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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와 '상호소통'을 추구하는 예술들
'대화'와 '상호소통'을 추구하는 예술들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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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을 배반하는 영화 속 주인공

‘대화성’이나 ‘상호소통’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열림’을 지향하기에, 예술에서 구현되는 방식이나 범위도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다양함을 보여준다.

우선 작품과 관객사이의 소통 가능성이 가장 열려있는 연극분야에서 ‘대화성’은 어떤가. 관객이 배우로부터 분리되고 수동적인 존재로만 남겨진 서구 극형식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지난 1970년대부터 있어왔다. 즉 전통연희극과의 접목을 시도하면서 다시금 관객은 무대 위에 끌어내지고 소통하게 된 것. 최근엔 극단 ‘자유’의 연극들이 이를 잘 보여줬다. 전통극의 형식을 수용해 총체극을 시도했는데, 여기서 배우들은 객석을 누비고 다니며 관객의 역할을 하고, 관객을 참여시키기도 하는 등, 관객은 연극 한 가운데 자리 잡고 무대는 관객을 극적 사건으로 끌어들이는 ‘상호소통’의 장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다수의 연극들은 아직도 최소한의 상호소통성만을 보여주는 듯하다. 김성희 한양여대 교수(연극평론가)는 “작품의 구성이나 줄거리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결말을 결정지어놓지 않고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건 몇몇 실험극이나 퍼포먼스에 그친다”라며 표피적인 대화성의 시도를 비판한다. 김 교수는 또한 “관객과 함께 극을 만드는 건 좋지만, 단지 웃음을 유발시키는 효과로서만 관객을 잠깐 끼워 넣는 건 진정한 대화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관객을 부가적 요소로만 덧붙이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시각예술에서 대화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미 완성된 작품으로 ‘보여지는 것’에 불과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사진의 경우를 보자. 이미 작가가 찍어온 작품이 전시되며, 그 매체의 특징 또한 만지거나 조작할 수도 없는 매우 정적인 것이다. 하지만 근래의 사진전시회에서 다른 대화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요즘 사진작품들은 대형화되는 추세인데, 이는 관객이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다르게 읽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즉 관객에게 다양한 경험을 유도하는 것. 사실 사진은 고정된 것이기에 관객들을 지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매체였는데, 이제는 사진이 순간적인 인상을 통해 관람자에게 여러 측면으로 다가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사진평론가 신수진 씨는 대화성의 또 다른 측면을 주목하는데, 내용적인 면에서 그렇다. 신 씨는 “근래 작품들을 보면, 하나의 사진에 두 가지 이상의 이야기가 실린다. 주인공이 하나가 아니다. 다성적인 목소리가 존재한다. 하나의 화면에 다양한 등장인물이나 상황이 충돌하면서 동시에 존재한고 있다”라고 말한다. 바흐친의 다성성 개념이 사진 속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인데, 다성성은 충돌과 대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변증법적인 과정이다.

영화에서 ‘대화성’은 여러 가지로 논할 수 있다. 우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요소들 의 다양함이다. 다성적인 목소리를 내는 각각의 주체들과 이질적인 요소들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인데,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대표적인 예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꼽는다. 심 씨는 “홍상수의 영화에선 등장인물끼리의 상호충돌하거나, 심지어 등장인물이 작가의 의도를 배반하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그런 측면에서 대화성은 작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라며 홍상수 영화의 특징을 정리한다. 나아가 심 씨는 “이런 무규정적인 영화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이런 유의 작품들은 흔치 않다.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영화들조차 기존의 고정된 흐름에 머물러 새로운 영화읽기를 가능케 하는 작품들은 많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은 작품에 구속당하거나,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즉 한국영화에 여백이 없다는 이들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만할 것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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