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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 물리학과를 위한 몽상
학이사 : 물리학과를 위한 몽상
  • 정완상 경상대
  • 승인 2004.06.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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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물리 선생님을 쟤물포(쟤 때문에 물리 포기하고 싶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세기가 바뀐 지금도 고등학생들은 물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먼저 고개를 흔들고 만다. 이렇게 물리는 요즘의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골치 아픈 과목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런 현실에 물리학과 교수들은 어깨에 힘이 빠져 있고 학생들이 몰려드는 생명과학 분야의 교수들을 마냥 부러워 할 수밖에 없다.

물리학! 그것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학생들이 어려워할까. 이제 교수 생활 13년차인 나는 요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그러기 위해 나는 7차 교육과정으로 바뀐 고등학교 물리 교과서를 들여다봤다. 집필진은 알만한 대학의 물리학과 교수님들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최근의 물리 교과서와 내가 공부했던 1970년대의 물리 교과서의 차이를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다. 화려한 색깔의 사진들과 관련 인터넷 사이트와 재미없는 캐릭터들이 연출하는 그림부분들로 치장을 바꾸었을 뿐 지루한 방식으로 물리의 공식들을 나열하는 방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 없었다. 아하! 이거였구나. 이런 교과서라면 나도 물리를 싫어하지…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물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들에게 과학 중 가장 재밌는 과목이 물으면 많은 학생들이 물리라고 대답하고 가장 위대한 과학자 이름을 적어 내라고 하면 아인슈타인을 떠올리곤 한다. 이렇게 물리를 좋아하던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물리를 싫어하게 되고 이로 인해 우리 대학처럼 물리, 화학, 지구환경이 하나의 학부로 돼있는 곳에서 2학년 때 전공을 결정할 때는 물리전공을 택하는 것을 꺼린다. 설령 물리 전공을 택한다 해도 물리가 좋아 택한 학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1학년 때 같이 지냈던 선배들과 헤어지기 싫어 물리전공을 택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물리학과 교수로 살아가는 나 자신을 보면서 왠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로 갓 부임해 연구에만 미쳐 지내던 시절 연구가 내가 평생을 바칠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물리학과를 졸업한 제자들이 취업이 잘 안되는 현실을 보면서 나의 생각은 조금 달라져 가기 시작했다. 교수가 해야 할 일이 연구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 온 것이다. 그리고 물리가 싫지만 물리학과가 좋아 물리학과를 다니는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최근 많은 물리학과의 교수들이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나는 물리라는 것이 어렵지 않고 재밌는 일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일들을 기획하고 싶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생활 주변에서 벌어지는 물리와 관계있는 일들에 대해 토론하고 영화나 스포츠 속에서 사용되는 물리학에 대해 알아보고 물리를 이용한 재미있는 만화를 기획하는 일들이 그런 일들이다. 물론 아직 내가 이런 분야에서 걸음마를 걷는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입자물리 전공, 고체 물리전공과 같은 학문적인 전공 외에 수학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물리를 이용해 대학원 과정을 밟을 수 있는 색다른 전공을 만들고 싶다. 굳이 얘기하자면 과학창작 전공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만일 이런 색다른 전공이 기존의 물리학 연구과정과 공존한다면 더 많은 학생들을 대학원과 취업에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물리를 이용한 창작활동의 꿈을 가지는 학생들이 많아진다면 폭력이나 멜로영화가 판치는 한국 영화계에서 헐리우드의 SF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SF 영화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작가들도 나오고 각 언론에서 과학 칼럼을 정확하게 집필할 수 있는 과학 기자들도 또한 방송에서 과학관련 프로그램을 과학적으로 옳게 연출할 수 있는 과학 구성작가들도 많이 양산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물리가 인기 없는 나라에서 물리 인구를 증가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오늘도 술 한잔 기울이며 제자들과 물리에 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물리의 매력에 제자들이 점점 더 빠져드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다.

정완상 / 경상대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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