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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시대의 모범인 ‘퇴계 이황의 편지’
여전히 시대의 모범인 ‘퇴계 이황의 편지’
  • 박상수
  • 승인 2021.01.15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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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퇴계 편지 백 편』 이황 지음, 이정로 엮음, 박상수 옮김 | 수류화개 | 494쪽

중국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유명인의 편지를 따로 묶어 낸 자료는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퇴계의 편지모음집은 단연 풍부하여, 『이자서절요』, 『양선생왕복서』, 『사문수간』, 『퇴계선생서절요』, 『퇴서유집』, 『자성록』과 18세기 일본 학자 스구리 교쿠수이가 엮은 『이퇴계서초』 등 다수가 출간되었다. 이외에도 1996년 권오봉 교수가 정리한 『퇴계서집성』은 퇴계의 편지를 집대성한 자료라고 하기에도 충분하다.

이렇듯 퇴계의 편지를 국내외 학자들이 주목했던 이유는 단순히 학문과 일상을 통해 교훈을 얻으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가 쓴 『사문수간』의 서문에 이러한 의도가 잘 나타나, ‘이 책을 사서삼경과 함께 반포하여 많은 선비들로 하여금 시대의 모범으로 삼게 하라’고 하였다. 이는 진솔한 감정과 일상을 담은 편지를 통해 퇴계의 학문과 평소의 수양 자세를 알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편지가 심오한 학문의 요체로 나아가는 길잡이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인들의 생각은 퇴계 사후 약 200년이 지나활동했던 다산 정약용에게서도 확인된다. 다산은 퇴계가 문인들에게 보낸 33통의 편지를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한 통씩 읽었다. 그리고는 퇴계를 흠모하고 사숙한다는 마음을 담아 『도산사숙록』을 남기며, ‘더 이상 화려한 바깥 향기에 취해 기웃대지 않고, 자신의 본연의 향기를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한다.

정조는 퇴계의 편지를 시대의 모범으로 삼으라고 했다. 사진 = 위키백과

화려한 향기 기웃대지 않기

일반적으로 퇴계는 조선시대 성리학을 정립시킨 학자로 자신의 감정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을 듯싶지만, 제자 이함형에게 두 번째 맞은 아내 권씨외의 결혼생활이 어렵다고 털어놓고 있다. 퇴계는 자신의 곤란함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도록 했다. 퇴계는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한 지 3년 만에 안동으로 귀양 온 권질의 딸과 혼인을 한다. 권질의 딸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모자라는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퇴계는 그녀를 사랑으로 감쌌고, 죽고 나서는 전처 소생의 아들들에게 시묘살이를 시켰다.

“저는 두 번 장가를 들었지만 줄곧 불행이 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에 대해 마음을 박하게 하지 않고 노력하여 잘 처신한 지 거의 수십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몹시 괴롭고 심란하여 번민을 견디지 못할 경우도 있었지만, 어찌 감정대로 대륜을 소홀히 하여 홀어머니께 근심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중략) 공은 마땅히 여러 번 깊이 생각하여 징계하고 고치도록 하십시오. 이 문제를 끝내고치지 않는다면 어찌 학문을 한다고 하며, 어찌 실천한다고 하겠습니까?”

일설에는 이 편지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당시 퇴계는 이함형의 부부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얼굴도 마주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 도산서당을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그에게 편지 한통을 건네며, 길에서 남몰래 열어보도록 하였다. 이 편지를 본 이함형은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퇴계에게 받았던 편지의 내용을 일러주고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퇴계의 학문에 대한 태도 역시 매우 엄정하여 허태휘에게 보낸 편지에, 지나친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객관적인 자세로 옳은 점만 따라야 진실에 가까워질 수있음을 강조하였다. 

“문장의 뜻을 파악하는 것과 도리를 강구하는 것은 반드시 먼저 마음을 비우고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금의 사람을 따질 것 없이 오직 옳은 점만 좇아야 진실하고 틀림없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실로 혹시라도 이와 반대
로 한다면 스스로 잘못을 저지를 뿐 아니라 남들까지도 그르치게 하는 일이 틀림없이 많을 것이니, 이것이 매우 두렵습니다.”

『퇴계 편지 백 편』은 제목 그대로 백 편의 길고 짧은 편지로 구성되었다. 학문에 관해 기대승과 주고받은 편지를 비롯해 조카에게 상복을 입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한수에게 벼슬을 하더라도 자기중심을 세워 발꿈치에 단단히 힘을 주어야 한다는 가르침들은 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전하고 있으니 틀림없는 고전이라 할 수 있다.

 

박상수 
(사)전통문화연구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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