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개혁과 관련한 논쟁이 치열해 지고 있는 가운데, 근본적인 접근보다는 ‘수단’으로서의 표피적인 진단과 대증요법적인 해결책이 갈등을 부추기고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우선 고등교육 개혁의 핵심으로 논의되는 서울대 개혁방안. 지난 13일 정운찬 총장이 학생과의 대화에서 ‘대학평준화를 반대한다’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서울대 개혁방안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방송 등 중앙언론들이 모두 정 총장의 발언을 지면에 할애 했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일부 언론은 ‘평준화’가 대학간의 경쟁을 실종시켜, ‘대학을 하향평준화’시킬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관련기사 11면>
정 총장의 발언에 하루 앞선 12일 ‘범국민교육연대’는 ‘공교육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대학개혁방안의 하나로 서울대의 무게중심을 대학원으로 옮기고, 한시적으로 학부생을 뽑지 말자고 제안했다. 이는 과거 김영삼 정부에서 검토했던 대학원중심대학으로의 서울대 개편안에 장회익 녹색대학 총장(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등의 교수들이 제안한 내용을 종합한 것이다. 이에 앞서 경상대 사회과학 연구소도 국립대학에 한해 입시를 공동으로 치르자는 ‘국립대 입시평준화’를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그간의 연구와 운동은 애써 외면하다가 서울대 총장의 발언을 계기로 차이만을 부각했다. 갈등 부추기식 접근이 열린 대화와 장기적인 고민을 가로막고,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고등교육 개혁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가로막은 것은 일부 언론에만 그치지 않는다.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사안만을 강조하면서 근본적인 문제가 가려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이공계 위기론.
이공계 지원자가 줄어들고, 현장 연구자들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사실로 촉발된 이공계 위기론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사회적 홀대에만 관심이 쏠리면서 대안도 단편적이고 대증요법에 치우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대표적인 방안이 이공계 신입생에 대한 장학금 혜택과 유학 지원책. 학계일각에서는 각종 대책들이 효과도 미미하고 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예산만 허비하고 있다고 혹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성군 한양대 공과대학 학장은 지난해 토론회에서 “장래의 불투명성이 제고되지 않고서는 이공계 유입책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올해 초 정부가 내놓은 이공계 석·박사 미취업자들을 위한 대책 역시 마찬가지.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석·박사 인력들에게 정부가 인건비를 일부 지원하고, 대학이나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의 비정규직 취업을 확대, 지원하겠다는 정부 안에 대해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은 “도리어 이공계 고급 인력을 대거 저임금의 비정규직에 묶어 두는 구조를 고착화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이공계 인력 공급 시스템을 왜곡시키고 위기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라고 우려했다.
자극적이고, 갈등만 부추기는 논쟁을 넘어, 진지한 토론과 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머리를 모아야 할 때이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
서울대 개혁안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교육운동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범국민교육연대가 서울대의 무게중심을 대학원으로 옮기고, 한시적으로 학부생을 뽑지 말자고 제한하는 한편, 원내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도 총선 공약으로 서울대 폐지를 꼽고 있다. 서울대 내부에서도 학부규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더디지만 개혁의 걸음을 옮기고 있다. 서울대 개혁안에 대한 각자의 입장과 이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살펴본다.
국립대 입시 평준화와 서울대 개혁
"국립대학을 평준화하고 30만명을 뽑아 학교별로 배정한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망한다"
정운찬 총장이 지난 13일 학생과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을 계기로 대학서열철폐와 서울대 개혁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그러나 논쟁은 결코 생산적이거나 공론을 모아가는 방향이 아니다. 정 총장의 이 발언을 방송과 주요 신문이 일제히 다루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공교육 강화라는 본질 보다는 계층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번 논쟁을 시간 순서대로 다시 되짚어보면,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 등 서울대 개혁을 주요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의 활동으로 서울대 개혁방안에 대한 논의는 심심치 않게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서울대가 학부생을 뽑지 않고, 국립대학들이 공동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체계적으로 제시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정책연구를 하고 있는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이 '학벌타파와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대안'으로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을 제안한 것이다.
