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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비대면에서 무엇을 성찰했나
대학은 비대면에서 무엇을 성찰했나
  • 교수신문
  • 승인 2021.01.1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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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최재목 논설위원(영남대 교수·철학과)

 

최재목 논설위원 /영남대 교수·철학과
최재목 논설위원 
영남대 교수·철학과

지난해 거의 모든 대학은 온라인 언택트 수업과 면담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코로나19 때문에 대학은 이미 ‘비대면’이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그런 수업 방식을 몸에 익혔다. 마스크 쓰기도 습관화 되었다. 마스크 없는 대면이 미안, 불안하며 심지어 무례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다시 대면 수업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런 체화된 기억,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마스크를 벗은 모든 맨 얼굴은 미지의 위험이거나 폭력, 불안이거나 결례라는 암묵지를 형성했다. 어쨌든 코로나19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하고, 대학의 풍경을 변형시켰으며, 나아가 세계의 질서까지 멋대로 찝쩍댔다. 이것을 또 하나의 포스트휴먼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사실 대면 강의 여부는 대학이나 교수의 자유의지대로 판단할 것이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하달되는 정부지침을 준수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대면· 비대면, 마스크 쓰기 여부는 과도한 외부의 개입(=타력적)으로 습성화돼, 개인의 자유선택이라는 의식은 박약해졌다. 언급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알아서 해야 할 필수 사항이라는 점이 무의식 속에 각인되었다. 모든 위험 상황이 종료된 다음, 정상 대면수업을 하더라도 온라인 수업, 마스크 쓰기는 습관처럼 아니 트라우마로 한동안 대학사회에 지속할 것이다. 이런 현상의 시시비비는 또 다른 차원이다. 대학은 학생들의 습관에 대해 개인적 패션이나 취향처럼 인식하고 일찌감치 대응해갈 수밖에 없다. ‘나는 대면 보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 쪽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편합니다’라는 발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위험한 사태가 지속되자 대학가는 자연스레 집단 동원 체제를 경험하기도 했다. 감염 환자가 발생하면 그들이 드나들었던 건물은 곧 폐쇄되고, 접촉인물들은 수배되어 검사소로 불려가 안전성 체크를 받아야 한다. 대학은 여러 형태로 국가의 명령에 따라 안전수칙을 준수하며 일제히 움직였다. 방역을 명분으로 개인 및 집단의 신체 검열을 용인할 수밖에 없고, 개개인의 사적· 공적인 활동이 대부분 공개될 수밖에 없었다. 공동체의 안전이 우선시되고 강요되는 사이 개인의 자유나 인권 의식이 둔화 되는 것은 감내해야 했다. 법 위반에 따른 조치를 겁냈던 만큼 대학의 자율성은 쪼그라들었다. 국가의 통제나 간섭 속에서 대학은 그저 사회적 흐름에 몸을 맡기고 길을 걸었다. 국가이념 실현의 착실한 꼭두각시거나 로봇이라 비판받아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다시 ‘대학은 무엇이며, 무엇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이쯤에서 ‘교수’의 위상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수 학생 간에 왜 대면이 필요한가?’라는 문제는, 사이버대학이 아닌 일반 대학이라면, 성찰할 점이 많다. 비대면의 일상화에서 학생들은 당장에 등록금을 인하하라고 요구했다. ‘얼굴을 서로 본다’는 장점을 인정한 셈이다. 


대면이라는 것은 직접 소통과 스킨십을 근간으로 하면서 교수 학생 간에 말로 표현 못하는 감성· 정감을 교류하고, 사소한 고민을 상담하거나 당부· 충고를 해내는 선 기능을 한다. 이런 인간적 과정들을 삭제하고, 그저 지식만을 형식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일까. 대학 스스로 대면과 비대면의 차이와 조화에 숙고해야 할 때이다.

최재목 논설위원 /영남대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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