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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승자와 패자를 양산…불안한 ‘자본주의’의 승리
영원히 승자와 패자를 양산…불안한 ‘자본주의’의 승리
  • 김재호
  • 승인 2021.01.0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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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 『불안한 승리』 | 도널드 서순 지음 | 유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1088쪽

초국가는 없지만 초자본주의는 가능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불안은 자본주의 내부의 속성

“자본주의는 손님들이 ‘영원히 바뀌는’ 호텔과도 같다.”(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슘페터. 1883∼1951) 국가와 자본주의는 일치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국가라고 해서 언제나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국가를 넘어 초월할 수 있다. 런던대 퀸메리 칼리지 유럽 비교사 명예교수인 도널드 서순이 ‘자본주의의 세계사 1860∼1914’를 다뤘다. 어찌 보면 국가보다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인 것 같다. 이 둘의 비교가 가능하다면 말이다. 

도널드 서순은 초국가는 없지만 초자본주의는 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자본주의는 거대한 단일체가 아니고, 중심이 없으며, 경쟁관계를 유발하고 경쟁을 바탕으로 번성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구 전체에 뻗어나갈 수 있다”고 적었다. 자본과 자본주의는 국적을 두지 않는다. 

저자도 지적하듯이, 자본주의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또한 어떤 나라가 자본주의적이었는지 판가름 하기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초창기 자본주의의 대명사라할 수 있는 제조업만 보더라도 산업화 수준을 계산하기 쉽지 않다. 1800년에 러시아는 선철 생산 총 수치에서 영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 당시 러시아를 자본주의 산업국이라고 칭하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에는 하루 평균 16시간 노동을 하다 과로사한 메리 앤 워클 리가 묘사된다. 귀부인들의 화려한 옷을 만들기 위해 26시간 연속으로 일을 해야 하는 날이 지속되기도 했다. 그 당시 언론들은 자본주의적 노동에 분개했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현대의 제3세계 노동자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여전히 시달리는 노동자들

『불안한 승리』는 제1부에서 19세기에 순식간에 늘어난 국가들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조건이 어떻게 형성돼 갔는지 살펴본다. 제2부에선 세계 제1차 대전에 앞선 수십 년 동안 국가가 어떻게 산업화와 경제에 관여 했는지 들여다본다. 제3부는 자본주의 산업화로 야기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동원된 민족 건설, 민주와, 정치·사회·경제적 권리의 발전, 종교의 역할 등을 짚어본다.  

도널드 서순은 “1880년대에 이르면 ‘근대’가 세계 전체를 사실상 에워싸게 되었다”며 “근대가 거의 보편적인 목표가 됐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처럼 자본주의 세계사는 왜 불안한 것일까? 농촌 경제에 머물도 소작농들은 자본주의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해야했다. 불안정한 도시 생활, 더 나아가 해외로까지 나아가 노동을 해야 했다. 

도널드 서순은 “불안은 자본주의 사회의 지속적인 속성이며, 외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 체제의 일부다”라면서 “자본주의는 분명히 수많은 개인적 결정의 축적에 의지하는 인간의 체제임이 명백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혁신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생겨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만성적 불안정은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가 된다. 내가 지금 불안한 건 내 자신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심어놓은 유전자 때문이라는 뜻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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