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12:30 (목)
총과 도넛
총과 도넛
  • 교수신문
  • 승인 2021.01.22 15: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성규 지음 | 동아시아 | 284쪽

총을 시민에게 들이대는 경찰?

도넛을 무료로 제공받는 경찰?

경찰영사가 직접 들여다본 두 얼굴의 미국경찰

 

미국경찰 하면 왠지 무섭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주저 없이 총을 빼들고, 제압할 때도 말 그대로 무자비하다. 2020년 5월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조지 플로이드가 체포되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생한다며 지역사회에서 도넛을 무료로 제공받아 화제가 된 경찰이 바로 미국경찰이었다. 『총과 도넛』은 미국경찰의 진짜 얼굴에 대해 제도와 현장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저자는 2017년 시카고 총영사관의 경찰영사로 임명되어 3년간 미국경찰을 경험했다. 50여 명밖에 없는 경찰영사에 임명될 정도로 엘리트 중에 엘리트인 그는 치밀한 자료조사와 생생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치안현장에서의 미국경찰을 입체적으로 담았다. 국가경찰 없이 자치경찰만으로 어떻게 치안활동을 성공적으로 해내는지, 강한 공권력이 가능한 사회적 구조는 무엇이고 이를 견제하는 통제장치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총기사건에서 드러나는 현실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다. 또한 미국경찰을 직접 인터뷰한 ‘현장보고서’를 통해 일반인은 알 수 없는 경찰의 생생한 근무환경을 실감나게 그린다. 자치경찰제 시행을 앞둔 한국경찰에게 완전한 자치경찰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경찰의 모습은 성숙한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법집행을 위한 소중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완전한 자치경찰제로 치안자치를 이룬 미국경찰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치경찰이다

 

미국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주마다 다르다는 애매한 답을 듣기 마련이다. 미국경찰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경찰마다 다르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50개 주가 각자의 헌법과 군대를 보유한 연방국가 미국은 당연히 경찰도 주마다 따로 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주마다 주경찰이 있듯이 주의 하위단위인 카운티에는 보안관이 있고, 수많은 도시에는 시경찰이 있다. 그렇다고 주경찰, 보안관, 시경찰이 하나의 조직을 이루지 않는다. 한국에는 경찰이 국가경찰 하나만 있다면, 미국에는 무려 1만 8,000여 개의 자치경찰이 있다.

시카고나 뉴욕 슬럼의 시경찰은 영화에서처럼 방탄차량에 소총으로 무장하고 순찰을 돈다. 서부영화에서 카우보이모자를 쓴 채 리볼버를 쏘며 악당과 싸우는 보안관은 오늘날까지 남아 카운티의 치안을 담당하거나 교도소, 법원을 관리한다. 추억의 외화 「기동순찰대」에 나오는 주경찰은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그렇다면 미국경찰은 주경찰, 보안관, 시경찰 세 가지로 나뉠까? 주마다 다르다는 얘기보다 더한 것은 같은 주라도 소속된 자치단체마다 경찰이 다르다는 것이다. 국가경찰이 없다 보니 1만 8,000여 개의 자치경찰이 모두 제각각이다. 명칭만 다른 게 아니다. 10인 이하 소규모 경찰서와 1만 명이 훌쩍 넘는 대규모 경찰서가 동등한 권한을 갖다 보니 경찰마크와 제복은 물론 근무방식도 규정도 전부 다르다. 그런데 이렇게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제대로 된 치안이 가능할까?

미국은 땅도 큰 데다 마약범죄, 총기난사사건 등 중범죄도 많이 발생한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자치경찰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치안환경이다. 그래서 미국의 수많은 자치경찰은 효율적인 치안활동을 위해 하나로 뭉친다. 중범죄를 담당하는 SWAT, 신속한 출동을 위한 911지령실은 10인 이하 소규모 경찰서에서 운영하기 어렵다. 그래서 여러 경찰서가 하나의 컨소시엄을 꾸린다. 각각의 경찰서에서 경찰관 두세 명을 차출해 SWAT 연합팀을 이루고, 수많은 소도시가 연합해 광역 911지령실을 둔다. 주나 카운티의 경계를 넘나드는 마약범죄나 자연재해, 테러 등 국가적인 재난에 대비한 태스크포스도 상시적으로 운영해 경찰서 간 효과적인 업무협조를 이룬다.

한국처럼 하나의 국가경찰을 두어 조직적으로 움직이면 보다 효율적인 치안이 가능할 텐데, 미국은 왜 수많은 자치경찰을 하나로 조직하려 하지 않을까? 물론 FBI나 마약수사국처럼 연방정부 소속의 경찰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들이 개입한다면 자치경찰의 존재 이유는 없어진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은 치안자치이고, 치안자치의 최전선에는 자치경찰이 있다. 자신이 사는 곳을 자신의 힘으로 지키는 것. 1만 8천여 개의 경찰들은 근무방식도 규정도 전부 제각각이지만, 치안자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는 이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힘이다.

