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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개인주의의 역사』(알랭 로랑 지음, 한길사 刊)
[책의 향기]『개인주의의 역사』(알랭 로랑 지음, 한길사 刊)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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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6 00:00:00

한국의 근대는 언제나 ‘민족의 위기’시대였고, 집단의 생존이 위태로운 마당에 개인의 가치를 옹호하기란 한가한 노릇이기 십상이었다. 한국의 근대화란 개인이라는 ‘小我’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민족과 국가라는 이름의 ‘大我’를 세워온 과정이 아니던가.

알랭 로랑은 ‘개인주의의 역사’에서 “서구 문명의 본질이자 현대성의 진앙지”인 개인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탐사한다. 개인주의의 계보학을 추적해가는 그의 작업이 관심을 끄는 까닭은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개인주의 담론의 열풍 때문이다. 차이의 정치를 추구하는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담론, 탈민족주의 담론의 근원에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명제가 내포되어 있다. 개인주의의 역사가 니체에서 완성되었고, 이들 ‘포스트주의’의 논리가 니체에서 발원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담론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라는 집단적 이념이 과잉되어 왔던 현실에 대한 반성적 의미를 띠고 있다. 이런 집단적 이념속에서 개인의 인권은 뒷전으로 밀렸고, 타자는 억압되어 왔던 것이다.

개인주의는 가까이는 르네상스와 프랑스 대혁명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고대에도 그 흔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산파술로서 개인의 각성을 촉구했고, 에피쿠로스는 정신의 내적 자족성과 자율성을 강조함으로써 ‘자기에의 배려’를 추구했다. 개인주의에 대한 로랑의 분석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은 기독교의 역할이다. 기독교는 “신과 직접적이고 내면화된 관계”를 맺게 함으로써 심층적 차원에서 개인의 내면적 성장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개인은 “타인과 자신을 본질적으로 구분짓는 주관성 속에서 내면적으로 존재”하며 “동시에 책임이 따르는 행위와 선택을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인간”인 것이다. 저자는 개인주의의 내면적 뿌리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을 뜻하는 라틴어 ‘individuum’이 생겨난 것도 중세였다. 개인주의의 또다른 기원이 ‘내면성’에 있다면 집단적 이념이 중시되었던 식민지시기나 지난 80년대의 ‘내면으로의 침잠’을 골방으로 퇴각한 패배주의라고 비판했던 것은 부당하다. 내면이 없이는 개인의 자율성도, 그에 상응한 책임성도 물을 수 없다.

로랑은 20세기 말 이후 개인주의가 “종교적 정통주의, 국가관리주의, 타인에 대한 봉사를 강요하는 연대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등의 “거대한 동맹을 맺은 적”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본다. 그런 그에게 개인주의는 여전히 희망을 걸만한 해방적 이데올로기이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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