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4-22 17:55 (목)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 “발언하고 욕먹는 게 먹물의 숙명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 “발언하고 욕먹는 게 먹물의 숙명이다”
  • 박강수
  • 승인 2021.01.05 0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히포크라테스를 인용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눈매에서 굳게 뭉친 피로가 묻어 났다.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저명한 구절로 글머리를 여는 히포크라테스의 『잠언집』에는 이어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 “시간은 순간이고 시도는 위험하며 ‘판단은 어렵다’.” 어려운 판단을 사람들이 너무 쉽게들 내린다는 것이 진 전 교수의 진단이다. 마지막 구를 강조하며 그는 ‘비판의 도(道)’를 말한다. “상대 말이 맞다는 ‘호의의 원칙’에 따라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허점이 드러나는 지점을 정확히 때려야 한다. 지금 야당은 엉뚱한 데 융단폭격을 퍼붓는데 효과가 없다.” 정확한 비판에는 품이 들고 과도한 비판은 되돌아 오기 마련이다.

지난달 29일 화요일 저녁 자택에서 진 전 교수를 만났다. 2019년 12월 19일 동양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그가 생산해낸 말과 글은 줄곧 정권 비판의 선봉에 서 왔다. 2020년 한 해 동안 쓴 <한국일보> 칼럼 27편은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천년의 상상)로, <주간동아> 칼럼 20편은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동아일보사)로 묶여 출간됐다. 한국정치를 양분한 두 세력에 숨가쁘게 주석을 달아온 셈이다. 얼마 전 ‘대안 프레임 짜기’를 선언한 그는 “국가나 민족이 아닌 헌법에 대한 충성을 바탕으로 한 자율적 시민 공동체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성계에 대해서는 “지식인은 이제 전문가 기능을 하면 되고 교수 역시 신분이 아니라 기능”이라고 지적했다. 

 

사진=김재호 기자
사진=김재호 기자

 

△ ‘논객 진중권’으로 보낸 한 해를 총평한다면.

“열심히 살았다, 할 만큼 했다, 이제 그만 하자(웃음). 몸이 많이 망가졌다.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져서 신체조건상 더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성취감도 있다. 민주당이 계속 그릇된 프레임으로 사람들을 선동하기 때문에 올바른 프레임을 깔아 온 것인데 이제는 어느 정도 먹혀 든다는 것을 본다.”

 

△ 페이스북에는 긴 글을 쓰지만 말처럼 퍼져 나간다. 동시에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글과 말은 다른데 비평에서 역할 분배를 어떻게 하고 있나.

“즉각적 영향력은 페이스북에서 확인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은 칼럼의 효과가 강렬한 것 같다. 전술적인 것과 전략적인 것의 차이다. 칼럼은 지금 쓰고 있는 중앙일보의 경우 20매를 쓰기 위해 3일을 투자한다. 힘든 작업인데 일종의 문학이라 생각하고 쓴다. 보도는 안 된다. 보도되는 건 페이스북에 쓴 말들이다.”

 

△ 관련해 ‘진중권 저널리즘이라는 비판도 있다. 인용되면서 과장이나 왜곡된다고 느낄 때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거다. 무엇보다 일단 글이 나가면 이제 나를 떠나 어떤 맥락 속으로 들어간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상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중도층은 비교적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보수층은 이용하려고 하고. 통제는 가능하다. 간단하다. 내가 안 쓰면 된다. 보수층에서 내 글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도 이용당해 준다. 서로 돕는 관계랄까.”

 

△ 일종의 ‘진중권식 정치’인가?

“그런 셈이다. 중요한 건 말려들어가지 않는 일이다. 이걸 하다 보니 돈을 어떻게 버는지 알겠더라. 내가 유튜브 켜고 정부 까면 떼돈을 벌거다(웃음). ‘슈퍼챗’이 쏟아지겠지. 그건 내 길이 아니다. 그런 욕망을 잘라내는 게 중요하다. 논객은 검객이라 '사파'의 길을 가면 안 된다. 강호에 사파가 너무 많다. 유튜브 보면 다 사파다.”

 

“담론과 세론은 다르다. 둘을 섞으면 안 된다.”

