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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정의와 윤리를 묻다
인문학, 정의와 윤리를 묻다
  • 교수신문
  • 승인 2021.01.0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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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준, 테드 W 제닝스, 외 4명 지음 | 박성훈 옮김 | 후마니타스 | 296쪽

 

‘촛불 혁명’ 이후 가장 첨예한 화두, 정의와 공정에 대한 물음,

그리고 그 물음의 근원을 찾아가는 철학적, 인문학적 여정

 

우리 시대 최고의 화두는 정의와 공정이다. 이는 해방 이후, 아니 근대로 접어든 이래 경험하게 된 근원적인 문제이다. 가까이는 촛불 혁명에서 멀리는 19세기의 민중 봉기로부터 정의와 공정은 역사의 저류를 흐르는 근본 물음이었고, 마비되어 있던 민중의 이성을 깨어나게 하는 각성제였다. 이제 망각의 늪에 빠져 있던 정의와 윤리의 물음을 새로이 길어 올리고, 이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이자 의무이다.

이 책은 정의와 윤리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것들을 달성할 수 있는가를 근본 화두로 삼고, 철학적으로 그리고 인문학적으로 탐구한다. 물음을 새로이 하는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물음은 정교해졌고, 그에 대한 잠정적인 답변은 우리의 지성과 사유를 깨어 움직이게 한다. 서양 고전 철학과 신학과 마르틴 하이데거를 아우르고, 칼 슈미트와 자크 데리다의 물음을 횡단하는 한편, 이 땅의 봉기와 혁명에까지 눈길을 보내는 이 책의 섬세하지만 광범위한 시선은 오늘을 새로이 문제 삼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참조가 될 것이다.

퀴어 신학 연구의 대가이자 신학과 현대 철학의 창의적인 만남을 추구한 신학자 테드 W. 제닝스의 글 「법 바깥의 정의 그리고 정치적 개념으로서의 사랑」은 정의의 개념을 정치적으로 재설정하기 위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의 저작을 훑는 한편, 바울의 서한을 살피며 정의와 법 사이의 대립과 모순을 탐구한다. 제닝스의 창의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탐구는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조르조 아감벤 같은 현대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을 좇은 끝에 정의는 국가 장치의 강압에 의해 포착될 수 없기에, 정의를 ‘법 바깥에서’ 사유하는 법을, 그리고 ‘무법적 정의’로서 사유하는 법을 고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정의의 사유를 사랑에 대한 담론과 결합하면서, 개인적인 것이나 개인들 사이의 것, 혹은 정서와 관련된 것으로 한정된 사랑을, 하나의 정치적 개념이자 정의의 실현으로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프랑스 철학과 정치철학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한국의 민주주의론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탐구를 이어가는 진태원의 글 「칼 슈미트와 자크 데리다: 주권의 탈구축」은 이 책이 다루고자 한 정의와 윤리라는 주제를, 주권론과 폭력론의 관점에서 정치철학적으로 다룬다. 베를린장벽 붕괴와 더불어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도래함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 및 확산되며 다양한 수준에서 폭력이 일반화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주권 개념의 애매성, 혹은 역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신학적 초월성을 지양하는 인민의 자율성, 따라서 민주주의의 내재적 근거를 표현하는 주권이 다른 한편으로 또 다른 형태의 초월성 및 폭력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데리다의 주권 개념의 특성을 칼 슈미트의 주권 개념과 비교해 살펴보며, 데리다의 그것이 자기성(自己性, ipseity), 곧 주체의 자율성에 기반해 있지만, 동시에 자기성에 고유한 면역의 메커니즘(적과 동지의 대립)에는 자기 면역의 아포리아가 함축되어 있음을 밝힌다.

