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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한국사회의 근대성과 종교문화'(한국종교문화연구소 주최)
[학술대회] '한국사회의 근대성과 종교문화'(한국종교문화연구소 주최)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1.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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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6 00:00:00
군부와 재벌에 이어 마침내 언론마저 개혁의 심판대에 올랐다. 물론 지금까지 시도된 개혁작업의 성과는 애초의 기대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지금의 언론개혁도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수위만큼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변화된 시민사회의 지형이 이들 권력집단으로 하여금 전략적 후퇴와 양보를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아있는 '환부'는 어디인가. 적잖은 지식인들이 '종교권력'을 지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개혁의 무풍지대 종교권력

알려진 대로 한국의 국가권력은 종교계에 대해서도 '당근과 채찍'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암묵적이건 명시적이건 권력에 협조하는 종교집단과 지도자들에게는 재벌과 언론에 주어진 것만큼의 특혜를 베풀었던 반면, 저항적인 종교계 인사들에 대해서는 고문과 투옥 같은 야만적 탄압도 불사했던 것. 그 결과 종교계와 국가권력 사이에는 일종의 암묵적 거래관계가 형성됐다. 종교는 국가권력의 취약한 정당성을 보완해주고, 그 대가로 국가권력은 종교계에 물질적·제도적 성장기반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유착관계의 형성은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를 요구하는 근대성의 이념과 충돌이 불가피하다.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이 같은 '비정상적' 유착관계 역시 단순한 물질적 매개물 만으론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이 안정적으로 지탱되기 위해서는 관계 자체를 정당화하는 '재생산 이데올로기'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마련이다. 역설적인 사실은, 이처럼 전근대적 관계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종교의 자유'라는 근대적 이념이 동원되어 왔다는 점이다. 요컨대 '교회는 정치와 같은 세속적인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한국의 종교계는 부당한 정치권력을 암묵적으로 승인하고 그에 따른 반대급부를 국가로부터 제공받아왔던 것이다.
지난 14일(토) 한국사회과학도서관에서는 '한국사회의 근대성과 종교문화'라는 주제로 한국종교문화연구소(소장 강돈구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창립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발표된 논문은 모두 네 편. 이 가운데 이진구 한남대 강사(종교학)가 발표한 '근대 한국사회의 종교자유 담론'은 한국사회의 기형적 정교유착을 가능케 했던 '정당화 이데올로기'의 기원을 파헤쳐 주목을 받았다.
이씨는 한국 사회에서 유통되는 '종교의 자유' 담론을 매우 "독특한 것"으로 규정한다. 그가 볼 때 한국의 종교 자유 담론은 "이미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한 종교집단"에 의해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건전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방어용 무기"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종교자유 담론이 "개인의 양심의 자유는 부각되지 않고 종교집단 혹은 종교권력의 자유"에 무게중심이 놓여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신앙 및 양심의 자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구사회의 그것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고 진단한다. 결국 그의 시선은 한국사회의 독특한 종교자유담론을 출현시킨 역사적 조건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데 놓여진다.
이씨에 따르면 서구의 종교 자유 담론은 이중의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하나가 '공적 영역에 개입하지 않는 한 교회는 국가에 의해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지닌다'는 '교회의 자유'라면, 다른 하나는 '각 개인은 신앙의 차원에서 국가와 교회의 권위에 의해 억압받지 않을 자유를 지닌다'는 '신앙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개인의 권리가 지고의 위치를 차지하는 서구 근대성의 구조 아래에서는 '교회의 자유'보다 '신앙의 자유'가 보다 우월한 지위를 지닌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두 가지 자유의 관계가 역전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씨는 그것을 개항기 △천주교와 개신교의 선교전략과 △개항기의 역사적 정황이라는 두 가지 틀을 통해 설명한다. 우선 그가 주목하는 것은 개항기 두 종교의 선교전략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선교활동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에 놓여있었다는 점이다. 이씨에 따르면 천주교와 개신교는 "정교분리 담론을 통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고, 그 결과 두 종교는 "정치권력의 부당한 질서에 도전하기보다는 체제에 순응하는 대가로 일정한 보호구역을 할당받는 전략"을 구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체제순응 대가로 보호구역 할당"

이와 함께 '개인적 주체'보다 민족이나 국가 같은 '집단적 주체'가 강조된 한국 근대성의 특징도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 받는다. 외세의 도전과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보다는 집단과 민족의 자유가 강조되는 상황에서, 강력한 민족국가 달성을 지향하는 국권주의 진영 뿐 아니라 개인의 민권을 강조하는 민권주의 진영 역시 '교육을 통한 문명화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종교시장 개입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면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지형 아래서 개인의 종교자유가 강조될 여지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이씨의 논문 외에도 임현수 강남대 강사(종교학)의 '한말 역사서술의 시간성', 장석만 서울대 강사(종교학)의 '한국 의례 담론의 형성' 등이 발표됐다. 임씨는 개화기에 쓰여진 역사서술을 분석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시간성의 특징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개화기 이전의 전통적 시간성을 '중화적 시간성'이라 명명하고 그것이 개화기 역사서술에 미친 영향과 효과를 그와 대비되는 '근대적 시간성'과의 병치·대조를 통해 분석했다. 장씨의 논문은 한국에 서구 근대성이 수용되면서 근대적 의례담론이 전통적 禮담론을 대신해 헤게모니를 장악해나가는 과정을 추적한 글로, 유교의 허례허식 비판에 담긴 근대성의 양상을 추출하고, 그것이 오늘날 의례양상에 어떠한 방식으로 투영되어 있는지를 규명했다.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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