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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적 마르크스주의’로 전환과 갱신…들뢰즈의 정치철학 
‘자율적 마르크스주의’로 전환과 갱신…들뢰즈의 정치철학 
  • 전성욱
  • 승인 2021.01.11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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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무기들』서평 |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432쪽

학지의 실천으로 해방의 철학을 구성하다
마르크스의 새로운 독해, 안토니오 네그리와 질 들뢰즈
들뢰즈의 블록화와 네그리의 공통체적 주체성

조정환은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했다. 그것은 그의 학문적, 사상적, 이론적 이력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의 행로는 바로 그 원점을 부단하게 해체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고 할 만하다. 그는 국어의 안팎을 넘나드는 번역가였고, 문학을 정치화하는 운동가였으며, 학술을 행동화하는 실천가였다. 교수라는 제도의 직함을 바라기보다 대학의 바깥에서 제도를 넘어서는 고단한 투쟁가의 길을 걸었다. 요컨대 그는 근대적 국가와 학제의 경계에 구애됨이 없이 읽고 쓰는 학지(學知)의 실천으로써 해방의 철학을 구성하는 사람이었다. 

전성욱 교수는 조정환 저자를 '학지의 실천으로써 해방의 철학을 구성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사진은 『개념무기들』을 쓴 조정환 저자. 

가라타니 고진이 자신에게 문학비평은 마르크스와 『자본론』을 가능성의 중심에서 다시 읽는 것이었다고 했던 것처럼, 조정환에게 문학은 마르크스의 새로운 독해를 통해 완고한 자기를 유연하게 갱신하는 나날의 노력에 다름 아니었다. 그 갱신의 극적인 계기, 달리 말하자면 어떤 치명적인 도약을 가능하게 했던 철학의 스승이 바로 안토니오 네그리이고 질 들뢰즈였다. 조정환은 그 이름들 앞에서 기꺼이 사숙(私淑)하였노라고 고백하였다. 그런 고백은 너무도 순정하고 겸허하게 들려서 그의 차가운 철학적 언설들의 배면에 있는 뜨거운 문학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역시 그에게 정치는 문학이고, 투쟁은 창작이며, 실천은 출간인 것이다.   

네그리 사숙의 결과를 담은 그 오롯한 공부의 결산이 『아우또노미아』(갈무리, 2003)이다. 그 책은 네그리의 정치철학에 대한 탁월한 입문서인 동시에 탈냉전의 역사적 전환기를 온몸으로 돌파해나간 조정환의 정신적 고투를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는 저작이다. 그렇게 그는 네그리를 통해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주술과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의 정치적 대항력을 구성해나갔다. 그리고 그런 정치철학적 사유의 단련 속에서 얻어낸 것이 절대적 구성력으로서 다중의 정치적 잠재력을 실현하게 하는 힘이자 모든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역량으로서의 ‘절대민주주의’(『절대민주주의』, 갈무리, 2017)라는 정치사상이었다. 

물론 ‘절대’라는 말이 일자적 초월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신화적인 것이 아니라 신적인 것이다. 바로 그 신적인 함의 속에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조정환의 정치철학이 갖는 예술적 성격, 다시 말해 규범화되지 않고 특정한 의미로 규정되지 않는 정치적 사유의 애매함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독특한 사상적 특질이다. 그것이 제도권의 정치철학자들과는 구별되는 조정환의 정치철학이 갖는 고유한 질감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정치는 곧 문학에 다름없는 것이라는 앞에서의 전언을 다시 한 번 환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네그리 정치철학으로 마르크스주의 벗어나

