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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풍경 속에서 기상의 역사를 음미하다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풍경 속에서 기상의 역사를 음미하다
  • 박찬희
  • 승인 2021.01.1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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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경모습  ⓒ박찬희

기상은 생활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맑을지 비가 올지, 기온은 어떨지 확인하고 날씨에 맞춰 차림을 한다. 지금은 기상 정보가 비교적 정확하고 언제 어디서든 확인하기 편하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9시 뉴스에 나오는 기상통보관의 기상 안내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전에는 자연의 변화를 관찰해 경험으로 날씨를 예측했다. 예전부터 기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지난 2020년 10월 30일 국립기상박물관이 개관하였다. 이곳은 기상을 담당하는 기상청 소속 기관이다. 기상박물관과 관련된 기관으로 국립대구기상과학관을 비롯한 몇 곳의 기상과학관이 있다. 기상박물관이 개관하기 이전 만들어진 기상과학관은 박물관과는 성격이 다르다. 과학관은 기상과 관련된 과학적 원리의 소개와 체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박물관은 기상 관련 유물과 기상 관측의 역사를 중심으로 전시하였다. 
국립기상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기상청에서는 몇 가지 사전 조사를 실시하였다. 우선 기상 관련 유물의 연구가 풍부하지 않아 기상 관련 유물의 실태와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자료가 풍부해졌으며 특히 고문헌에서 다양한 기상 관련 정보를 확인하고 축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상박물관 건립 계획을 수립하였다. 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지는 서울 기상관측소였다. 당시 건립 계획을 살펴보면 중요한 기상 유물을 전시하고 기상 업무의 발전사를 조망해 자긍심을 높이고 기상청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서울 기상의 대푯값을 측정하는 곳

ⓒ박찬희
ⓒ박찬희

 

박물관으로 결정된 서울 기상관측소는 무엇보다 장소성과 역사성이 뛰어나다. 근대적인 기상 관측은 1883년 개항장이었던 인천과 원산에서 시작되었다. 1907년에는 서울에 측후지소가 세워졌다. 처음에는 지금의 서울대학교 병원 자리에 있었고 그 후 낙원동으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건물이 높아지고 주변이 번잡해지면서 기상 관측에 지장을 받자 1932년 현재의 자리인 송월동으로 이전하였다. 이곳은 도심이지만 한적한 곳이었다. 해방 이후 이곳은 경성측후소에서 국립중앙관상대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후 기능이 확대되면서 건물이 추가로 세워졌다. 1998년 기상청이 보라매공원으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이곳은 서울 기상관측소로 이름을 바꾼 채 그대로 이곳에 남았다. 1932년 이래 서울 기상의 대푯값을 측정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서울 기상관측소 건물을 활용해 만들었다. 이 건물을 정면에서 보면 왼쪽과 오른쪽이 확연하게 다르다. 왼쪽 부분은 1932년에 처음 지어진 건물이고 오른쪽 부분은 1939년에 증축된 부분이다. 시기가 다른 두 건물이 만나 이어졌는데 어색함이 없고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다. 이 건물은 건축사적인 중요성과 역사적인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4년 등록문화재 585호로 지정되었다. 이때 단지 건물만 지정받은 것이 아니었다. 야외에 있는 우량계측실과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단풍나무와 벚나무와 같은 표준목들도 함께 지정되었다. 이 나무들 역시 기상의 역사를 담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을 박물관으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이곳은 건물을 복원하면서 박물관을 만들어야했다. 1932년에 지은 왼쪽 건물은 원형에 가깝도록 덧댄 부분을 철거했다. 한편 건물 뒤쪽에는 출입 공간인 아트리움을 새로 만들었다. 아트리움은 기존 건물을 압도하거나 이질적이지 않고 잘 어울린다. 건물 내부 여러 곳에는 벽이나 천장의 일부를 노출시켜 자연스럽게 건물의 역사성을 보여주었다. 2층 복도에는 공사 과정에서 나온 부재들을 전시해 건물 자체의 역사를 드러냈다.
박물관의 핵심은 전시실이다.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건물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새로운 전시 공간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 과제였다. 그 결과 크기는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산뜻한 전시실이 탄생하였다. 1층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기상 관측을 다룬 1전시실, 조선의 기상 관측을 다룬 2전시실, 서울 기상관측소의 역사를 다룬 기획전시실이 자리 잡았다. 2층 전시실은 근현대 기상 관측 역사를 다룬 3전시실, 기상 업무 전반을 다룬 4전시실로 구성되었다. 전시 유물은 공간의 규모에 알맞게 전시되었다.