 

중무장한 경찰, 검사가 눈치 보는 경찰

강한 공권력의 대명사 미국경찰

이들의 힘은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

 

“I can’t breathe.” 2020년 5월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경찰관에게 제압당하던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외친 말이다. 경찰의 과잉진압은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이었다. 미국 전역에서는 경찰의 폭력적인 법집행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런데 시위대 앞에 나타난 경찰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방탄복에 소총으로 무장한 것도 모자라 장갑차까지 끌고 나온 것이다. 해당 경찰관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시위는 수습되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해마다 터지는 경찰의 과잉진압 사건에서 해당 경찰관이 처벌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미국경찰의 강한 공권력 이면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취객 하나에 쩔쩔 매는 한국경찰과 달리 미국경찰은 대단히 강하다. 단순히 중무장을 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검찰과 경찰 사이에 경찰노조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로 역할이 확실하게 나뉘어 있어 누가 누구를 지휘감독하지 않는 수평적인 관계이다. 그런데 검사장이 투표로 뽑히다 보니 검찰은 수많은 경찰관이 가입해 있는 경찰노조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표를 의식한 검사장은 문제가 있는 경찰관의 기소를 주저하게 된다. 이런 권력관계의 문제 외에도 상대적 면책특권이나 불심검문처럼 치안현장에서 경찰 쪽에 힘을 실어주는 법적인 장치들, 소송을 둘러싼 자치단체와 소속 경찰서의 관계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미국경찰은 강한 공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약한 공권력이 부각되는 한국경찰과 달리 미국경찰이 직면한 문제는 강한 공권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이다. 미국은 법, 정부, 시민에 의한 통제장치들을 마련해두고 이를 끊임없이 개선하며 경찰을 견제한다. 미란다원칙은 가장 대표적인 법적 통제장치로, 현장에서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을 제어한다. 주정부는 경찰학교를 운영하며 일선 경찰서의 치안활동에 간접적으로 개입한다. 시민은 소송을 통해 공권력 남용에 대항하고,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현장상황을 녹화하면서 경찰을 직접적으로 견제한다. 경찰도 바디카메라를 도입해 공권력이 선을 넘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수많은 통제장치는 치안이 단순히 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치경찰제 시행을 앞둔 한국경찰에게

성숙한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법집행을 묻다

 

2021년은 한국경찰, 나아가 한국사회에 중요한 해이다. 경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자치경찰제를 시행하게 된 것이다. 자치경찰제는 경찰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도전이다. 오랫동안 강한 중앙집권을 이룬 한국의 특성을 고려할 때 자치경찰제는 시기상조라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지역공동체 치안에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치경찰제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법집행을 위한 출발점이다.

미국경찰을 주로 스크린이나 언론을 통해 접하다 보니 이들의 이미지가 영화에서처럼 화려하거나 뉴스기사에서처럼 폭력적일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국경찰의 75%는 10인 이하 소규모 경찰서이고, 이들이 치안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지역공동체와의 연대감이다. 지역의 경찰서에서는 ‘경찰과 함께 커피를’이라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경찰서장이 커뮤니티센터를 방문해 주민들에게 치안활동을 설명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주민들은 경찰서장에게 직접 궁금한 것을 물어보거나 필요한 것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치안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고, 경찰을 국가의 경찰이 아니라 ‘자신의 경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 미니애폴리스는 재발방지를 위해 경찰서를 해체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그런데 미니애폴리스 사람들은 이를 환영할까? 자치경찰제인 미국에서는 경찰의 부정행위뿐만 아니라 지역의 재정상황 등 여러 문제로 경찰서를 해체하고 다른 경찰에 치안을 맡기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면 주민들은 해체된 경찰서의 경찰관을 끌어안으며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경찰서 해체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여 이를 저지하기도 한다.

미국경찰은 사회적으로 우대받고 있다. 도넛뿐만이 아니다. 빌딩 사무실을 휴게실로 제공받고, 경찰재단에 모인 기부금으로 최신 장비를 지원받으며, 총격으로 사망한 경찰의 운구를 위해 고속도로까지 통제된다. 혹자는 ‘총’으로 대표되는 미국경찰의 강한 공권력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한국경찰로서 저자가 부러워한 것은 ‘도넛’으로 대표되는 지역공동체와의 강한 연대감이다. 지금 한국경찰에게는 총도 도넛도 없지만, 자치경찰제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 그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정도는 대접받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