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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재건론'에 무얼 담을까
'이공계 재건론'에 무얼 담을까
  • 송충한 과학재단
  • 승인 2004.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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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자율화가 경쟁력의 교두보

송충한 / 한국과학재단·과학기술정책학

요즘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표현되는 이공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많은 대책을 수립하고 있으며, 전문가들도 다양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공계위기의 여러 현상을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으로 구분해 본다면 우리가 간과하는 문제들에 접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한다는 현상은 양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공계 출신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그리 걱정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질적인 측면으로 우수한 학생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데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우수한 학생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중요한 요인들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 이공계대학 경쟁력이 세계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상위권 대학의 이공계 학부졸업생들이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해외유학을 택하는 것보다 자신의 경쟁력을 쌓는 데 유리하다고 인식할 정도로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면 이공계 위기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이공계대학이 세계수준의 경쟁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점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간 선의의 경쟁이 촉진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 없이 경쟁력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추진돼야 할 사항들을 몇가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대학의 자율성 보장이다.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대학이 대학 자신에 관련된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을 때 그 대학은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 대학은 기존의 교육과 연구 기능뿐만 아니라 지식생산의 중심지로서 그리고 경제성장을 위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곳으로 변화되고 있다. 대학이 기업, 연구소, 정부 등 다양한 주체와의 관계를 확대하면서 지식생산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기능이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대학에 자율성이 전제돼야 한다.


둘째, 대학 내부의 분권화와 어필(appeal)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대학 내부의 분권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학에 자율성이 부여돼도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학 내부에서도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성숙한 의사결정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아울러, 대학 내의 분권화와 함께 학교 당국은 체계적인 분권화에 대한 견제장치로서 체계적인 어필(appeal)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셋째, 국가 연구지원정책의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2002년도에, 우리나라 전체 기초연구비 2조 3천7백32억원 중 49.7%를 기업이 사용하고 있고, 대학이 28.1%, 그리고 공공연구기관이 22.2%를 사용하고 있다. 기업이 국가 전체의 기초연구 중 50%를 담당한다는 것은 그만큼 대학이 기초연구를 충분히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부는 각 연구개발 주체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역할 분담이 이뤄지도록 유도해 나아가야 하는데, 대학의 기초연구는 정부의 연구개발비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므로 정부는 대학이 더욱 많은 기초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연구지원정책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넷째, 간접비를 대폭 확대해 정부의 연구개발정책의 구현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간접비를 현재의 (직접비의) 15%에서 최소한 30% 이상으로 대폭 상향조정하고, 간접비의 일정비율(30%)을 학과가 운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학과가 간접비의 일정 비율을 사용하도록 하는 경우, 학과의 재정적 권한이 확보됨으로써 제도적으로 대학 내부에서의 자율성확대를 유도해 경쟁을 촉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울러, 간접비 수입이 대학의 중요한 수입원으로 부상함에 따라 대학은 정부의 연구개발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고, 이러한 민감성은 정부 연구개발정책의 효과성을 증대시킬 것이다.


이외에도, 기초연구에 대한 평가기준의 변화 등 다양한 내용이 있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만 개선돼도 우리나라의 대학은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에 보다 근접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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