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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詩窮而後工'
學而思-'詩窮而後工'
  • 정우봉 고려대
  • 승인 2004.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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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窮而後工- 곤궁함을 겪은 뒤에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 속에는 ‘안락한 일상에 파묻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지내는 사람은 사물의 참된 모습을 깊이 살필 수 없고, 이에 따라 좋은 시를 쓰지 못한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 뜻에서 ‘곤궁함’이란 경제적 궁핍이라기보다는, 좀더 깊은 의미의 진지한 고통, 고뇌 및 시련의 체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달리 말해 한 작가가 고통과 불우를 경험하고, 마음속에 강렬한 고뇌의 정감을 축적함으로써 탁월한 문학 창작 재능을 획득하고 뛰어난 작품을 창출해 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시인의 고통, 고뇌, 시련은 창작 재능과 맺는 특수한 관계를 다루고 있는 바, 창작 충동을 격발시키고 창작 재능을 발휘케 해 심미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창출하는 데 유리하면서도 필요한 조건인 것이다.

시인은 획일화된 사회 규범과 자유로운 창조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뇌한다. 사회 제도의 모순에 맞서 시인은 자신의 자유로운 창조력을 바탕으로 그것을 깨뜨리고자 한다. 그런데 사회는 이러한 시인의 행위를 쉽게 받아들이거나 용납하지 못하며, 이에 따라 시인은 그 둘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난과 불행을 경험하게 된다. 한마디의 적절한 시어를 찾기 위해 잠 못 이루며 지새웠던 불면의 나날이 있었기에, 그러한 고뇌 끝에 창조된 시는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준다. 그 가치와 의미가 고뇌에 비례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고뇌가 수반되지 않았다면 그 가치와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한 연구자에 따르면, 중국에서 선진 시대부터 송나라 때까지의 2백 3십여 명의 문인을 대상으로 통계를 낸 결과, 궁핍한 생활을 한 사람이 25%, 좌천되거나 유배된 사람이 46%, 재판을 받거나 투옥된 사람이 20%, 피살되거나 자살한 사람이 14%, 과거에 낙방하거나 벼슬을 얻지 못한 사람이 35%였다. 물론 이 통계에 전적으로 기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를 통해 우리는 시인을 포함한 훌륭한 작가 중에서 불행과 고난을 겪은 사람이 훨씬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행과 고뇌를 거치면 모두 다 뛰어난 시를 창작한다고 반드시 보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시인의 특수한 자질이 요구되며, 시인의 마음속에 강렬한 정신적 지향과 추구가 있어야 하며, 개인의 득실에 얽매이지는 않는 광대한 이상이 들어 있어야 한다. 이같은 조건 위에서 ‘詩窮而後工’의 명제는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일수록 갖가지 시련과 고난을 견디며 새로운 사상을 모색하고, 그 시대의 문제를 절실한 체험으로써 노래한다. 위대한 시인은 고통과 고뇌와 시련 속에서 오히려 그것을 더 넓고 깊은 사상과 학문과 시의 바탕으로 수용할 수 있었기에, 그리고 자신의 불행에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더 넓은 사회 현실의 인식에까지 끌어 올렸기에 우리들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고뇌의 문제는 비단 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학자로서 논문을 쓰는 것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치열한 문제의식과 고민을 거듭하면서 밤을 새워가며 논문 한편을 탈고했을 때의 기쁨을 생각해 본다.

정우봉 / 고려대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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