 

△ 유튜브나 페이스북이나 확증편향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플랫폼이다. 아무리 저명한 스피커도 지지하는 사람들만 듣는 ‘그들만의 리그’에 갇히기 쉽다. ‘소셜미디어에서 정치 얘기하기’의 구조적 한계인데 어떻게 보나.

“부족화, 종족화는 어쩔 수 없는 거다. 프레임이 뭔지 알고, 크로스체크를 하면 되는데 사람들은 항상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싶어한다. ‘진중권 저널리즘’도 그 문제다. 사람들이 (진중권 말을) 듣고 싶어하는 ‘니즈’가 있다. 거기에 (언론이) 편승하는 거다. 욕하는 사람들도 클릭해서 읽는다. 댓글 보면 절반 이상 욕이다. 오히려 더 큰 독자들이다. 그러면서 저널리즘 욕을 한다. ‘기자야 이걸 기사라고 썼냐’, 자기들이 클릭 안 하면 되는데.

(언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걸 좀 보라고 하고 싶다. 니즈가 있다는 것, 진중권이라는 개인에 이런 관심이 쏠리는 건 뭔가 왜곡됐다는 것 아닌가. 언론에 대해 말을 할 수 없게 막아놓은 왜곡된 구조에 당신들이 협력한 것 아닌가. 반성해야 한다. 언론학자들에게 그 얘기를 하고 싶다.”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천년의 상상, 2020.11)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천년의 상상, 2020.11)

 

△ 고유한 ‘논객의 레토릭’을 구사해 왔다. 예리한 칼이 잘 들지만 너무 날카로워 상처를 내기도 한다. 이 전법이 오히려 공론장 분위기를 험하게 만들어 소통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르가 다른 거다. 담론의 장이 있고 세론의 장이 있다. 논리적으로 정제된 담론의 장에서는 칼럼을 쓴다. 반면 세론은 사람들이 중구난방 떠드는 곳이다. 이 둘을 섞어서 얘기하면 안 된다. 그런 비판 하는 사람 중에 칼럼 내용에 대해 논리적, 이성적 반론을 펴는 경우는 없다. 글을 상대해야지 왜 네티즌 읽으라고 쓴 말을 보러 오나.”

 

△ 한편에서는 말로 비판하기는 쉽고 실천하는 게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오히려 거꾸로라고 본다. 실천이 쉽고 비판이 어렵다. 지금 정부에서 벌이는 일이 다 실천 아닌가. 뭔지도 모르고 하는 일들이다. 비평도 생산하는 일이다. 예술가만 자기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비평가도 일종의 문학을 한다.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없었으면 잭슨 폴록이 어떻게 유명해 질 수 있었겠나. 각자의 영역이 있고 서로 연동돼 있는 거다. 비평과 민주주의도 그렇다. 정치가 있으면 비판이 같이 가기 때문에 위대해 지는 건데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이건 진짜, 그건 가짜’, ‘말은 쉽다’이런 생각들, 쉬우면 너희들이 해야지.”

 

“한국 사회에는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다.”

 

△ 대안 프레임 구축을 말했다.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두 개의 거대한 정치서사가 무너졌다. 산업화 서사는 박정희 때 한번 끝났다. 그런데 보수층이 정신 못 차리고 이명박근혜 시절에 이걸 ‘리사이클링’하다가 망했다. 민주화 서사도 김대중, 노무현 때 실현되고 문재인 정권 들어 파탄을 맞았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근대의 과제가 끝난 거다. 새로운 서사를 써야 한다. 사람들이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부터 건드리고 싶다. 보수층은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반공, 극우로 가는 국가주의적 관념이다. 현 집권층은 NL 출신들이라 민족주의적 관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집단주의다. 낡은 사고 방식이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나. ‘시민적 정체성’이라고 본다. ‘Constitutional Patriotism(헌법애국주의)’라고 하버마스 개념을 가져다 변형한 건데, 우리 헌법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다 국민이라는 거다. 피부색이 어떻든. 헌법에 대한 충성이지 국가, 민족에 대한 충성이 아니다. 해방된 개인의 자유로운 결사로서 정치공동체를 만들자는 거다. 이게 좌파라고 본다. ‘해방된 개인의 자유로운 결사’, 마르크스주의적 관념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 진영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 헌법에 대한 충성과 국가, 민족에 대한 충성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헌법을 깼던 사람들이다. ‘박정희가 위대했다’, ‘전두환이 잘했다’, ‘박근혜는 잘못한 거 없다’, 헌정을 파괴한 사람들이지 않나. 민족주의자도 마찬가지다. 국가보안법은 헌법을 위반하는 법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안이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이 그 대응물인 ‘민족보안법’을 만든다. 역사왜곡처벌법, 비밀번호 강제 해제법, 윤석열 출마 금지법, 말도 안 되는 위헌적 언동을 하고 있다. 집단주의적 사고가 문제가 되는 거다.”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동아일보사, 2020.12)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동아일보사, 2020.12)

