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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선 급여·혜택 만족…‘이류시민권’이라는 비판도
일부선 급여·혜택 만족…‘이류시민권’이라는 비판도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4.05.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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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가: 미국의 비정년트랙교수

1987년 듀크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클레어 터프츠 교수(불어)는 45분 수업 내내 열정에 차 있다. 프로젝터와 인터넷, CD 플레이어를 적절히 배합해 가며 수업의 질을 끌어 올리려 노력할 뿐 만 아니라, 재밌는 게임을 통해 학생들의 수업참여를 높이기도 한다.

 

터프츠 교수에게 강의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커다란 기쁨이다. 새로운 교수법을 접목하고,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게 즐겁기만 하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터프츠 교수가 실제 불어 교수가 아니라, ‘프랙티스 교수(professor of the practice)’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6일자 미국 고등교육 주간지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이하 크로니클)은 몇몇 미국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랙티스 교수제'를 소개했다.

‘프랙티스 교수’는 정년 트랙은 아니지만, 전임인 교수를 의미한다. 전적으로 강의에 의해서 평가를 받을 뿐,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처럼 미증유의 연구 결과를 도출해 낼 필요가 없다. 대신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듀크대, 정년트랙 교수만큼 대우해

이 시스템을 가장 오래 동안 도입해 온 미국 대학은 듀크대. 현재 듀크대 전체 교수의 약 10%를 프랙티스 교수가 차지하고 있고, 이들 대부분은 인문학, 생물학, 어학, 수학, 통계학 등의 학과에서 활동 중이다.

 

계약 기간은 3년에서 10년까지 다양하지만, 평균적으로 최소 5년 계약을 맺는 게 보통이다. 프랙티스 교수의 급여는 정년트랙 교수들의 급여만큼 지급받는다. 또 연구년을 제외한 연금, 보험 등의 부가적인 혜택 또한 받을 수 있다. 에머리대, 뉴욕대 등도 듀크대의 뒤를 이어 동일한 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이들 대학에서 재직중인 프랙티스 교수들에게서 불만의 목소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정년이 보장된 교수보다 더 좋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달렌 스탠글 듀크대 교수(통계학)가 대표적인 사례. 스탠글 교수는 원래 통계학과 정년트랙 조교수였다.

 

하지만 조교수가 된지 2년이 지난 후, 자신의 능력이 연구실에서보다는 강의실에서 훨씬 더 빛을 발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과감히 프랙티스 조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스탠글 교수는 듀크대에서 프랙티스 교수로서는 유일하게 학과장을 맡고 있다.

앞서 언급한 클레어 터프츠 교수도 마찬가지다. 터프츠 교수는 “내가 일을 잘 하고 있는 한, 상당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수업 코스를 만들어 낼 여력이 주어지고, 책을 발간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없다. 게다가 대학의 연구비로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방언을 녹음할 수도 있다. 터프츠 교수에겐 천국인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여건은 일부 교수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프랙티스 교수들은 정년트랙교수보다 훨씬 낮은 급여를 받고 있고, 1년의 단기계약을 맺어진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듀크대 행정당국과 교수들의 만족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비정년트랙 교수제가 교수 사회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미국대학교수연합회 관계자인 리차드 모저 씨는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교수들은 자유롭게 대학의 관습과 정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없고, 직업의 안정성도 담보 받지 못한다”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듀크대는 프랙티스 교수제를 도입하면서 10명 미만의 교수를 해고했다고 한다. 모저 씨는 “우리가 진정으로 염려하는 것은 대학의 건강함이다”라고 말한다.

마이클 왈라쉬 듀크대 교수(심리학)는 프랙티스 교수를 채용하는 것은 이류시민권을 주는 것과 똑같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프랙티스 교수와 정년트랙 교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철폐하기 힘든 차별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몸담고 있는 학과에서는 프랙티스 교수를 전혀 임용하지 않고 있다.

우려 속에서도 '비정년트랙' 확대 추세

또 다른 이유에서 프랙티스 교수제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이도 있다. 존 에치멘디 스탠포드 교무처장이 그러한 사례다. 그는 “정년이 보장된 교수는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강의를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쓴소리를 던진다.

 

강의는 기본적으로 정년트랙 교수들의 몫이라는 게 그의 발상이다. 실제로 스탠포드대는 전임이면서 비정년트랙 강의 교수는 몇 몇에 지나지 않고, 그 수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학에서는 프랙티스 교수나 이와 비슷한 성격의 비정년트랙교수를 확대·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세스턴 뉴욕대 총장은 정년트랙 교수들이 담당하지 못하는 강의에 강의교수를 투입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세미나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정년트랙교수들에게 대형강의를 맡게 한다거나, 학생이 대가로 성장케 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교수에게 입문과목을 담당케 하는 짓은 재앙”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뉴욕대는 지난해 외국인 교수와는 차이가 있는 ‘글로벌 교수’라는 비정년트랙 교수 20명을 채용했고, 앞으로 ‘사이버 교수제’도 만들어 채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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