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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보험료 예측에 필수인 ‘베이즈주의’
선거 결과·보험료 예측에 필수인 ‘베이즈주의’
  • 여영서
  • 승인 2021.01.08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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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상식의 긴 팔』 여영서 지음 | 집문당 | 336쪽

확률은 믿음의 정도
상식의 긴 팔인 베이즈주의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의 기초

갈릴레오나 다윈과 같은 과학자들은 자연 세계를 탐구할 때 늘 새로운 증거를 얻고자 했고, 그 새로운 증거를 근거 삼아 설명하고 예측하려 했다. 그 과학적 방법을 일상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21세기의 인간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정보를 얻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과학하는 인간’으로 진화했다. 

밤에 정전이 된다고 하면 미리 손전등을 준비하고 불이 나면 화재 신고를 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상식을 넘어서는 복잡한 문제 상황에서도 과학하는 인간은 이제 적절한 대처 방안을 즉각 찾아낼 수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새로운 정보에 따라 기존의 문제 해결 방안을 수정하고 개선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비가 올 확률을 이야기하고 선거에서 당선될 확률을 비교했던 것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정보에 따라 기존 확률을 수정하고 수정된 확률에 따라 새로운 대처 방안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확률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과학하는 인간이 활용하는 과학적 방법, ‘상식의 긴 팔’이고 ‘베이즈주의’이다.

 

과학하는 인간의 베이즈주의

베이즈주의는 베이즈 정리에 기초하여 가설과 증거 사이의 관계를 확률로 분석하고 추론하는 과학적 방법이다. 단, 여기서 말하는 확률은 동전을 1,000번 던지면 500번은 앞면이 나온다는 식의 빈도가 아니라 믿음의 정도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믿는 믿음의 정도, 예를 들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가설이 참이 된다고 믿는 믿음의 정도가 확률이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선거에서 몇 번 승리했고 몇 번 패배했는지 그 빈도를 따질 수 없는 이런 경우에는 더구나 확률을 믿음의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그럴듯하다. 미국 대선 여론 조사 결과 등의 배경지식에 기초할 때 트럼프가 선거에 이길 것이라는 가설을 믿는 믿음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고, 그것을 확률로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확률을 믿음의 정도로 이해함으로써 베이즈주의는 확률을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확률을 새로운 정보에 따라 수정하는 방법, 즉 학습의 과정까지도 수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베이즈 정리이다. 베이즈 정리는 영국의 성직자였던 베이즈가 18세기에 처음 정립한 확률 규칙인데, 어떤 사건이 발생할 확률을 새로운 정보를 얻기 이전의 사전확률과 그 이후의 사후확률로 구분하고 그 둘 사이의 수학적 관계를 규정한다. 새로운 정보를 학습할 때마다 가설에 대한 믿음의 정도, 즉 확률을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또 새로운 정보가 가설에 미치는 입증의 정도가 얼마인지를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보 획득과 사전-사후 확률

예를 들어, 마스크의 코로나 예방 효과를 부정하는 트럼프의 비합리적 행동을 우려하는 미국인이 있다고 하자. 그 미국인은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었을 때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 믿음의 정도를 그 이전보다 낮출 것이다. 얼마나 낮추는 것이 합리적인지까지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 베이즈주의이다. 베이즈주의는 새로운 정보가 예상을 벗어난 놀라운 소식일수록 가설에 미치는 증거로서의 힘은 더 커진다는 직관을 포함해서 과학적 방법에 대해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직관과도 잘 들어맞는다. 이렇게 배경지식에 따라 믿음의 정도를 부여하고 새로운 정보에 따라 확률을 수정하는 상식적인 과학적 방법이 바로 베이즈주의이다.  

2020년도 대입 수능의 국어 시험에서 베이즈주의를 소개하는 지문이 출제되면서 대입 수험생들의 관심을 얻기도 했던 베이즈주의는 선거 결과를 예측한다거나 보험료를 산정하는 과정 등에서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빅데이터의 확보와 함께 인공지능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 베이즈주의는 최근에 더 많은 주목을 끌고 있다. 구글에서 지금 ‘베이즈주의(Bayesian)’를 검색하면 3,100만 개가 넘는 검색결과가 나온다. 2018년에는 약 1,710만 개에 불과했고, 2004년에는 약 10만 개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상식의 긴 팔: 과학하는 인간의 베이즈주의』에서 필자는 종종 실수하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비합리적인 존재가 아닌 우리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논리적, 과학적 사고방식이 바로 베이즈주의라고 주장하며 베이즈주의를 쉽게 소개하고자 하였다. 바둑처럼 복잡한 계산 문제는 잘 해결할 수 있지만 상식을 활용해야 하는 쉬운 문제는 오히려 해결하지 못하는 인공지능보다 다양한 배경지식을 활용할 줄 아는 인간이야말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식의 긴 팔인 베이즈주의는 융합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여영서
동덕여대 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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