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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주목한다]『대원군집권기 부국강병정책 연구』(연갑수 규장각특별연구원 지음, 서울대출판부 刊)
[이책을 주목한다]『대원군집권기 부국강병정책 연구』(연갑수 규장각특별연구원 지음, 서울대출판부 刊)
  • 교수신문
  • 승인 2001.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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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6 00:00:00

왕족이었지만 파락호 생활로 숨을 죽이며 지내다가 한 순간에 권력의 최고 정점에 올라 분부 한마디로 산천초목을 떨게 했다던 흥선대원군(1820∼1898). 당대에는 이홍장·이등박문과 함께 동아시아의 세 걸인으로 손꼽혔으며 극적 반전으로 점철된 인생 역정과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강한 카리스마로 늘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본서는 그 매력적인 인물 흥선대원군과 그의 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이다.

개혁가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대원군

본서를 읽기 위해서는 대원군에 대한 어줍잖은 상식은 접어두어야 한다. 글을 읽는 동안 어차피 상식은 파편으로 분해될 것이므로 하긴 접어두지 않더라도 무방하다. 본서에서 완고한 쇄국주의자 대원군은 자본주의 국가의 침략에 대항하면서 부국강병으로의 정책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전통적인 사족 중심의 지배질서를 극복하고자 시도했던 개혁가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사후에도 대원군의 극적 반전은 그칠 줄 모른다.
그동안 대원군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며 그런 가운데 ‘근대 지향적인 개혁가’라는 수식이 붙은 경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대원군을 개혁가로 보는 본서의 시각은 새롭다. 저자는 ‘쇄국’이라는 잘못된 잣대로 대원군과 그의 시대를 재단하며 ‘개국’과 대비시키는 오류를 수정할 것을 주문하면서 ‘부국강병’이라는 새로운 잣대를 제시하였다. ‘부국강병’이야말로 대원군의 정책 의도였으며, 이는 성리학적 질서를 추구하던 조선후기사회에 새롭게 나타난 근대의 징표이고 대원군의 실각 이후에도 시대정신으로 계승되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문제의식을 관찬사서를 비롯한 등록류, 읍지, 문집 등 방대한 문헌자료를 자유자재로 활용해가며 풀어나간 본서는 분명 주목되는 역저이다. 한편 대원군과 그의 시대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색다른 만큼 논란의 여지는 적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대원군집권기의 대외정책에 대한 해석이다. 저자는 대원군집권기에 조선은 이미 주요 서방국들과 실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러한 관계가 고종 친정기에 더욱 진전되어 조약을 체결하게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원군의 외교정책을 ‘쇄국정책’으로 이해하는 데 대한 제동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관계라고 해도 그것을, 교섭하지 않고서는 부국강병을 이룰 수 없다는 적극적인 차원의 것으로 간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교섭의 주요 의도는 결국 관계를 최소한으로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화친을 허락하는 것은 매국’이라는 척화비의 첫째 조항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며 중국 인사들의 화친 권고에 대해 조선 사신들이 조선에서 화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화를 당할 것이라고 대답했던 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과연 대원군에게서 쉽게 ‘쇄국정책’이라는 딱지를 떼어낼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역사의 거울에 비친 권력자의 고뇌

문제는 대원군집권기에 추진되었던 정책의 계승성이라는 부분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부국강병정책의 계승성에 주목하여, 고종친정기에 들면서 쇄국주의를 대체하는 개국주의에 의해 새롭게 정책 구도가 잡힌 것이 아니며 정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부국강병이라는 동일한 시대정신에 의해 두 정권은 묶여져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고종친정기에 척화비가 뽑혀 나갔던 사실과 고종친정기에 추진된 부국강병책에 대한 반발로 임오군변이 발생되어 대원군이 재집권하였던 것을 생각할 때 양 정권의 정책 사이에는 ‘부국강병’의 고리로만 연결될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한 차별성은 좀 더 적극적으로 분석될 필요가 있고 그러한 분석 위에서 공통분모도 더욱 선명해지게 될 것이다.

최근 신문에서는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 충돌 사건 이후 중국에서는 미국 정찰기가 불시착한 하이난다오를 진원지로 부국강병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1백50여 년 전 대원군이 가졌던 문제의식이 오늘날 중국에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순간 답답함을 감출 수 없다. 정작 지금 우리의 위정자들에게는 대원군의 고뇌와 당당함 같은 것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누구보다 먼저 우리 위정자들에게 본서를 꼭 한 번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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