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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 후궁
조선왕실의 후궁
  • 교수신문
  • 승인 2021.01.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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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지음 | 지식산업사 | 536쪽

 

후궁을 통해 조선사회의 신분질서를 들여다보다

공사를 넘나들며 파헤친 조선왕실문화의 뒤안

주변으로 치부되어 왔던 후궁 제도를 체계화한 본격 왕실여성사

 

후궁에 초점을 맞추어 조선 후궁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분석 정리한 솔벗재단(이온규 이사장)의 스물네 번째 총서가 출간된다. 저자 이미선 교수는 조선조 후궁 175명의 역할과 위상을 내명부內命婦제도와 조선왕실의 운영 원리 변천에 맞추어 명쾌하게 규명하고 조선사회의 성격을 조감한다. 후궁에 관한 이 정밀한 저작은 제도, 여성, 왕실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조선사 연구의 진작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우선 후궁의 개념을 간택의 유무에 따라 간택 후궁과 비간택 후궁으로 나눈다. 학계에 알려진 간택 후궁-승은 후궁이라는 분류는 승은 이외의 다양한 입궁 경로와 출신 성분을 가진 후궁의 존재 양상을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왕실 혼례로 연구를(「조선사회 이렇게 본다」) 시작하여 정진해 온 저자이기에 가능한 명확한 개념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 저자는 조선시대를 세 시기로 구분하여 내명부제도와 시대 분위기에 따라 후궁의 위상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전기(태조~성종조) 비간택 후궁에 노비, 과부, 첩녀 등 다양한 출신의 여성들이 포함되었으나 후기(영조~고종조) 이후 정식 절차를 거친 궁인 출신들이 많아졌음을 지적한다. 전기에는 유교의 명분론적 법체제가 미비했으나 중후기로 갈수록 성리학적 신분질서가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계비의 지위에서 후사後嗣 확대로

 

성리학적 종법 질서와 명분론이 공고화되고 『경국대전』에 내관제도가 확립된(세종 10) 이후 내명부 법체제가 뿌리내리면서 중기부터 간택 후궁의 위상이 변화된다. 조선 초기에는 문종의 비에서 보이듯 후궁의 지위에서 왕비로 승격되었으나 중종 이후 숙종대부터 간택 후궁에서가 아니라 외부 간택에 의해서 계비(繼妃)가 선정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왕비 예비자로서 후궁의 역할이 축소되고 후사 생산자로서 의무가 강해지게 되었다.

저자는 연산군~숙종조대 간택 후궁의 가문에서 전기와 다르게 당상관과 공신세력의 비중이 낮아지는 현상을 각각 도표화함으로써 간택 후궁의 지위 변화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간택 후궁 가문에서 왕비를 다수 배출한 가문의 성관인 파평 윤씨, 여흥 민씨 등이 보이는 것처럼(표 Ⅳ-4) 후궁 가문의 가격(家格)은 높은 편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중종 이후에도 숙의(淑儀)는 정치적 역학관계에 의해 선발되었다. 조선사회에서 혼인이 강력한 가계집단과 인척관계를 확립하는 중요 수단이었던바, 후궁의 선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제도사적 측면에서 본 후기 후궁

 

중종~숙종대 후궁에 대한 승작 범위가 이전에 견주어 확대되고 왕실여성의 후원을 얻거나 국왕 측근 세력에 연계된 출신들이 늘어났다. 따라서 장녹수와 김개시 등이 정치에 깊이 관여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에 따라 조선 후기에는 후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대두되면서 사대부가에서 후궁 간택을 꺼리게 되었다. 게다가 왕비와 후궁들의 출산율이 현격히 떨어지면서 왕실에서는 광계사(匡繼嗣)라는 당면의 목표를 위하여 후궁의 위상을 파격적으로 높여 주었다.

저자는 왕별 후궁의 지위 변화를 도표화하여 그 사실을 한눈에 보여 준다. 즉 간택 후궁의 초직을 정1품 빈으로 하고, 비간택 후궁의 경우에도 왕자녀를 출생하였을 경우 빈으로 승진이 가능해졌다. 무수리 출신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가 셋째까지 낳으면서 마침내 빈으로 책봉된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왕의 후궁 지위가 상향되면서 선왕의 후궁을 예우하는 방안이 불가능해지자 사친(私親)을 추숭하는 궁원제(宮園制)가 시행되었다. 저자는 내명부가 후궁의 사적 지위를 생전에 공적 지위로 격상시킨 것이라면, 사친 추숭은 후궁 사후에 왕의 사적 영역의 공적 제도화를 이룬 것이라고 규정한다.

2000년대에 들어와 왕실여성에 관한 학술·교양서가 다수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 땀 한 땀 옷을 짓듯 자료들을 하나하나 꿰어 후궁의 각각과 그 전체상까지 조명한 것은 이 책이 유일하다. 특히 이 책은 “왕실소조정(王室小朝廷)”의 일원이자 왕실 유지 존속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후궁의 본모습을 제시한다. 후궁의 실체를 밝히는 이 작업은 곧 진정한 조선조 여성사의 개시와 반쪽이었던 왕실사의 온전한 이해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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