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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 예산 지침 개선해야…도덕적 해이도 문제
비현실적 예산 지침 개선해야…도덕적 해이도 문제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4.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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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 관리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기획] 교수 연구비 유용, 어떻게 볼 것인가

교수사회가 '연구비'라는 시한폭탄을 떠안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몇몇 사립대 교수들이 연구비 과다 계상, 연구보조원 인건비 유용 등으로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자, 많은 교수들이 '도덕성'에 대한 대내·외적인 인식차를 느끼며 심각한 '혼란' 상태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사회에 쏟아지는 비난의 시선에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도덕적 잣대'를 스스로에게 대보고 있지만, 정부 지원 시스템과 의식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연구비 유용이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편집자주>

사례 1. 공대 교수인 ㅇ교수는 정부의 연구비 지원 방식이 비현실적이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정부에서 인정하는 범위에서 연구비를 집행하다보면 연구실에서 숙식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의 식비, 잡비 등을 쓸 수 있는 항목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사례 2. ㅈ교수와 석·박사과정생은 연구비 유용 얘기만 나오만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이들은 연구소를 활성화시킨다는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계획했고 심사에서 선정된 이후, 대학원생의 인건비를 공동기금으로 조성해 연구소 운영 경비를 충당해왔던 것이다.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에서 교수 연구비 유용 문제가 잇따르자, 교수사회가 '연구비' 운용을 놓고 충격과 고민에 빠졌다. '이럴 수가…'라는 반응과 함께 도덕적 비난이 쏟아지는가 하면, '언젠가 터질 것이 터졌다'라며 구조적인 문제점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다양하다. 누구라도 목적 외로 사용했다면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견해를 비롯, 지원방식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연구비 유용으로 이어졌다는 견해 등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구비 유용'이 교수사회에 비일비재한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극소수에 의해 불거진 연구비 부당 사용을 교수 사회 전체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어떤 곳에서는 이유 있는 '관행'으로 비춰졌지만, 다른 곳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부도덕'으로 꼽히고 있었다. '연구비'를 둘러싸고 도덕적 '혼돈' 상태가 대학가를 떠돌고 있는 셈이다.

가령, 교수의 연구보조원 인건비 착복에는 선명하게 반대했지만, 세부적인 사례에서는 시각이 엇갈렸다. 연구 프로젝트 팀과 연구소의 활동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석·박사과정생의 인건비를 갹출해 공동기금을 조성하는 경우만 봐도 그렇다. 목적 외로 연구비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있는 한편, 뜻을 모아 공동기금을 조성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시각이 나뉜다. 연구 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동 식비, 잡비 지출이 불가피한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는 정부연구비 사용 지침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연구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유용'을 보는 시각도 다른 셈이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의 관계자는 "지금은 과도기 단계로, 연구비에 대해 연구책임자, 연구보조원, 대학, 학진 등이 서로 다른 관점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사업 취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접근을 강조했다. 즉 학진은 사업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연구비를 집행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지만, 교수들은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선 약간의 '유용'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고 느슨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업과 관련없이, 우선 연구비를 탄 다음, 가장 목마른 부분부터 목을 축이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지원'이라는 사업 성격을 잊은 채, 연구비·인건비로 공동기금 등을 조성해 학과·연구소의 운영에 전용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학진에 따르면, 어떻게 사용됐건 간에, 연구보조원의 인건비를 모아 공동기금을 조성한 다음 임의대로 사용하면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다.

유사하게 ㅅ대학의 ㅈ 연구처장은 "연구비 지원 시스템과 우리 문화가 아직까지는 잘 맞지 않다"라면서 "연구비를 더 효과적으로 써보겠다는 교수들의 취지는 이해되지만, 사회는 이미 교수들의 자의적인 연구비 운용을 '부도덕함'으로 인식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학 내·외부에 존재하고 있는 시각차를 교수들이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

구조적인 문제를 십분 받아들인다고 해도, 허위로 기자재를 구입해 개인적으로 유용하거나, 사업에 참여하지도 않은 대학원생의 이름을 올려 인건비를 착복하거나, 기자재 리베이트를 받는 등의 모럴 해저드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ㄷ대학의 ㅈ교수는 "동료로서 동정심이 들긴 하지만, 잘못 지출될 경우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라며 "연구비의 운용이 경직돼 있더라도 계획서대로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교수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수차례 불거진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으로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교수들의 현실을 반영한 말이었다.

한편, 학진이 연구 성과에 대한 실질 평가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비 유용 사건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인중 숭실대 교수(사학과)는 "학진이 전문가를 포섭해, 연구비가 아니라 연구 성과를 철저히 평가한다면, 연구비 문제는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사후 평가가 충분하게 이뤄질 경우, 연구계획서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작성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적절하게
연구비가 책정되고, 연구에도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용할 경우에는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교수들의 연구비 유용은 일정부분 비현실적인 시스템 자체와 '시스템'·'의식' 간의 괴리와 관련이 깊다. 兩者가 서로의 부조리를 가르키고 있는 형국. 지원방식 체계를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하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합리성과 정직성에 대한 교수들의 정확한 인식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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