 

△ 공감이 된다. 다만 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흥하는 이유는 정치적으로 매력적이어서 인 것 같다. 시민적 정체성이라는 합리적 정치 기획은 현실적 동력을 얻기 어렵지 않을까.

“다른 나라에서는 그게 주류다. 나머지 국가나 민족 없이 못 사는 사람들이 극우고. 다만 서구 사회도 트럼프 이후 미국을 비롯해 헝가리, 폴란드, 영국 브렉시트 등 그런 경향이 심해졌다. 디지털 시대의 일반적 특징이다. 그럼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 그쪽은 그래도 권위 있는 매체와 지식인들이 있다. 그들이 중심을 잡아주는데 우리는 그 담론이 사라져 버렸다. 지식인들이 다 입 닫고 있다. 매체도 존경 받는 매체가 없다. 우리는 권위주의를 무너뜨린다고 하면서 권위마저 해체시켜 버렸다. 권위주의가 나쁜 거지 권위가 나쁜 건 아니거든. 그 많은 학자들은 다 어디 갔나. 법학자들은 어디 갔나. 교수들에게 말하고 싶다. 제발 발언하라고. 우리가 밥 먹고 사는 거 노동자, 농민들이 밥 먹여 주고 있는 거다. 밥값 해야 하지 않은가. 욕을 먹든 안 먹든 아닌 건 아니라고 나와서 발언을 해줘야 한다. 그게 먹물의 운명이다.”

 

△ 지식인이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가.

“밥값만 하면 된다. 계몽주의 시대가 아니다. 그때는 대부분 문맹이었다. 그러니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그들을 계몽시켜야 했다. 지금은 네티즌이 나보다 똑똑하다. 그런 상황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과거와 같은 역할은 아닌 거다. 자기 영역에서 대중들한테 얘기해주는 전문가 역할만 하면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한국 교수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교수라는 것을 기능이 아니라 신분으로 생각한다는 거다. 교수는 하나의 기능이고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선생과 대학 선생은 똑같다고 본다. 학샐들이 나한테 와서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말 어법에 따르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아’라고 해도 안 고쳐진다. 선생보다 교수가 높다고 생각하나 보다. 젊은 사람들도 신분으로 보는 거다.”

 

△ 대학의 역할, 교수사회에 대해 조언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잘 모른다. 대학, 교수 사회에 대한 개념이 없다. 보직 맡아본 적도 없고. 그래서 조언은 모르겠고 다만 한 가지 감성적인 차원이지만 강사분들 처우 문제 좀 교수들이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자기 희생을 해서라도. 계속 마음에 걸린다. (대학에 있을 때도) 강의하는 강사들 보면서 굉장히 미안했다. 자기 연구하면서 강사만 해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는 연구자를 확보해야 학문의 세계가 사는 것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아예 못 살게 만들어 버리니 문제다. 여기에 문제의식, 책임의식 가지고 교수들이 나서줬으면 한다.”

 

△ 읽는 양이나 쓰는 양이나 만만치 않아 보인다. 비결이 있나.

“없다. 사람 안 만나고 집에만 있으면 된다. 1월부터는 철학서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철학사가 주제인데 고대까지 한 권 원고만 썼다. 이 다음 중세, 근대, 현대 이어질 책 준비가 남아 있다. 사실 작년에 나온 『감각의 역사』(창비)도 철학사다. 기존의 이성 중심이 아닌 감각 중심으로 뒤집어 본 철학사. 『감각의 역사』도 3년 준비해서 진짜 힘들게 썼고 교육부 선정 우수학술도서에도 선정됐는데 이런 건 기사가 안 난다. '진중권 누구 욕해' 이런 것만 나오고(웃음).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