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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
  • 교수신문
  • 승인 2021.01.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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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호 지음 | 파람북 | 224쪽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뜨리지 않고

달은 자신을 위해 어두운 길을 밝히지 않는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다도 전문가로서 강의와 저술 활동을 이어오며 차향처럼 그윽한 인생을 살던 저자는 남편의 만성신부전증으로 인생의 반전을 맞는다. 30여 년 전에 발병한 당뇨병으로 여러 합병증을 겪었으며, 대장암으로 수술까지 했으나 이때까지 만해도 비교적 잘 관리되어왔다. 그러나 투석을 해야 삶을 겨우 버텨갈 수 있는 만성신부전증은 천형과도 같은 병이었다.

부부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지난봄, 하나의 신장(콩팥)을 두고 공여자와 수혜자가 되었다. 공여자는 이 책의 저자이고 수혜자는 남편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신장을 적출해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생체이식은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수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통령보다 만나기 힘들다는 기증자가 나서야만 가능한 일이다. 장기 기증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배우자가 기증자로 나서더라도, 이식수술을 위한 교차반응검사와 혈액형 일치에서 ‘적합’ 판정을 받는 희박한 가능성을 통과해야 하며, 다른 장기들과 호응할 수 있도록 미세한 신경과 혈관들을 연결시키는 고도의 의료 기술이 따라야 한다.

저자는 혈육이 아님에도 자식들과 배우자의 형제들을 만류하고 스스로 기증을 자처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랐다. 부부는 애초에 한 몸이며, 배우자의 고통을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눈부신 부부애보다 더 값지게 와닿는 것은 글의 전편에 녹아 흐르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희생적 사랑에 주저함이 없는 태도와 고통을 받아들이고 결연히 극복해가는 자세일 것이다.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했다. 남편은 나았다.

그런데 이젠 내가 아프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고 했다.

 

하나의 장기에는 한 사람의 생애에 아로새겨진 모든 유전자 정보가 담긴다. 과학적 논의를 떠나 장기 이식은 온전히 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지 부품 하나를 갈아 끼우는 기계적 공정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부부간이라 해도 내어주는 것도 받아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기꺼이 내어주고 겸허히 받아드는 줄탁동시의 순간에 사랑은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인생의 한쪽 문이 열릴 때, 다른 한쪽 문이 닫힌다. 누구의 인생도 행복으로만 채워지는 일은 없으며, 불행은 도처에 잠복해 우리를 기다린다. 예고 없이 닥치는 좌절의 순간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견디어낸 사람만이 기쁨을 맞이할 자격이 있다. 저자는 청천벽력처럼 다가온 난관들 앞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의료진과 주변에 감사를 전한다. 그 힘의 근원이 바로 사랑과 삶에 대한 진정성일 것이다.

책은 이식수술을 전후로 ‘기꺼이 내어주다’와 ‘겸허히 받아들다’ 2부로 나뉘어 있으며, 에필로그를 통해 현재 자신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투병 중임을 고백하고 있다. 이식 전 모든 검사에서 어떤 징후도 발견할 수 없었던 건강한 저자에게 이식수술 후 6개월 만에 일어난 급작스러운 일이다. 이식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이후의 예후 또한 잘 관리되고 있을 때, 또 다른 난관의 문이 열린 것이다. 이 대목에선 참담한 슬픔이 복받쳐 눈시울을 뜨겁게 하지만, 저자는 의외로 담담하게 말한다. “다 잘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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