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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글자와 1만 걸음이 ‘정온’을 이끌다
1만 글자와 1만 걸음이 ‘정온’을 이끌다
  • 김재호
  • 승인 2021.01.14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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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정온』 조신영 지음 | 클래식북스 | 232쪽

삶을 잠식하는 영혼 바이러스들
영혼 백신이 되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
고요하고 평온해지는 세상 원해

신문사로 정성스런 책이 왔다. 바로 『정온』이다. 제목이 독특해서 처음엔 무슨 책인가 했다. ‘정온’은 “따스한 정(精)이 오가는(ON)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도서출판 클북 대표 한주은 씨의 편지에서도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많은 책들을 보고 서평을 쓰는 게 직업이지만, 『정온』만큼 정성스레 도착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온』은 어려운 시절을 버티고 있는 우리들에게 묻는다. “너, 괜찮아?” 책과 함께 온 그림집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책의 표지에는 ‘오티움 쿰 디그니타테(Otium Cum Dignitate)’란 말이 들어가 있다. 라틴어로 “위엄으로 가득한 평온 혹은 배움으로 충일한 휴식”이란 뜻을 담고 있다. 국어사전은 ‘정온(靜穩)’을 “고요하고 평온함”으로 정의한다. 

조신영 작가는 한국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다. 작가의 말에서 조 대표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고요한 마음』 출간 이후 5년간 방황한 내용을 적었다. 『정온』은 『고요한 마음』의 개정판이다. 그는 베스트셀러라는 가면을 벗도 자신으로 온전히 돌아오기 위해 하루에 1만 자씩 쓰고, 1만 보를 걸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뭔가 뭉클하는 게 느껴졌다. 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한 고행이었던 셈이다. 조 대표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5년간의 꾸준함이 작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라면서 “5년의 초록 광야에서 내가 찾은 삶이 문장 안에 새롭게 흘러들기 원했습니다”라고 적었다. 

가면을 벗고 자신으로 돌아가다

“인간은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점으로 인해 고통을…….” 요한은 윤수에게 이 같은 조언을 했다. 주인공 요한은 학교 선생님인데, 전교 1∼2등을 하지만 불우한 가정사 때문에 힘들어하는 윤수 학생을 만났다. 불우함은 돈만 좇는 아버지와 매맞는 어머니 때문에 나타났다. 윤수는 나중에 투신자살을 시도한다. 

요한은 자신이 쓴 소설의 모티브를 제시한 몽골로 향한다. 그 이유는 췌장암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몽골은 그에게 초록 광야다. 자신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게 요한에게는 안식이었던 셈이다. 요한의 성은 ‘고’이다. 즉, 그의 이름은 ‘고.요.한’이다. 아버지가 부여한 이름으로부터 시작한 갈등과 고민, 극복은 ‘번’에서 ‘온’으로, 그리고 희망의 ‘정온’으로 나아간다. 그 안에서 삶을 지탱해주는 힘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던 것 같다. 삶의 절망 앞에서 마주한 희망의 메시지는 바로 이 문장에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매일 눈을 뜨면서, 그리고 매일 눈을 감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예상치 못한 슬픔과 절망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정온』 속 이 문장은 나침반 역할을 한다. “고요하면 맑아진다. 맑아지면 밝아진다. 밝아지면 비로소 볼 수 있다.”

고요해야 밝아진다

별책으로 들어 있는 『정온 담화』는 조신영 작가와 인터뷰 및 출간 전 교정쇄를 읽은 이들의 단상이 담겨 있다. 작가 조신영 씨는 이 책으로 “하루에도 수천 번씩 붉으락 푸르락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우리 마음을 고요하고 평안하게 다스리고자 애쓰는 주인공을 통해, 정온이라는 상태를 이야기 해보고 싶었어요.”라고 밝혔다. 위로의 손길을 내밀고 싶었다는 얘기다. 

중국의 문학자이자 사상가, 교육가인 루쉰(1881∼1936), 플라톤(BC 427∼BC 347)과 사무엘 베케트(1906∼1989) 등의 저작들을 함께 하는 연구원들과 읽고 토론한다는 조신영 작가. 그는 현대 산업자본과 팬데믹 시대에 영혼을 파고드는 바이러스가 우울과 슬픔, 두려움과 분노를 낳는다고 말했다. 그 바이러스는 인류의 삶보더 100배는 더 빠르게 변종하고 강해진다. 

그래서는 조 작가는 『정온』이 “영혼의 백신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라면서 “말 없는 위로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슬프고 아픈 세상에 따뜻함을 전해주는 책이 바로 『정온』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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