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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법철학
위험한 법철학
  • 교수신문
  • 승인 2021.01.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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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요시 마사미 지음 | 책∙사∙소 옮김 | 들녘 | 327쪽

 

법의 상식이라는 연못의 물, 전부 퍼내버려라!

 

법치주의라는 말이 자주 들려온다. 사람(특히 유력자)에 휘둘리지 않고 법에 따라 집행을 하겠다는 것이니 일견 시비할 수 없는 타당한 말로 들린다. 그러나 여기에는 의심스러운 구석도 있다. 무엇보다도 ‘법’이라는 것 자체가 과연 인간 삶의 제반사를 합당하게 처리해주는 만능의 룰인지, ‘법치’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일체의 주관이 배제된 공정한 객관의 토대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의심이다.

‘법 없이 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매우 보기 드문 선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를 뒤집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법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이미 법에 의해 지켜지며 살아가고 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는 것도, 집을 임차해 거주하는 것도, 장사를 하는 것도 모두 법률에 의해 가능하게 되어 있다. 반면, 법망을 피해 나쁜 짓을 기도하려는 자에게도 법률은 중요한 텍스트다. 미국 복싱 흥행의 중심인물이면서 수많은 계약위반, 착취, 살인 등으로 악명을 떨쳤던 프로모터 돈 킹(Don King)도 “나의 성공은 법률의 옹호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법률은 현대 사회에서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한 기술을 주고 있는 셈이다.

 

본래 법의 시초는 무엇이었을까? 인간과 동물의 집단생활에 공통하는 법의 발단은 세력권의 획정과 서열 짓기였다. 세력권은 약한 종이 양육강식에 의한 절멸을 피하는 데, 그리고 서열 짓기는 동료 사이의 파멸적인 투쟁을 막아 생존능력을 증대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본능적인 지혜였다.

그러나 그 후 감정과 지성을 여분으로 갖게 된 인간만이 독자적으로 법을 발전시켰다. 자연적인 질서 내에서, 권력욕이나 명예욕에 사로잡혀 반역하거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에 대한 응보형과 벌, 사람의 재산 소유를 확실히 하는 소유권이 생겨났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계약에 의해 이전까지의 자연질서를 해체하고 신질서를 만들며,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법률을 만드는, 즉 입법을 하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정부나 의회는 먼저 시장이라는, 사람들이 분업을 매개로 하여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상호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생적 질서에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약자를 돕고, 자유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짐으로써 공존공영이 유지되도록 다양한 입법을 해왔다. 부정경쟁방지법, 독점금지법,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들 등이다. 또한 인권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법이 들어가지 않는’ 영역이었던 친밀권(가족, 부부, 연인 사이 등)이나 특별한 지배-종속관계가 인정되어왔던 학교, 교도소 등에 대해서도, 약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법률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배우자로부터의 폭력 방지 및 피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DV방지법),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법과 조례, 스토커규제법 등이다.

이렇듯 입법에 의한 행정의 사회 개입에는 약자를 구하고 사회의 부정을 바로잡는다는 좋은 면이 있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법의 증식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정부가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입법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진 결과, 제정법이 증식하고 소송 대상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법화(法化)’라 하여 문제시되었다. 법화의 어두운 부분 중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법 적용의 전문성과 기술성이 높아짐에 따라, 권리 실현의 주도권이 당사자 국민이 아니라 번다한 법률이나 내규, 규칙 등을 조종하는 관료의 손에 쥐어졌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계약을 할 때 판매원이 뭐가 뭔지 모를 내용을 빠른 말투로 설명하는 걸 듣고 자기도 모르게 필요 없는 어플리케이션을 받거나 태블릿 계약까지 억지로 떠안게 되듯이, 관료에 의한 난해한 법이나 규칙에 관한 설명을 듣고는 결국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실정이다.

우리는 왜 법률에 따르고 있을까? “법률은 오류 없이 옳기 때문이다.”고 생각하여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인지 생각한 적도 없고, 그저 습관으로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 아닐까? 혹은 “체포당하는 게 싫어서”, “불만스런 법률은 있지만 지키지 않으면 이래저래 성가시니까 일단은 지킨다.”고 답하지 않을까? 아마 대개는 단순한 타성, 메리트(이점),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뒤에서 손가락질 당하지 않기 위해 등등이 사람들이 법에 따르는 동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법률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야 하는 도덕적 의무는 없다. 특정 목적으로 특정 시기에 과해지는 법률에 대해서는 그 근거를 의심하고 따져보며, 이를 수용할지 말지를 권리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이때 긴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 ‘위험한 법철학’적 사고다. 상식처럼 보이지만 법철학적 사고를 들이대면 결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정의’ ‘권리와 의무’ ‘자유’ ‘평등’ ‘공리주의’ ‘아나키즘’

극한의 질문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는 법철학의 테제들

 

‘법철학’이라는 주제어를 듣고, 왠지 부담이 간다고 생각하는 독자분이 계시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오히려 이렇게 유쾌하고 재미있는 책을 통해 생소한 법철학을 접하고 이해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저자가 대학에서 초인기 강의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학생들 사이에서 “I ♥ 住吉雅美”라는 티셔츠가 인기를 끌 정도다) 풍부한 에피소드, 그중에서도 지독한(그러나 실제로 있었던) 사례를 들어 핵심 내용에 대해 질문하고 학생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머리말에 나와 있듯이 공부하고 싶지 않고, 일하고 싶지 않고, 결혼하고 싶지 않고, 아이를 기르고 싶지 않은, 여배우를 꿈꾸었던 저자는 그 길로는 먹고살 것 같지 않아 주변의 권유에 편승하여 법학부에 입학했다. 그러다가 법철학이라는 분야를 발견하고,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 어느샌가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상식이나 습관 그리고 법률과 싸우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하여 결국은 ‘기르고 싶지 않았던’ 아이들의 선생(법학부 교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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