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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말 건네기
사물에 말 건네기
  • 교수신문
  • 승인 2021.01.1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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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지음 | 울력 | 101쪽

박현수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현대사회는 물질을 토대로 하고 있다. 기업은 그것을 토대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상품을 만들고, 소비자는 욕구를 충족하거나 과시하기 위해 상품을 소비한다. 상품으로 구체화된 사물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용가치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긴요하고 소중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눈길 한 번 받지 못하다 버려진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흔하디흔한 사물들과 그렇게 관계 맺고 있으며, 그렇기에 사물들은 우리의 삶을 보여 주는 매개체일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는 한 방편일 수 있다. 박현수 시인의 신작 시집인 『사물에 말 건네기』는 어디에나 있지만 쉽게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한 이러한 사물들의 세계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러 모습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이번 시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사물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물과 내밀한 관계를 맺을 때 우리의 삶도 진실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러한 관계 맺음은 자동화된 의식으로는 불가능하며 상상력이 가동되어야 한다. 예술가, 시인이 이러한 관계를 맺고자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박현수 역시 특유한 방식으로 사물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시인이다. 그는 상상력을 통해 사물에게 말을 걸어 대화를 시도한다. 사물에 말을 건네는 시인의 작업은 인간 주체가 사물을 장악하고 소유하기 위해 인식하고자 하는 근대적 기획과는 거리가 멀다. 사물에 말 건넴과 사물의 응답을 듣는 작업은 상상력이 파놓은 길을 따라 사물의 내밀한 안쪽으로 들어가야 가능하다. 이 작업에서 사물은 수동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 그것은 지금 침묵하고 있지만, 시인의 말 건넴 끝에 자신의 독특성을 드러내면서 시인에게 자신의 응답을 건넬 것이다. 이 응답을 들으면서 시인은 사물이 우리의 삶을 적극적으로 구성하고 있음을 알아채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는 새로이 자신을 드러낼 것이며 기성의 우리의 앎은 변화될 것이다. 이 시집은 바로 그러한 사물의 다채로운 응답을 보여 주면, 그 응답들에 호응하는 시인의 서정을 담고 있다.”

사물에 내재한 생명력의 드러냄

우리는 ‘살아 있음’을 주로 육체를 지닌 동물을 통해 인지하는데, 박현수 시인은 사물로부터 동물의 육체성을 읽어 내는 작업을 다양하게 보여 준다. 그는 빨래집게에서 “고추잠자리”를, 종이비행기에서는 도롱뇽이나 은빛 연어를, 풍선에서는 “몰랑몰랑한 몸통으로만 떠오르는 새”를 읽어 낸다. 이러한 상상은 사물에 내재한 생명력을 들추어내서 사물을 살아 있는 존재로 드러내며, 이는 애니미즘적인 면으로 확장되어 사람들의 인식과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힘으로 전환시키는 경향이 있다.

현대사회의 삶에 대한 비판

박현수 시인은 전자 디지털 문명이 낳은 최신 사물들을 통해, 이 사물들이 우리의 삶에 군림하는 어떤 종교적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가령 시인은 내비게이션을 절대 틀리지 않는 예언가로 비유한다. 내비게이션이 가라는 대로 가면 목적지에 도달한다. 틀리는 일도 없고, 시간도 맞춰 준다. 그것은 오직 가장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내비게이션이 제시한 선택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내비게이션에 의해 통제되고 예속된다. 이렇게 우리의 삶을 예속시키는 사물들은 내비게이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박현수 시인은 이 시집에서 러닝머신, 스마트 폰, 리모컨, 신용카드 등을 통해 미래가 박탈되고 자유가 봉쇄된 채 현재 시간에 예속된 인간의 삶을 형상화한다.

다시 사랑하며 관계 맺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박현수 시인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찾게 해 줄 수 있는 사물들, 시가 깃들 수 있는 사물들을 찾는다. 그리고 “옷걸이”이나 “안경”처럼 본질을 보여 주는 사물들을 포착하면서 사물로부터 새로운 앎, 시적인 인식을 얻는다. 그로부터 사물과 함께 하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재의미화한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소박한 사물들이 우리의 삶을 들어 올려 준다는 것을 인식할 때, 그러한 사물들의 세계에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알면서 사물들을 대할 때, 우리는 ‘아이들’처럼 까르르 웃을 수 있다. 사물로부터 사랑의 힘을 발견하고 이 힘에 정동되면서 까르르 웃는 일, 그것은 “역병 도는 시간”에 서로 차단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세계를 다시 사랑하면서 관계 맺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박현수의 이번 사물 시들이 지향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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