조홍준의 글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은 윤리학인가?」는 20세기 철학사에서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친 마르틴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관련해 살핀다. 250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두 저작을 자세하게 비교·탐사하며 시간적 순서만 보면 『존재와 시간』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논리적 순서로는 선행한다고 주장한다. 조홍준은 두 저작을 구조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 『존재와 시간』이 일반 존재론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윤리학 일반의 출발점임을 증명한다. 이러한 주장이 가능한 것은 하이데거의 기초 존재론이 ‘당위의 당위’, 곧 행위의 기준이 되는 규범적 당위가 있을 수 있도록 하는 당위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행위를 하기 전에 있어야 할 마음의 전환이 바로 기초 존재론의 존재 당위이다. 그 결과 우리는 규범윤리학으로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오히려 근원 윤리학인 『존재와 시간』 이후에 와야 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앞의 세 편이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논의를 한다면, 뒤의 세 편은 실질적이고 역사적인 논의를 이어 나간다. 김상봉의 「폭력과 윤리: 4·3을 생각함」은 제주 4·3의 의미를 역사적 사건이자 철학적 사건으로 다룬다. 제주4·3사건은 그것의 명명에서부터 우리에게 특별한 해석과 평가의 어려움을 제기한다. 남로당 무장대의 무장 항쟁과 군경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의 측면을 동시에 지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기존 논의들이 어느 한편의 관점에서만 사건을 바라보았다고 지적하면서, 4·3사건을 무장대와 토벌대 사이의 폭력적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 폭력의 정당성을 고찰한다. 국가 폭력에 대해서는 그 부당성이 분명히 드러나 있기에, 무장대의 항쟁 폭력이 지니는 정당성을 동학농민전쟁이나 5·18 등 한국 민중 항쟁의 역사에 입각해 고찰한다.

전병준의 글 「새로운 정의와 혁명의 창안을 위하여」는 폭력과 법과 정의의 모순 관계에 대해 논의한 발터 벤야민과 자크 데리다의 저작을 참조하면서 4·19 시기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정의와 혁명의 의미를 살핀다. 법은 해체 가능하고 정의는 해체 불가능하다는 언명을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존 해석은 정의를 초월적인 지평에 두기에, 법과 정의의 모순적인 관계를 제대로 사유할 수 없다. 이 글은 법과 정의의 관계를 유효하게 사유하는 방법으로 내재성과 초월성의 변증법을 제안한다. 이러한 방법론적 시각에서, 김수영의 시는 혁명이 어떻게 가능한지, 정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고 진단하며, 그가 이러한 물음을 강인하게 유지한 끝에 새로운 정의와 혁명을 창안하고자 했다고 주장한다. 이 글은 김수영의 시를 폭력과 법과 정의의 관점에서, 그리고 이 셋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정치와 혁명이라는 관점에서 살핌으로써 김수영 연구의 관점을 갱신하고 심화한다.

정영훈의 글 「불의의 선물, 정의를 산출하는 윤리」는 최인훈과 조세희와 이승우의 소설에서 정의와 윤리의 산출 가능성을 살핀다. 특히 이 글은 바울의 텍스트를 다시 읽는 과정에서 나온 여러 결과물들과 테드 W. 제닝스의 저작들을 중요하게 참고한다. 정영훈은 최인훈의 「라울전」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을 꼼꼼히 읽으며 사회적 차원에서 정의가 가능한지, 그리고 사랑이 정의의 실현을 위한 윤리적 근거로 제출될 수 있는지 따진 끝에 이승우의 「오래된 일기」를 통해 정의와 윤리를 둘러싼 물음을 본격적으로 제기한다. 이승우 소설의 인물들은 그들 자신을 불의한 가운데 은혜를 입은 자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여, 자기 소유의 일부를 타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데로 나아가는 인물들이다. 그것은 이들이 정의롭게 행동하고 불의를 바로잡으라는 명령을 듣기 때문이고, 자신들을 불의의 피해자가 아니라 불의의 수혜자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환대의 윤리를 실천하는 데까지 이른다. 이러한 분석과 해석을 통해 이 글은, 자신을 불의의 수혜자라고 여기면서 이를 바로잡으려 애쓰는 사람들만이 이 노력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고, 윤리적 주체가 될 수 있으리라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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