찬밥신세 면치 못한 서울대 개혁안
이 자리에서 정진상 경상대 교수(사회학과)는 서울대의 학부를 폐지하고 국립대학들이 신입생을 공동으로 선발하는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화’와 법학?행정?교육?의학 등 전문대학원제도 전면 도입, 내신 성적과 자격시험을 통한 학생선발 등을 제안했다.
서울대 개혁안은 이후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전교조, 교수노조, 국교협 등이 참여하고 있는 범국민교육연대가 마련한 ‘공교육 새판짜기 ; 공공성에 입각한 민중진영의 공교육개편 방안’에서도 주요 화두였다. 서울대의 무게중심을 대학원 교육에 두고 한시적으로 학부생을 뽑지 않는 대신, 전체 국립대학의 학생들이 서울대에 개설된 전공강좌를 들을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대학교육의 새판을 짜야 한다는 이러한 주장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다. 중앙언론 어느 곳도 경상대 연구팀의 제안을 다루지 않았다. 지난 12일 발표한 범국민교육연대의 ‘공교육 개편방안’도 주요 언론에서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국민적인 공론의 장으로 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사회적 관심에서 소외돼 있던 서울대 개혁방안에 불이 붙은 것은 이를 반박한 서울대 총장의 ‘대학평준화’ 반대 발언이었다. 지난 13일 총학생회장 등 학생대표 10여명과 가진 공개면담에서 정 총장은 “대학을 평준화하고 30만명을 컴퓨터로 추첨해서 각 대학에 배정하면 이 나라 장래는 어두워진다”라며, “서울대를 없앨 것이 아니라 비슷한 수준의 우수대학 5, 6개를 더 육성해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개혁안은 없고 반론만 담은 언론들
정 총장의 이와 같은 발언에 대해 방송을 포함한 주요 신문들이 일제히 다루면서 서울대 개혁안은 다시 수면위로 올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개혁안이 담고자 했던 내용은 폄하되고, 내용조차 왜곡됐다는 점이다. 언론들은 “반대한다”는 내용을 보도했지만, 정작 정 총장이 반대했던 서울대 학부 폐지론과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대학 평준화’라는 식으로 비약적으로 축약했다. 축약에서 한발 더 나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각각 14일자 신문의 사설과 논단을 통해 대학 평준화가 대학간의 경쟁을 실종시키고, 교육의 하향평준화를 불러 다같이 죽는 길이라고 질타했다. 또 세계와의 경쟁에서 살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평준’과 ‘평등’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려는 것이며, 입시에서 해방된다는 ‘허황된 유혹’을 담은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서울대 학부 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울대 학부를 5백명 이하로 줄이는 방안은 김영삼 대통령 다시 정책과제로 삼고 구체적으로 진행된 바 있다. 이와 관련 정기오 한국교원대 교수(교육정책대학원, 전 교육부 인적자원개발국장)은 지난달 18일 업코리아에서 “정권교체과정에서 BK21사업으로 변경되면서 취지가 퇴색되고, 우수 전문가와 고급연구자 양성을 대학원 수준으로 옮기고, 학부 수준에서는 전국의 대학이 상대적으로 공평한 경쟁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수도권 지방간의 균형 발전을 기한다는 목표가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입시평준화로 경쟁기반 마련 검토
경상대 연구팀도 대학입시 평준화가 대학의 평준화로 취급되는 것에는 분명히 경계를 하고 있다. 대학입시가 평준화되면, 대학의 경쟁을 촉진시켜 자연스럽게 다양한 대학의 다양한 학과들이 특성화되는 반면, 대학원 입시경쟁은 치열해지면서 대학교육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대 총장은 지난 7일 전체 교수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서울대가 백화점식 학사운영, 비효율적인 연구조직 등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학부감축을 주요 내용으로 한 서울대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대 변화의 필요성은 안팎으로 동의하고 있는 사안. 갈등만 부추기는 언론을 제치고,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