『개념무기들』(갈무리, 2020)은 네그리와 더불어 사숙하였던 또 하나의 인물인 들뢰즈의 정치철학에 대한 그간의 공부와 사색을 제련해낸 저작이다. 들뢰즈가 병들어 지친 몸을 아파트에서 던져버렸던 1995년은 조정환이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로 이행하던 자기 갱신의 때이기도 했다. 바로 그 때 전환과 갱신의 주요한 마디로서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에 접속하였던 조정환에게 들뢰즈는 그야말로 가능성의 중심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조정환은 책머리에서 이 책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정리하였다. “이것은 들뢰즈를 맑스주의의 맥락 속에서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거꾸로 맑스주의를 들뢰즈의 시대 속에서 새롭게 발전시키려는 기존의 작업을 들뢰즈의 주요 개념무기들에 대한 심층탐구의 방식으로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들뢰즈의 사후 25년이 지난 시점에 기계, 시간, 정동, 주체, 정치, 속도라는 여섯 개의 개념을 유력한 정치철학의 무기로서 단련해낸 그의 들뢰즈 공부 25년의 결과를 실천철학의 행동학적 관점에서 압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정환이 그의 모든 힘을 모아서 집중하고 있는 것은 제국을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들뢰즈의 개념들을 제국의 급소를 찌르는 무기로써 전유하고 있는 이 책 역시 그 기획의 한 과정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들뢰즈 정치철학의 맥락을 네그리와 접속시켜 그들 사이의 사상적 단절점을 기어이 이어내려는 저자의 노고가 인상적이다. 그러니까 네그리를 사숙하며 도달했던 절대민주주의의 정치철학이라는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조정환의 사상적 숙성 과정 속에 들뢰즈의 철학을 합성시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여겨진다. 

애초에 조정환이 들뢰즈를 정치적으로 새롭게 읽어낼 수 있게 된 계기도 네그리 사숙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네그리의 공저자인 마이클 하트의 박사학위 논문의 독해 속에서 그는 들뢰즈의 소수정치학이 갖는 막대한 의미를 발견해냈던 것이다. 이 책의 6장과 7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이 바로 그 발견을 더 높은 차원에서 네그리의 삶정치론과 합성시키는 것이다. 둘 다 잠재성을 그들 정치학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공통점에서 시작해, 가능성과 노동에 대한 둘 사이의 관점 차이를 섬세하게 연접시키려는 저자의 능동적 독해가 치밀하게 전개된다. 들뢰즈의 블록화와 네그리의 공통체적 주체성의 연관 속에서 좌파 가속주의의 주장이 갖는 그 가속의 어떤 불충분함을 지적하고 있는 8장의 속도에 대한 논의도 역시 같은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소수정치학과 삶정치론의 합성

존재론적 실재를 유동하는 욕망기계들로 파악하면서 그 연결, 분리, 결합의 접속을 통해 생성되는 다양한 사회기계와 그것을 내파시킬 수 있는 전쟁기계의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 2장이다. 3장에서는 크로노스의 시간성이 갖는 한계를 돌파하는 아이온의 시간성에 주목하였고, 4장에서는 갖가지 불안과 불만을 야기하는 정서로부터 새로운 관계를 능동적으로 창출해내는 정동으로의 이행을 논구하였다. 

그리고 5장은 예속된 주체성을 탈피하는 항쟁적 주체로서의 탈주체적 주체의 여러 형상들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논의가 들뢰즈의 주요 개념들을 “어떤 것을 표상하지 않고 오히려 도래할 실재, 새로운 유형의 현실을 건설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추상기계’로 전유하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정환이 ‘개념무기들’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한 그 추상기계화의 작업이 향하는 궁극은 역시 제국을 넘어 새로운 삶을 창안하는 것이다. 

제국을 넘어선 세계, 그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삶, 그런 삶을 창안하는 정치에 대한 한 인간의 신념이란 무엇인가. 그 정치적 창안의 집념이 조정환에게 있어 문학과 예술의 창작에 대한 열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인간은 예술인간에 다름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아우또노미아』, 『절대민주주의』, 『예술인간의 탄생』과 나란히 읽히기를 바란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조정환의 다음 행보도 역시 그 원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일이관지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또한 제국 너머의 새로운 삶을 창작하는 예술가의 마음이 깃든 정치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성욱 동아대 교수·기초교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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