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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 등반⑤] 저출산을 다시 생각한다
[한민의 문화 등반⑤] 저출산을 다시 생각한다
  • 한민
  • 승인 2021.01.19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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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밀도가 높을수록 개체 간의 경쟁이 치열
한국에서 경쟁 패배는 생존 가능성 박탈 의미
한민 문화심리학자
한민 문화심리학자

 

한국의 인구가 데드크로스를 기록했다.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아진 것이다. 수년째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저출산은 이제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40년 뒤인 2060년에는 인구가 2500만명 이하로 줄어들어 생산 인력도, 학생도, 군에 입대할 자원도 반토막 이하로 감소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누구나 위기라고 말하는 현실이고 어디를 보나 우울한 전망 뿐이지만 이 추세를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53년 6.25 직후, 한국의 인구는 2천만을 넘지 않았다. 30년 후 인구는 그 두 배인 4천만을 넘었고 다시 30년 후 2014년에는 5천만에 도달했다. 그리 크지 않은 땅에 60년 동안 3천만명이 더 살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인구밀도는 1제곱km 당 520.4명으로 세계 23위다. 아시아 평균 142.4명과 세계 평균 56.8명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미시간대 올리버 승(Oliver Sng) 박사는 애리조나주립대 연구진과 함께 국가별 및 주(州)별 인구밀도와 미래 준비 행동의 인과관계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거주지의 인구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교육비 지출, 퇴직금 저축 등 장기적 보상을 목표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눈에 띄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학에 생활사 전략이라는 용어가 있다. 생명체가 자신에게 한정된 에너지를 성장과 생식에 분배하는 전략을 말한다. 승 박사의 연구는 생활사 전략과 인구밀도 사이의 관련성을 보여준다.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 사는 생물(인간)들은 현재에 초점을 두고, 일찍 결혼해서 후손도 많이 두고, 자신이나 자녀의 미래에 딱히 투자하지 않는다. 반면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미래와 자기계발, 장기적 관계를 중요시하며 자녀도 적게 낳는다. 

인구밀도가 높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자원 확보가 중요하다는 뜻이고, 개체 간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자신과 자녀가 생존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거꾸로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양육과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극대화하려면 자녀의 수가 줄거나, 자녀의 성공이 보장되지 않을 것 같으면 자녀를 갖지 않고 그 비용을 자신의 복지에 돌린다. 

따라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혼과 저출산의 원인은 한국의 인구밀도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높은 인구밀도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야기한다. 경쟁에서 도태되면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경쟁은 휴식을 죄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삶의 의미와 활력을 찾을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한다. 주 52시간의 노동시간도 부족하다는 나라에서 연애를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경쟁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총, 균, 쇠』의 제레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경쟁은 혁신과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또한 경쟁은 성취욕과 인정욕구를 자극하고 삶의 활력이 될 적절한 스릴을 제공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경쟁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경쟁에서의 패배가 곧 생존 가능성의 박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지나친 경쟁의 근본적 원인인 인구밀도를 줄이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한국인들의 노력(?)은 출산율 감소라는 현상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데드크로스는 시작되었다. 당분간은 인구가 줄어들 일만 남았다. 이대로라면 2750년이 되면 한국인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왔지만 현재로서는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또한 한국의 인구밀도를 생각할 때 어느 정도는 적정선을 찾을 필요도 있다. 

한국은 두 세대 남짓한 시간 동안 두 배 넘게 인구를 늘렸고 이러한 상황 자체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남는 일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될 때 출산율은 다시 증가할 것이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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