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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흐름 : 학술지 발간, 제대로 이뤄지나
학계흐름 : 학술지 발간, 제대로 이뤄지나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6.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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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강화...學緣 중심 운영에는 不滿

수많은 학술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학자들의 논문이 몇년 새 많이 증가한 까닭이다. 학술진흥재단은 학술지 평가를 까다롭게 진행하고 있어, 예전의 주먹구구식 학술지 운영은 많이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제도의 빈틈을 비집고 각종 편법이 난무하거나, 학술지의 성격이 점점 획일화, 질적하향화를 걷고 있다는 지적이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는 학술지와 관련 학술진흥재단이 정한 편집위원 재도의 운용과 관련해서 짚어보고자 한다.

한국에서 '학술지'의 위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때다. 학술지는 어떤 기능을 하고 있으며 또 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학계의 중간점검이 없이 이대로 흘러가면 학술지는 논문들이 일렬로 서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묻혀지는 '개성없는 전시공간'에 머물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등재학술지를 향한 치열한 노력들

국내 대부분 학술지들은 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의 학술지 평가를 받고 있다. 학진의 지원금을 받아서 학술지를 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독립재정을 통해 활동하는 곳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학술지들은 학진이 제시하는 요건들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문제는 노력에 그치지 않고, 등재후보지, 등재지가 돼 더 안정적인 지원체계 속에 편입하기 위한 쟁투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안 그래도 계량적이고 수량적인 학진의 학술지 평가 기준들이, 학회들의 무비판적 맹종 속에 그 획일적 성격이 더 강화되고 있다.

먼저 편집위원제도를 보자. 학진에서는 높은 연구실적을 갖춘 편집위원과 전국적 분포를 가진 편집위원 진용을 각 학회마다 요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학회에서는 우량 학자를 모시기 위해 발벗고 뛰게 된다. 회원이 많은 학회야 큰 상관이 없지만, 규모가 작은 지방 군소학회의 경우에는 편집위원 모시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편집위원을 구성한 다음에 발생한다. 전국적 구성이다 보니 '이름만 걸어놓고' 잘 활동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양해림 충남대 교수(철학)는 "편집회의를 소집하면 가까운 데 있는 몇 명만 참가할 뿐 과반수도 못 모인다"라고 지적한다.

다 모이지 못하는 것까지는 좋다. 연구실적이 좋은 사람들로 모으다보니 겹치기 출연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한 명의 학자가 7∼8개 학회의 편집위원으로 이름을 걸어놓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견된다. 김진 울산대 교수(철학)는 이런 겹치기의 문제점은 다른 데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서울출신 학자들을 끼워넣지 않으면 학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 사람들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고, 따르지 않으면 지방학회는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라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편집위원들이 주관하는 논문심사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름과 소속을 가린채 심사에 들어가긴 해도 규모가 작은 학회일 경우 누구 논문인지 금방 알 뿐만 아니라, 논문을 투고한 학자들은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뻔하기 때문에 전화를 걸어서 압력을 넣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는 것. 물론 과거에 주먹구구식으로 하던 관행은 많이 없어졌고, 규모가 큰 학회들은 심사의 공정성과 엄밀성이 어느 정도 이뤄지지만, 규모가 작은 학회들은 여러 가지로 힘들고 편법들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학진에서 50% 이상 탈락률이 돼야 점수를 높게 주기 때문에, 일부러 탈락률을 높이기 위해 대학원생들 논문을 일부러 접수해서 탈락시키는 웃지 못할 풍경도 생겨난다.

