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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중동지역 몰아친 트럼프의 '아브라함 협정'
[글로컬 오디세이] 중동지역 몰아친 트럼프의 '아브라함 협정'
  • 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1.01.13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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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단국대 GCC국가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한국어로 세방화(世方化)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로 ‘세계적 경제 시스템의 통합과 지역별 정치문화의 분화가 동시에 벌어지는 경향성’을 가리킨다. 영국의 사회학자 롤랜드 로버트슨이 만든 말이다. 금융과 무역으로 촘촘히 연결될수록 문화적, 국가적 반목은 심화되는 오늘날의 역설적 현실이 이 표현에 담겨 있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해 9월 15일 트럼프 대통령 중재로 '아브라함 협정'을 맺은 이스라엘 총리(왼쪽부터), 바레인 외무장관, UAE 외무장관. 사진=AP연합
지난해 9월 15일 트럼프 대통령 중재로 '아브라함 협정'을 맺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부터),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 압둘라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외무장관. 사진=AP연합

 

2020년 지구촌의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이지만, 중동지역을 몰아친 또 다른 태풍은 ‘아브라함 협정’이었다. 아브라함이 활동했던 이 지역에서는 그를 믿음의 아버지로 삼아 오로지 하나의 신만을 인정하는 소위 아브라함 계 유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차례로 탄생했다. 같은 조상들을 공통의 선지자로 인정하는 이들 세 종교 중 후발 주자들은 먼저 난 종교들을 계통상의 선조로 대접하긴 했지만 교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봤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접했다고 믿는 유대교도는 기독교도와 무슬림을, 기독교도는 무슬림을 적대하기도 했다. 이 삼자 갈등의 축소판이 세 종교의 공통된 핵심 성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분쟁이다.


중동 우호의 전환점이 된 ‘아브라함 협정’


2020년 9월 15일, 백악관에서 공식 조인된 아브라함 협정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이 평화로운 공존을 통해 우호적인 협력 관계를 외교적으로 구축하자’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바레인, 미국 사이의 협약이다. 조약은 지난 수십 년간 중동 내에서 반목해온 유대인과 무슬림 사이 화해와 공존을 담고 있으나, 조인식에서 양측은 역내 파트너보다는 외방에서 이들을 중재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선적으로 더 큰 사의를 표했다. 이 광경은 묘하게 1400년 전 이슬람 초창기에 아브라함계 종교들과 다신교도들 간의 협정인 ‘메디나 헌장’을 연상시킨다.


당시 아라비아반도의 도시 야스립에 거주 중이던 아랍의 부족들은 해묵은 분쟁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남쪽으로 400km 떨어진 도시 메카의 신흥종교 지도자 무함마드를 중재자로 초청했다. 당시 무함마드는 자신의 터전인 메카에서 줄곧 박해받고 있었기에, 이 초청에 응해 대부분의 무슬림들을 데리고 ‘성스러운 이주’를 행했다.


야스립에 입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함마드는 기존 부족들의 분쟁을 중재할 방안을 명문화한 ‘메디나 헌장’을 반포하고 아랍 부족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이 규범은 기존 부족들 사이의 갈등 조정안일 뿐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무슬림들이 어떻게 공존할지를 규정하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로써 조성된 최초의 무슬림 공동체는 무함마드의 탄생이나 알라의 첫 계시 내림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져 이슬람력의 원년이 된다. 그리고 후일 ‘(이슬람의) 예언자(무함마드)의 도시’ 야스립의 공동체 ‘움마’를 발판으로 이슬람은 당시 유대교, 기독교 등이 혼재했던 중동지역 대부분을 석권하고 세계인의 4분의 1인 20억 신자를 가진 종교로 성장한다.


중재에는 대가가 따른다, ‘반이란전선’의 앞날


외부인에 의한 중재의 대가는 분명했다. 메디나 헌장은 모든 종교와 종족의 평등과 협력을 약속했지만 그들의 수장은 메디나 바깥에서 들어온 무함마드였다. 메디나 내의 모든 구성원은 도시 내부의 적대관계를 청산했으나 대신 기존에 없던 외부의 적과의 전쟁에 동참해야만 했다. 협약은 메디나인 모두를 이슬람의 적대 세력이었던 메카의 쿠라이시 부족과의 전쟁에 군사적·재정적으로 협조할 것을 요구했고, 이 공동전선에서 이탈할 자들을 단죄했다. 절대 다수의 유대인들과 다신교도들, 그리고 소수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성장한 극소수의 무슬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대를 이슬람 권역으로 재편했다.


트럼프의 중재 역시 내부의 화합 대신 외부와의 공동전선을 공고히 했다. 트럼프는 그간 화해할 수 없었던 중동 내 다양한 구성원들 중에서 아랍계 이슬람 국가들을 차례차례 설득해서 이스라엘과 화해시켰다. 트럼프는 79년 이집트, 94년 요르단 이후 답보 상태였던 아랍-이스라엘 수교를 아브라함 협정을 앞세워 단시간 내에 수단과 모로코까지 화해시켰다. 이들은 이스라엘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대신 반이란 공동전선 내의 책임도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반전의 변수가 떠올랐다. 트럼프의 재선 실패다. 최근 서명을 목전에 두었던 오만은 미국 대선 이후 협정 조인을 미뤘고, 수단은 국회 동의를 완결조건으로 걸었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상대적으로 친이란적일 것이라 예상되는 바이든 정부의 출범이다. 그래서 무함마드의 ‘반쿠라이시 메디나 연맹’이 연상되는 트럼프와 아랍-이스라엘의 ‘반이란 전선’이 바이든 정부에서도 지속될 수 있지는 의문스럽다.

 

 

 

정진한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연구원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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