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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에 희생된 '쉬즈 스토리'의 복원
국가주의에 희생된 '쉬즈 스토리'의 복원
  • 홍윤신 일본통신원
  • 승인 2004.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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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술동향 : 한일 여성학자 공동교과서편찬 나서

최근 일본 학술계에서도 근현대 격동기를 겪었던 여성의 삶을 주목하는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삶을 한국과 연계 속에서 조명하는 한편, 일본인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들이 다시 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한국의 정신대 문제 연구소와 함께 위안부문제를 가시화하고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 천황 히로히토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데 일조했던 일본의 여성학자들이 이번에는 공동교과서편찬을 내걸고 다시 뭉친 것. 현재 ‘여성, 인권, 전쟁학회’와 한국의 정대협 관련 여성학자들이 주축이 돼 한일역사교과서 편찬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본 연구에서 여성학자들은 일본의 제국주의의 팽창과 조선 강제점령부터 조선의 분단과 한국전쟁, 민주화투쟁에 이어 위안부 문제가 가시화된 1990년대까지의 반세기를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공동 조명한다.

일본정부는 국가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간차원의 위로금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Asia Woman`s Fond)’을 지급하고 특히 젊고 유능한 페미니스트 학자들을 초빙해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의 교묘한 방법으로 정대협과 연대해 왔던 일본여성학계 내의 분단을 초래해 왔다.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 가운데 진행되는 공동교과서 편찬작업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서 자극받은 것이기도 하다.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한일여성사를 알기 쉽게 풀어쓰자는 목적에서 진행 중인 이번 편찬작업은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교육계에도 적지 않은 파급을 미칠 전망이다.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교과서 편찬 실무자 나카하라 미치코 씨는 “한일역사는 his story였다는 점이 문제다. 이제부터 천황제와 일본군국주의에 대해 she`s story로 비판하며 여성연대를 통해 내셔널리즘을 극복한 한일사를 다시 쓸 필요성이 있다"라며 여성들이 나서 한일 공동교과서를 편찬하는 것의 의의를 설명한다. 공동교과서 내용의 틀거리와 편찬계획은 구체적으로 진행 중이며, 공동편찬작업의 일환인 공동심포지엄은 오는 19일 오오사카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여성에 대한 폭력 ‘DV 성매매’를 둘러싼 일한 여성인권심포지엄’이 한국여성의 전화 연합과 오차노미즈 여자대학 공동주최로 열린다. 2003년 한국여성의 전화 연합이 기획한 ‘한국여성인권운동사2, 성폭력을 다시 쓴다-객관성, 여성운동, 인권’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한국의 성매매반대운동의 역사를 조망하고, 인권개념을 알려내기 위한 한국의 여성단체들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또한 가정폭력은 물론 매춘여성과 이주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문제들도 함께 논의될 예정이다.

알려졌다시피 한국의 성매매는 일본의 공창제도와 식민지 정책,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인한 빈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제국주의 당시에는 빈곤한 여성들은 ‘가라유키상’의 형태로 해외를 떠돌며 매춘과 성폭력을 강요당했다. 위안부문제 공동역사교과서편찬작업이 한일양국의 국가주의에 희생된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라면, ‘여성에 대한 폭력 ‘DV 성매매’를 둘러싼 일한 여성인권심포지엄’은 국가적 가해문제와 더불어 그 안에 뿌리박혀있는 가부장제를 비롯한 사회적 편견이 성매매와 성폭력 해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돌이켜보고 있다.

심포지엄은 일한문화교류기금과 아시아태평양인권정보센터의 후원으로 오는 5일 동경에서 열려 6일 오오사카에서 막을 내린다. 일본에서는 아시아여성자료센터, 여성을 위한 평화인권기금, 여성전쟁 인권학회, Vaww Net Japan 등의 여성인권단체들이 협력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70년부터 1998년까지의 매춘여성운동사를 체계적으로 조망했던 민경자와 한국여성의 전화 연합의 박인혜, 정춘숙, 김성미경, 정희진 등이 발제하고 10명이 넘는 여성운동가들도 참가할 예정이다.

해방 반세기가 넘도록 해결되지 않는 위안부 문제는 어찌보면 매춘여성에 대한 뿌리깊은 한국의 남성주의에도 연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개인의 성을 빼앗겼거나 성을 팔 수밖에 없는 빈곤에 처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삶은 순결한 딸이 되거나 아니면 창녀로 낙인찍히는 극단적 이분화에 처해있다. 한일 양국의 페미니스트 교류는 피해국가 가해 국가의 담론 이외에도 그 안에 살고있던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피해자이면서도 능동적인 주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일 페미니스트 연대는 일본인, 혹은 한국인 여성으로 제한될 수 없는 여성자체의 문제로 조명된다. 이들 여성연대는 명확히 묻는다. 순결한 여성을 강요하는 너희는 순결한가라고.
 
홍윤신 일본통신원 / 와세다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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