논문심사가 제대로 이뤄지는가에 대해서도 학자들의 회의가 크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는 "경제학의 경우 지역별로 논문의 성격이 다르다. 영국을 전공한 사람은 미국을 모르는 식이다. 그런 상황에서 수십 명의 논문을 단 몇 명이 심사한다는 게 쉽지 않다"라고 지적한다. 학계의 생리상 일정시기에 논문이 확 몰리게 돼 있는데, 학진에서는 4월말과 11월말로 학술지 발간을 못박고 있어서 학계 돌아가는 특수성과 행정성과의 괴리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학술지 운영 상황에 염증을 내는 학자들이 대표적으로 문제삼는 건 '특정집단'에 의해 학회가 움직이고, 학술지에도 특정 집단이라는 '뜰채'에 잡혀 올린 논문이 실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철학계는 대동철학회(부산대), 대한철학회(경북대), 새한철학회(영남대), 동서철학회(충남대), 한국철학회(서울대)로 움직이고 있다. 괄호 속 학교 출신들이 주체로 움직이는 것이다. 현재 소속된 대학은 달라도, 임원진들은 출신학교가 거의 같다. 따라서 편집위원들도 이 '집단'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하나의 부정적 측면은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는 구조가 기본적으로 '전임들의 잔치'로 시작해 그걸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사실 교수평가제 도입, BK21지원사업 등으로 '공부 안하는' 교수들을 일정하게 강제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지만, 학문의 세계에 막 진입한 박사 초년병들은 자기가 연구하는 주제들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1년에 1∼2편씩 논문을 써내야하는 BK21 같은 사업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크다는 게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의 설명이다. 학술지 지면이 제공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리고 학술지에 실리는 공동연구의 '허위성'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임교수가 제자나 강사들과 함께 이름을 올리는데, 실제 연구는 '제자'가 했다는 데 그 기만성이 있다.

계산된 분량, 프로젝트용 논문들

현재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들은 대개 80매에서 길어도 120매를 넘지 못한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이들에게 발표기회가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논문의 양이 제한되는 것이다. 김진 울산대 교수(철학)은 "과거의 경우 철학 쪽은 2백매 넘는 논문들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쓰려면 학회에 돈을 더 내야 하거나, 150매를 넘길 경우 논문을 거절당하는 게 상식처럼 돼 있다"라고 비판한다. 사회과학 쪽은 덜하지만, 인문학의 경우 논문의 형식적 제한은 연구주제의 규격화 및 획일화와 곧바로 직결된다는 게 관련학자들의 증언이다.

논문의 분량이 가벼워졌다는 것은 다른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 현재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들은 많은 경우 학술진흥재단 프로젝트 수행결과물일 경우다. 그런데 문제는 학진에 연구계획서를 낼 때 논문을 거진 다 써놓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학진에서 요구하는 연구계획서의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거기 맞추려면 논문의 개요가 다 갖춰져야만 가능하다는 것.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논문을 다 써놓고 그걸 요약해서 연구계획서를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 상당히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 일부 학자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연구비를 수주하고 난 후면 상당수의 학자들이 긴장이 풀리는 지라, 차일피일 미루다가 막판에 가서야 벼락치기로 논문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번역일을 주로 하는 학자들은 "지원도 못 받는 이론서 번역을 할 때는 내가 왜 이 고생이지 하다가도, 연구프로젝트를 하나 따면 쉬어가면서 쉬엄쉬엄 하게 된다"라는 것이다. 수준높은 연구를 생산하는 데 쓰여야 할 연구비가, 자칫 '휴가비용'으로 생각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런 문제들이 겹쳐 있으니 학술진흥재단이 학술지들을 계량적으로 엄격하게 평가한다 해도 학술지의 수준이 높아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요즘 학술지들은 철저히 대중성이 차단돼 있다. 학술적 이슈를 다룸으로써 해당 학문의 담론 공간에서 주인공으로 주목받고 싶어하는 '욕구'도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 오직 많은 이들의 논문을 학진에서 정해진 기준에 맞게 싣는 것을 지상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새롭게 규격화된 논문생산의 시스템 속에서, 그리고 문제의 원인을 개개인에게서 찾지 않고 큰 구조에 돌리는 분위기 속에서 '학술지'라는 배는 점점 더 아무도 읽어줄 이 없는 '독서의 남극지대' 같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일부에서는 논문의 질적 평가를 위한 제도개선의 시급성이 논의되고 있고, 또한 연구업적에 대한 사후평가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지만, 그것 또한 어떻게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것인지의 문제가 만만치 않아 학자들의 마음 속에서만 오랫동안 '계류중'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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