 

ⓒ박찬희

풍경을 끌어들인 전시실
 
전시실에서는 창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창문이 세련되고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아름답다는 점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창문을 막지 않았다. 일부 전시실을 제외하면 전시실 바깥에서 자연광이 들어오고 또 내부에서 바깥 풍경이 보인다. 덕분에 전시실은 딱딱하지 않고 편안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 점은 다른 박물관의 전시실과 큰 차이점으로 기상박물관의 큰 특징이다. 만약 박물관을 신축했다면 창문을 활용한다는 발상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개 박물관에서는 보안상의 문제와 내부 조명 효과 때문에 창문을 만들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활용한다. 옛 건물을 박물관으로 만든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을 예로 들자면 이곳은 창문에 블라인드를 설치해 빛과 풍경을 차단하였다.  
박물관 내부는 뜻밖의 공간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조금만 걷다보면 비밀스러운 공간을 여럿 만난다. 박물관 안에는 서울 기상관측소 사무실이 있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옥상에는 현재도 작동하는 관측 장비가 설치되었다. 서울 기상관측소에서는 지금도 기온, 풍향, 풍속, 강수량, 적설량 등 21가지를 하루 18회 관측하고 기록한다. 또한 관측소에서 자라는 벚꽃, 개나리, 진달래 등 7종의 수목을 관찰해 계절의 변화를 파악한다. 이 박물관은 한 건물 안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박찬희

건물의 본래 기능을 이용한 전시 공간도 흥미롭다. 바람의 세기를 측정했던 원형 공간(6전시실)과 리모델링 과정에서 발견된 지진계실(5전시실)이 그렇다. 원형 공간은 옥상에 설치된 바람 소리를 모으는 파이프가 내려온 곳으로 그 소리를 듣고 바람의 세기를 측정했다고 한다. 일종의 큰 소리통으로 지금은 사계절을 보여주는 영상과 소리가 나온다. 지진계실은 앞으로 어떻게 전시실을 꾸밀지 논의 중이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원형 계단도 흥미를 더한다. 출입이 금지되어 올라갈 수는 없지만 계단을 보면 조심스럽게 이곳을 오르내리며 기상을 관측했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박찬희

국립기상박물관에서 가장 주목되는 유물이자 대표 유물이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1837년 제작, 국보 329호)다. 측우기가 처음 만들어진 세종 당시의 것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유일한 측우기로 교과서와 역사책에 소개되는 바로 그 유물이다. 이러한 위상에 걸맞게 2전시실 한가운데 따로 전시되었다. 겉보기에는 간단한 원통형이지만 강우량을 정확하게 재기 위한 실험 끝에 만든 결과물이다. 또한 경험에 의존하던 부분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계량화하고 기록하고 이 기록을 국가 정책에 반영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측우기가 전해주는 진정한 의의는 바로 이 점에 있다. 
경희궁과 서울시교육청 뒤편 언덕에서 만나는 박물관은 아름답다. 박물관 건물도 그렇지만 박물관 뜰의 풍경이나 박물관에서 바라보는 서울 풍경도 이에 못지않다. 박물관 내부는 조화롭고 신선하다. 앞으로 한국사에서 기상 관측이 차지하는 의미와 관람객과 소통하는 다양한 전시 요소가 쌓인다면 기상박물관은 아름다움에 생기를 더할 것이라고 믿는다.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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