약했던 노동이 팬데믹에도 가장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개선 방도와 향후 전망을 고민한다. 특히 팬데믹이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들에게 장기적으로 남길 ‘상처 효과’를 객관적 지표로 제시하고, 향후 지속될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고 사회구성원들의 협력 또한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계는 재난의 경험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가

 

서구 팬데믹 담론의 문제점을 독일 사례를 통해 면밀하게 살핀 이은정의 「코로나19와 아시아의 타자화」는 아시아를 타자화하는 독일 언론의 이중적 잣대가 독일사회에 잠재된 오랜 인종차별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을 여지없이 드러냈음을 비판한다. 독일 주요 언론의 기사들을 풍부하게 인용해 재난 시기 자국 중심 서사로 이어지는 타자화의 위험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이 글은 한국의 코로나19 담론 또한 공론장에서 소외되는 집단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단히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팬데믹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전세계적 상황을 폭넓게 조망한 피터 베이커의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각국의 대응과 전망을 소개하고, 낙관과 비관의 시선이 교차하는 여러 팬데믹 담론들을 균형감 있게 살핀다. 저널리즘 특유의 현장감과 감수성을 두루 갖춘 이 글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벌어지고 있는 팬데믹과의 싸움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일상을 더 안전하게끔 변화시키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명징하게 밝힌다.

현재 팬데믹을 마주하며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진통은 오래된 문제를 치료하는 ‘격리병동’의 과정일지 모른다. 코로나19는 위기 이전의 문제적 삶으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 전방위적인 전환이 불가피하단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주었다. 이 위기가 호출한 다양한 전환의 요구를 사유하며 새로운 정상성을 만들어나가야 할 시점이다. 지금 이 고통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나은 사회로 변모할 새로운 경로의 출발선이 될 수 있을지는 우리의 진지한 고민과 행동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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